성균관대가 국내 사립대 최초로 초저온 전자현미경(Cryo-EM)을 도입했다. 초저온 전자현미경동 개소식이 열린 18일에는 노벨상 수상자인 요아힘 프랑크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방문해 시설을 둘러봤다./수원=이병철 기자

18일 오전 10시 경기도 수원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 한 건물에 기업과 연구소, 대학에서 온 30여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이들이 이날 성균관대를 찾은 건 성균관대가 최근 도입한 초저온 전자현미경(Cryo-EM) 시설을 보기 위해서다. 이들 가운데는 정장을 입고 가슴에 꽃을 달고 흐뭇한 웃음을 짓고 있는 푸른 눈의 노신사가 눈에 띄었다. 극저온 전자현미경을 개발한 공로로 자크 뒤보셰 스위스 로잔대 생물물리학 명예교수와 리처드 헨더슨 영국 케임브리지대 의학연구위원회(MRC) 연구원과 함께 2017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요아힘 프랑크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였다. 프랑크 교수는 성대가 최근 도입한 초저온 전자현미경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초저온 전자현미경은 영상을 촬영할 시료를 영하 196도 수준으로 급속 냉동해 얼음에 가두고 본래의 입체 구조를 관찰하는 장비다. 주로 크기가 작고 외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단백질의 구조를 알아내는 데 사용된다. 세부적인 구조를 보기 위해 빛을 이용하는 광학 현미경과 달리 전자를 이용해 높은 해상도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초저온 전자현미경은 일반적인 광학현미경보다 1만3000배 이상 크게 볼 수 있다. 세포 하나의 모습은 물론 세포를 구성하는 단백질의 구조도 정확하게 보인다. 현대 생물학에서는 이런 성능 때문에 초저온 전자현미경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러나 한 대에 수십 억원을 호가하는 비용 문제로 국내에서 보유하고 있는 연구 기관은 6곳에 머문다.

현재경 성균관대 약대 교수가 가속전압 300㎸ 성능의 초저온 전자현미경을 소개하고 있다. 기존 방식으로는 정확히 알아내기 어려운 단백질 구조를 빠르고 쉽게 확인할 수 있다./수원=이병철 기자

초저온 전자현미경이 등장하기 전에는 단백질 구조를 보려면 시료를 ‘결정’으로 만들어 X선 회절에서 나타난 모습으로 구조를 분석하는 기술이 사용됐다. 그러나 이 방식은 단백질 하나의 구조를 알기 위해 최대 수개월 이상이 걸린다. 반면 초저온 전자현미경을 사용하면 수주 만에 단백질 구조를 알 수 있다.

성균관대는 총 132억원을 들여 초저온 전자현미경 시스템을 구축했다. 장비 구입에만 110억원이 들었다는 게 학교 측 설명이다. 성균관대가 도입한 초저온 전자현미경은 모두 2대로, 한 대는 가속전압 300㎸의 고해상 장비와 다른 한 대는 가속전압 200㎸의 저해상 장비다.

주재선 성균관대 공동기기원행정실장은 “초저온 전자현미경이 국내에 몇 대 되지 않아 사용 수요가 많을 것으로 예상해 효율적인 이용을 고려했다”며 “저해상 장비로는 본격적인 실험에 앞서 시료 상태를 확인을 하고, 세부적인 구조는 고해상 장비로 확인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 실장은 “워낙 많은 예산이 드는 만큼 2대 모두 도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실제 연구에 도움이 되는 방식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성균관대가 초저온 전자현미경과 함께 도입한 초저온 집속이온빔(Cryo-FIB) 장비의 작동 장면. 한 공간에서 초저온 시료 제작과 관찰을 한 번에 할 수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는 것이 성균관대의 설명이다./수원=이병철 기자

초저온 전자현미경만을 위한 전용 건물도 마련했다. 555제곱미터에 달하는 건물은 지난해 준공돼 현재 대부분의 장비 설치가 끝난 상황이다. 학교 측은 또 초저온 시료 제작을 위한 초저온 집속이온빔(Cryo-FIB)과 바이트로봇(Vitrobot)도 함께 도입했다.

현재경 성균관대 약대 교수는 “시료 제작부터 관찰까지 한 공간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전용 시설을 마련한 곳은 국내에서 성균관대가 유일하다”며 “단백질 구조 연구뿐 아니라 신소재, 전자공학 등 분야에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백질의 3차원(3D) 구조를 찾기 위해 3만장 이상의 사진을 조합하는 만큼 대량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시설도 마련했다. 초저온 전자현미경을 슈퍼컴퓨터와 연결해 데이터 처리 속도와 보관 용량을 높였다. 초저온 전자현미경 기술을 개발한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한 프랑크 교수도 “미국에 100곳이 넘는 초저온 전자현미경 시설이 있는데 지금까지 이런 시설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며 “새 기능이 추가되면서 늘어나는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10월 중순 본격적인 운영을 앞두고 현재는 이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국내에 초저온 전자현미경 기반시설(인프라)이 부족한 만큼 장비 사용 수요도 많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최근에는 단백질을 이용한 의약품 개발도 늘고 있는 만큼 대학·연구기관은 물론 기업에서도 단백질 구조를 확인할 수 있는 장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성균관대는 초저온 전자현미경 시설을 기반으로 산·학·연·병 협력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현 교수는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첨단 소재 분야에서도 미세 구조를 확인하기 위해 초저온 전자현미경이 쓰인다”며 “신소재와 신약 같은 고부가가치 물질 개발이 한층 더 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