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 전달 경로를 구현한 어셈블로이드. 감각 신경세포 오가노이드가 맨 위에 있고, 그 아래로 차례대로 척수, 시상, 대뇌피질 오가노이드가 연결된 형태이다./미 스탠퍼드대

상처가 나아도 계속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8년 만성 통증을 질병으로 규정했다. 13명 중 한 명이 만성 요통 환자라는 통계도 있다. 하지만 치료제 개발은 쉽지 않다. 약효는 실험동물에 먼저 알아보는데, 통증 경로가 사람과 다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인간 세포를 이용해 감각세포에서 대뇌까지 통증 신호가 전달되는 경로를 시험관에 구현했다. 통증 치료제를 동물 대신 사람에 직접 시험해볼 길이 열린 것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와 같은 발달 장애 연구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통증 전달 경로마다 오가노이드 생성

세르지우 파스카((Sergiu Pasca)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교수 연구진은 “배양 용기에서 키운 오가노이드(organoid)로 인간의 통증 신호 전달 경로를 구현했다”고 지난 10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오가노이드는 인체의 모든 세포로 자라는 줄기세포를 장기(臟器)와 유사한 입체 구조로 배양한 것으로, 미니 장기라고 불린다. 이전에는 주로 세포를 평면 배양접시에서 키워 인체 안에서 세포가 배열하거나 이동,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연구진은 통증 감각이 뇌로 전달되는 경로에 주목했다. 피부가 자극을 받으면 감각 신경세포가 통증 신호를 만든다. 이 신호는 척수를 거쳐 간뇌(間腦)에 있는 감각중추인 시상으로 전달된다. 마지막으로 대뇌 피질에서 이 신호가 처리되면서 통증을 느낀다. 연구진은 이와 같은 상행 감각 경로에 있는 인체 조직을 각각 오가노이드로 구현했다.

그래픽=손민균

먼저 유도만능줄기세포(iPS세포)를 만들었다. iPS세포는 다 자란 세포에 특정 유전자나 단백질을 넣어 발생 초기의 배아줄기세포 상태로 만든 것이다. iPS세포는 조건에 따라 인체의 모든 세포로 자란다.

연구진은 iPS세포를 각각 감각 신경세포와 척수, 시상, 대뇌 피질 세포로 분화사켰다. 이 세포는 3D(입체) 환경에서 오가노이드로 자랐다. 오가노이드는 길이가 0.25cm 정도였다. 좁쌀만 한 크기다. 100일간 오가노이드들을 한 곳에 두고 키우자 신경세포들이 서로 연결돼 소시지 모양으로 자랐다. 맨 앞에는 감각 오가노이드가 있고 그 뒤로 척수, 시상, 대뇌 피질 오가오니드가 결합됐다.

오가노이드 조립체인 어셈블로이드(assembloid)가 탄생한 것이다. 길이는 1.25cm로 쌀알 두 개 정도였다. 파스카 교수는 “어셈블로이드의 신경세포는 400만개 정도로 1700억개가 있는 뇌에 크게 못 미치는 수치지만, 통증 전달 경로에 관련된 회로를 요약해 놓은 것과 같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고추의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을 어셈블로이드에 주입했다. 그러자 감각 오가노이드에서 시작해 척수, 시상, 대뇌 피질 오가노이드로 신경신호가 잇따라 발생했다. 매운맛 신호가 전달된 것이다. 이번 논문의 공동 제1 저자인 김지일 박사와 켄트 이마이즈미(Kent Imaizumi) 박사이다. 김 박사는 서울대 생명과학부 강봉균 교수 지도를 받고 박사학위를 받은 후 2020년부터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오가노이드 조립체인 어셈블로이드. 왼쪽 위가 감각 오가노이드이고 오른쪽 아래가 대뇌피질 오가노이드이다. 반짝이는 작은 원들이 신경세포들이다. 어셈블로이드가 동시에 신경활동을 보인다는 것은 각각의 세포들이 기능적으로 연결되어 서로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의미이다./미 스탠퍼드대

◇만성 통증 환자 치료에 전기 마련

파스카 교수는 “이번 어셈블로이드가 만성 통증을 기존 방법보다 효과적으로 치료할 단서를 제공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만성 통증은 심각한 사회 문제이다. 스탠퍼드 의대 마취통증의학과의 비비안 타우픽(Vivianne Tawfik) 교수는 “미국 인구의 3분의 1 이상인 약 1억 1600만 명이 어떤 형태로든 만성 통증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만성 통증은 신체 손상이 사라진 뒤에도 지속하는 경우가 많다. 과학자들은 통증 감각 경로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파스칼 교수 연구진은 어셈블로이드로 이를 입증했다.

과학자들은 피부 세포막에 있는 나트륨 이온 통로의 단백질에 돌연변이가 생겨 만성 통증을 유발한다고 본다. 연구진은 어셈블로이드의 감각 오가노이드에서 Nav1.7 단백질을 과민성 돌연변이형으로 바꿨다. 그러자 통증 신호 전달이 더 자주 발생했다. 만성 통증이 감각 신경세포의 돌연변이 탓임을 확인한 것이다.

반대로 감각 오가노이드에서 같은 나트륨 이온 통로를 차단하자 대뇌 피질까지 이어지던 신호 전달이 사라졌다. 파스카 교수는 “감각 신경세포는 여전히 신호를 발생했지만 나머지 신호 전달 네트워크가 협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만성 통증 치료의 단서를 확인한 것이다.

미 스팬퍼드대의 세르지우 파스카 교수가 미니 뇌가 들어있는 실험용기를 보고 있다. 배경은 미니 뇌. 파스카 교수는 인간 미니 뇌를 쥐의 뇌에 이식해 하나가 되게 하는 데 성공했다./미 스탠퍼드대

대부분 진통제는 사실 통증 치료용으로 공식 승인된 약물이 아니라, 정신과 약물이나 수면 장애 치료제가 전용된 경우가 많다. 이 중 가장 효과적인 약물인 마약성 진통제는 중독을 유발할 수 있다.

구본경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은 “이번 논문은 기존에 알려진 통증, 무감각에 관련된 유전자를 조작해 감각신경계 오가노이드에서도 예측된 표현형이 나옴을 확인했다”며 “이와 같은 모델을 활용한다면 더 우수한 진통제도 개발할 수 있고, 마비 환자 치료법을 찾는 데에도 유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번에 만든 조립형 미니 장기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 같은 신경 발달 장애를 연구하는 데에도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조립형 오가노이드는 동물실험을 대체할 뿐만 아니라 뇌질환 치료제로도 주목받고 있다.

미국의 ARPA-H(보건의료고등연구계획국)는 치매로 손상되거나 늙은 뇌세포를 인간 배아 조직으로 대체하는 수술법을 개발하는 데 1억 1000만달러(한화 1563억원)를 지원할 예정이다. 앞서 파스카 교수는 2022년 네이처에 “배양 용기에서 키운 인간 뇌 오가노이드를 어린 쥐에게 이식해 신경세포들이 통합되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는 치매로 손상되거나 늙은 뇌세포를 인간 배아 조직으로 대체하는 치료법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참고 자료

Nature(2025),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5-08808-3

Nature(2022),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2-05277-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