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막대한 돈을 투자해 우주 탐사와 개발을 주도하던 저효율의 우주개발은 끝이 나고 있다. 모험적이고 도전적인 사업가와 투자가들이 우주 산업을 주도하는 ‘뉴스페이스’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모건스탠리는 세계 우주산업 규모가 2020년 3850억달러에서 2040년에는 1조1000억달러로 성장할 것이라고 봤다. 20년 사이 3배가 커진다. 모험적 IT투자로 성공한 투자가들이 재사용 로켓을 처음으로 제시한 스페이스X와 블루 오리진 같은 혁신적 민간 기업에 대한 투자로 이어진 덕분이다. 한국은 이제 막 출발선에 섰다. 글로벌 우주산업 시장점유율이 1%에 불과하다. 바꿔서 말하면 99%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말이다. 조선비즈는 뉴스페이스 시대를 맞아 우주를 바라보는 혁신가들을 만났다. 전 세계를 상대로 우주 상품을 파는 창업가들과 기업가들이다.[편집자주]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나라스페이스테크놀로지 R&D센터에서 박재필 대표가 본지와의 인터뷰를 갖고 있다. / 장련성 기자


봄기운이 슬그머니 올라온 지난 14일 서울 영등포구 나라스페이스테크놀로지 R&D센터. 바깥은 봄기운이 완연했지만 R&D센터 내부는 한여름처럼 열기가 후끈했다. 프로그래밍을 하는 직원들로 분주했다. 나라스페이스테크놀로지는 초소형 위성을 개발하고 제작하는 국내 우주 스타트업이다. 빅데이터와 딥러닝을 기반으로 위성 데이터를 분석하고, 기관이나 기업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위성 데이터 서비스도 실시하고 있다.

해양미세먼지를 관측하는 ‘부산샛(Busan-Sat)’과 지구를 고해상도로 촬영하는 ‘옵저버’가 탄생한 연구공간은 사무실 바로 옆에 있었다. 작은 먼지 한 톨에도 오작동을 일으킬 수 있는 위성 부품의 특성상 가운과 헤드캡, 라텍스 장갑, 전용 신발을 착용해야만 실험실에 들어갈 수 있다. 실험실 벽에는 ‘어?! 감탄사 금지’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위성 개발은 어차피 어려우니, 실수에 연연하지 말라는 뜻이다.

본격적인 ‘뉴스페이스’ 시대가 다가오면서 초소형 위성 시장도 활기를 띠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마켓앤마켓(MarketsandMarkets)이 이달 16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초소형 위성 서비스 시장 규모는 2027년까지 86억9000만 달러(8조7602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초소형 위성 시장 규모가 28억 달러(3조6610억원)인 점을 고려하면 5년 만에 두 배 이상 커지는 셈이다. 초소형 위성 시장은 2030년에는 11조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래픽=손민균

나라스페이스테크놀로지는 우주 산업 생태계 불모지였던 2015년 설립된 국내 1호 우주 스타트업이다. 국가와 안보뿐 아니라 부동산, 금융, 도시 관리와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초소형 위성의 활용도가 부각되면서, 초소형 위성 업계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조선비즈는 박재필 나라스페이스테크놀로지 대표를 만나 초소형 위성의 미래 가능성을 들어봤다.

-부산광역시·NASA와의 협력으로 해양미세먼지 관측용 위성 ‘부산샛’을 발사한다.

“부산샛 개발은 모두 끝났다. 작년 12월에 제작을 완료했고, 올해 NASA로 배송할 예정이다. 인터뷰 전날에는 부산에 방문해 배송이나 시험을 어떻게 진행할 건지 회의했다. 내년쯤 미국에서 발사되고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러시아 발사체를 쓸 수 없게 되면서 전 세계 위성 발사 일정이 밀리고 있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것 때문에 발사가 조금 연기됐다.”

-위성 발사가 지연되면 스타트업 입장에선 불안한 부분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원하는 날짜보다 발사 일정이 밀려 답답한 부분이 있다. 발사 수요가 몰리게 되면 가격도 바뀔 수 있다. 하지만 발사체 스타트업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국내 스타트업인 이노스페이스나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가 발사에 성공하면 위성 스타트업 입장에서도 좋다. 생각해보면 발사와 위성, 우주 로버는 서로를 필요로 하고, 함께 커가는 과학기술이다. 그래서 항상 강조하는 게 우주 산업의 생태계다. 지금은 우주 산업 생태계 자체가 커져야 한다.”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나라스페이스테크놀로지 R&D센터 사무실 모습. / 장련성 기자

나라스페이스테크놀로지가 개발한 초소형 위성 부품은 이미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지난해 6월 한국형발사체 누리호에 실려 발사된 미세먼지 관측 큐브위성 ‘미먼(MIMAN)’에는 나라스페이스테크놀로지의 온보드컴퓨터가 적용됐다. 온보드컴퓨터는 위성이 스스로 제어·명령·저장할 수 있는 초소형 위성의 ‘두뇌’ 역할을 한다. NASA는 올해 매년 발간하는 보고서에서 나라스페이스의 온보드컴퓨터에 최고 등급인 9단계(TRL-9)를 인증했다.

나라스페이스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기반으로 위성 데이터를 분석해 고해상도 이미지를 제공하는 ‘어스페이퍼’ 서비스로 유럽 시장도 공략하고 있다. 어스페이퍼는 올해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에 발사될 고해상도 관측 위성 옵저버 1A·1B호의 관측 데이터를 토대로 운영된다. 유럽 항공기 제조기업 에어버스의 자회사 ‘UP40′와 협약을 맺고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나라스페이스가 개발 중인 초소형 인공위성 '옵저버'. /나라스페이스테크놀로지

-온보드컴퓨터가 NASA로부터 최고 등급으로 인정받을 때 기분은 어땠나.

“그동안 국내 기업들은 ‘우주 인증’이 없다는 이유로, 해외 기업 부품을 사용해야 했다. 이제는 한국 스타트업에도 검증된 기술이 있다는 걸 인정받은 게 가장 큰 의미다. 다만 여전히 우주 인증을 얻기는 어렵다. 스타트업들은 최대한 빨리 성과를 내야 하는데, 2~3년 주기로 검증 기회가 제공되면 좋겠다. 검증의 문턱을 넘을 수 있는 기회가 많이 마련되면 우주 스타트업에 뛰어들 사람이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창업 초반에 힘들었다. 발사나 테스트 비용을 스스로 마련해야 했다. 정부에서 스타트업의 성과를 검증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주면 스타트업의 성장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온보드컴퓨터 개발에 대한 궁극적인 목표가 있나.

“지금 온보드컴퓨터는 CPU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우주 개발이 안정성을 추구하다 보니, 우주에서 사용하는 부품들이 지상보다 성능이 떨어진다. 이제는 성능을 올려야 한다. 고해상도 위성 데이터가 대용량이니 이미지들을 잘 처리할 수 있게 GPU를 도입하는 시도를 할 것 같다. 아니면 온보드컴퓨터에서 이미지를 처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시도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진을 찍었는데 구름을 제거하고 데이터를 내려보내면 용량이 적어진다. 이런 프로그래밍적인 부분도 개발하려고 한다.”

-유럽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어스페이퍼’ 서비스를 출시했다. 업계 반응은 어떤가.

“어스페이퍼는 위성 영상을 AI에 학습시켜 선명한 이미지를 얻는 초해상화 서비스다. 아직까지 수익이 많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래도 샘플을 요청하는 기관이나 기업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작년까지만 해도 ‘위성 데이터를 우리가 왜 써야 하냐’는 반응이 많았다. 이제는 다들 위성 데이터의 중요성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스마트시티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고, 바이오매스나 작황 측정에도 사용될 수 있어서 대기업 신기술 담당팀을 중심으로 연락이 많이 오고 있다.”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나라스페이스테크놀로지 R&D센터에서 박재필 대표가 본지와의 인터뷰를 갖고 있다. / 장련성 기자

박 대표는 초소형 위성을 중심으로 위성 대량 생산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위성 개발은 군집 위성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기도 하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X는 올해 2월 기준 저궤도 통신위성 스타링크를 3850개 운용 중이고, 수를 앞으로도 늘려갈 계획이다. 국내에서도 한국천문연구원이 총 4기로 구성된 지구 관측용 군집 위성 도요샛을 올해 발사할 예정이다.

-초소형 위성이 많아지는 이유가 있을까.

“초소형 위성은 위성의 대량 생산을 의미한다. 초소형 위성은 작지만, 동시에 빠르게 생산할 수 있고 산업화에 이용하기에도 좋다. 갈수록 더 많은, 더 실시간에 가까운 위성 데이터를 사람들이 원하게 될 것이다. 그러려면 위성이 더 많이 지구를 들여다봐야 한다. 군집 단위로 위성을 쏘는 이유다.”

-반대로 너무 많은 인공위성을 쏘면서 우주 쓰레기 같은 문제점도 나온다.

“도로에 자동차가 많아지고 사고가 난다고 해서 자동차 수를 줄이지는 않는다. 신호등을 설치하고, 배기가스를 감축할 방법을 생각한다. 위성도 마찬가지다. 위성이 많아지는 것은 산업적인 흐름이고, 수를 줄인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위성이 문제없이 운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국에서 우주 교통관제와 위성 폐기 솔루션을 고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체적인 기술 흐름을 역행하는 것은 역사 속에서 공장 파괴하고 다니던 ‘러다이트 운동’이랑 똑같다. 위성의 수가 많아져도 괜찮은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우주항공청이 연내 개청한다. 우주 스타트업으로서 바라는 점이 있을까.

“우주 산업이라는 게 그동안 애매한 측면이 있었다. 어떤 부처에서 담당할지도 명확히 정해지지 않았다. 이제는 우주항공청으로 담당이 정확하게 정해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본다. 지금 우주항공청과 관련된 담론은 입지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솔직히 말하면 사천을 가든, 대전에 있든, 서울에 있든 상관없다. 마라도에 있어도 된다. 그저 우주 스타트업을 잘 지원해주는 정책을 잘 만들어서 생태계를 잘 조성해주기만 하면 된다. 지금은 지역 담론만 있고 우주 생태계에 대한 지원은 빠진 것 같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