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암치료를 방해하는 나쁜 세포만 정밀하게 제거하는 약물을 개발했다. 혈액암에서만 효과를 보인 기존 면역항암제와 달리 장기들에 생긴 고형암에도 효과를 보여 차세대 항암제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은 배현수, 강성호 경희대 교수 연구진이 고형암의 성장을 돕는 대식세포를 공략하는 신약후보물질을 개발했다고 14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암 면역치료 학술지(Journal for ImmunoTherapy of Cancer)’에 지난 5일 게재됐다.
면역항암제는 인체의 면역세포를 강화해 암세포를 공격하게 하는 치료법으로, 특정 혈액암에 뛰어난 효능을 보였지만, 폐암처럼 장기에 생긴 고형암에서는 치료 효과가 그만큼 나타나지 않았다. 고형암 주위의 종양미세환경이 일종의 장벽처럼 약물의 침투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특히 M2형 종양 관련 대식세포는 면역을 억제하고 암 진행을 유도하는 핵심 인자로 알려져 있다. 대식세포는 원래 암세포를 먹어 치우는 면역세포이지만, 암세포에 있는 M2형은 오히려 암 전이를 유발한다.
연구진은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지 않으면서 종양 크기를 줄이는 자연 유래 독성 물질에 주목했다. 연구를 통해 이 물질이 M2 대식세포를 표적으로 삼는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세포에서 활성화된 CD18 단백질이 주요 결합 대상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이를 바탕으로 자연 유래 물질의 분자 구조를 재설계해 독성이 낮으면서 M2 대식세포 안의 CD18 단백질을 정확히 인식하는 펩타이드 신약 후보물질 ‘TB511′을 개발했다. TB511은 정상 대식세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종양 내 M2 대식세포만을 선택적으로 제거했다.
TB511을 실험동물에 투여한 결과, 대장암과 폐암, 췌장암과 같은 고형암의 성장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면서도 정상 면역세포는 손상하지 않았다. 연구진은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TB511에 대한 임상 1/2a상 승인을 받았으며, 올해부터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배현수 교수는 “이번에 개발한 약물은 종양 내에서만 활성화된 CD18을 표적으로 M2형 대식세포만을 선택적으로 제거한다”며 “향후 범용 면역항암제 개발과 정밀 면역치료 기술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참고 자료
Journal for ImmunoTherapy of Cancer(2025), DOI: https://doi.org/10.1136/jitc-2024-011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