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병을 막을 수 있는 단백질의 실체가 처음으로 밝혀졌다. 20년 동안 해당 단백질이 파킨슨병 치료의 표적이 될 수 있다고 알려졌지만, 구조와 작동 원리가 규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호주 윌터 엘리자 홀 의학연구소(WEHI) 연구진은 14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세포에서 PINK1 단백질이 미토콘드리아와 결합한 모습을 처음으로 촬영하고, 손상된 미토콘드리아를 제거하는 원리도 규명했다”고 밝혔다. 미토콘드리아는 에너지를 만드는 세포 소기관이다.
파킨슨병은 근육의 무의식적인 운동을 담당하는 도파민 신경세포가 줄어들면서 손발이 떨리고 걸음걸이가 무거워지는 퇴행성 뇌 질환이다. 심하면 인지 능력까지 저하돼 치매를 동반한다. 파킨슨병 환자는 전 세계적으로 1000만명에 이르지만 뚜렷한 치료법은 아직 없다. 증상의 악화를 늦추는 치료제만 있을 뿐이다.
호주 연구진은 파킨슨병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진 PINK1 단백질의 구조를 처음으로 밝혀 근본적인 치료 가능성을 높였다. PINK1은 미토콘드리아 기능이 떨어지거나 손상되면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고 재생을 돕는다. 2006년 미토콘드리아 수선 능력이 떨어지면 파킨슨병으로 이어진다고 확인됐으나, PINK1이 어떻개 손상된 미토콘드리아와 결합해 수선하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진은 저온전자현미경(Cryo-EM)을 이용해 PINK1과 미토콘드리아가 결합한 구조를 처음으로 촬영했다. PINK1은 미토콘드리아 표면에 존재하는 TOM 복합체와 VDAC2 채널의 도움을 받아 결합했다. PINK1이 미토콘드리아와 결합하면 손상 부위를 분해하는 물질을 유도하는 것도 확인했다.
실비 카레가리 WEHI 선임연구원은 “PINK1이 손상된 미토콘드리아와 결합한 것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파킨슨병 환자가 가진 변이가 PINK1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미토콘드리아가 손상되면 표면에 흐르는 전기 신호가 변한다. PINK1은 이런 전기 신호의 변화를 감지하고 미토콘드리아와 결합했다. 반면 파킨슨병 환자에서는 PINK1이 미토콘드리아의 전기 신호를 제대로 읽지 못해 손상 부위를 제거하지 못했다.
PINK1의 작동 원리가 확인되면서 파킨슨병 신약 개발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데이비드 코만더 WEHI 교수는 “PINK1의 기능을 높이면 파킨슨병 환자의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글로벌 제약사들은 PINK1을 표적으로 삼아 파킨슨병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미국 제약사 애브비는 2023년 PINK1에 작용하는 파킨슨병 신약을 개발하던 미토키닌을 인수했다. 조너선 세지윅 애브비 수석부사장은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파킨슨병은 증상 완화 치료제만 있을 뿐 진행을 막을 수 있는 치료법은 없다”며 “PINK1 표적 치료제는 파킨슨병의 발병 과정을 완전히 바꿔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접근법”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생명공학기업 바이오젠도 PINK1을 이용한 파킨슨병 치료제를 연구하고 있다. 연구 결과도 여러 번 학술지에 발표했다. 바이오젠 연구진은 캐나다 맥길대와 공동으로 지난해 9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PINK1과 관계가 있는 단백질 파킨(parkin)의 활성을 높이는 분자 접착제를 찾아 발표하기도 했다.
참고 자료
Science(2025),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du6445
Nature Communications(2024),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4-5188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