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처치실 내부 전경.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는 응급실과 별도의 처치실을 마련하고 외상 환자를 돌보고 있다./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과 이로 촉발된 의정(醫政) 갈등이 권역외상센터의 인력난이란 불에 기름을 부었다. 정부는 의대생 정원을 늘려 외상외과 같은 필수 의료를 살리겠다는 논리를 폈지만, 의료계에선 오히려 필수 의료 말살 정책이란 말이 나왔다. 의정 갈등으로 전공의들이 필수 의료 분야의 전문의가 되는 길을 포기하고 대거 병원을 떠났기 때문이다.

조선비즈가 만난 권역외상센터 의료진은 의대 증원 정책과 1년여 의정 갈등이 외상 전문의들을 비롯한 필수 의료 분야 전문의들의 사기를 꺾었다고 밝혔다. 외상센터 의료진은 “이번 의정 갈등으로 필수 의료 분야를 하겠다는 후배들이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십수년간 어렵게 쌓아 올린 응급 의료체계가 무너졌다”고 비판했다.

◇전공의 이탈로 수술 지연, 전문의도 감소

외상센터는 원래 전공의가 없다. 하지만 의정 갈등으로 다른 과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면서 타격을 입었다. 허윤정 단국대병원 권역외상센터 교수는 “어디 하나 성한 데가 없는 중증 외상 환자들을 살리려면 병원의 모든 과가 달려들어야 한다”며 “외상센터에서 환자 생명줄을 붙들고 있어도 정형외과에 인력이 없어 제때 수술을 못하면 치료가 지연되고, 심각한 합병증이 생기는 식으로 문제가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의정 갈등이 지속되면 외상 전문의 배출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외상 전문의 자격은 외과, 흉부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전문의가 세부 전공으로 외상외과를 선택해 2년간 더 수련해야 취득할 수 있다. 전공의 대부분이 병원을 떠난 상황에서 외상 전문의 배출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다.

이전에도 외상 전문의 길을 걸으려는 의사는 부족했다. 외상외과 세부전문의가 처음 배출된 2011년만 해도 86명의 신규 전문의가 나왔지만, 이듬해인 2012년 48명으로 급감했고, 2013년에는 11명이 됐다. 2015년 40명으로 잠시 늘었으나 이후 다시 줄어 2020년 6명 배출에 그쳤다. 고된 근무 환경, 타 전공과 대비 적은 경제적 대가 등이 외상외과 전문의 배출 감소세의 주된 이유다. 의정 갈등은 사정을 더 나쁘게 했다.

현성열 가천대길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은 “원래 권역외상센터는 수가가 낮아 ‘돈 못 버는 과’로 낙인이 찍혀 있다”며 “금전적 보상뿐 아니라 이들이 최대한 환자를 살릴 수 있게, 이 과를 선택한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개선해 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 전공의 모집 홍보물이 붙어 있다. 최근 의정 갈등으로 외상외과 세부전공 전문의의 수련과 배출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연합뉴스

◇외상 인력 양성 예산은 전액 삭감

하지만 정부 지원은 초라하다. 외상학 전문인력 양성 사업에 정부가 투입한 예산은 2023년 10억5600만원에서 지난해 8억8800만원으로 줄었고, 올해는 ‘0원’으로 전액 삭감됐다.

정경원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은 “우리 센터에서도 지난해 외상외과 세부전공 펠로우(전임의) 중 2명에 대한 지원이 끊겨 1명이 도중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며 “간호사를 대상으로 운영하던 자체 교육 프로그램도 지원이 사라져 연 4회에서 1회로 축소했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이 줄면서 고려대구로병원이 운영하던 중증외상전문의 수련센터도 올해부터 운영이 중단될 뻔했다. 이 센터는 중증외상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정부가 11년간 운영해 왔으나, 올해 예산을 편성 받지 못했다. 서울시가 재난관리기금을 투입하기로 결정을 내리면서 센터 운영을 재개할 수 있었으나, 당장 내년에도 사업이 이어질 수 있는지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의정 갈등으로 주요 대학병원들의 수익이 나빠진 점도 권역외상센터 운영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아주대병원은 자체 재원을 투자해 권역외상센터 병상을 늘리는 계획을 추진했으나, 의정 갈등으로 중단했다. 별도의 건물에 권역외상센터 병동과 의대 증원으로 인한 교육 시설을 확충하려 했으나, 지금은 투자 계획 자체가 보류된 상황이다.

정 센터장은 “우리 센터로 이송되는 환자가 늘면서 병상이 부족해졌고, 자체적으로 병상을 100개에서 240개로 늘리는 계획을 추진했다”며 “보건복지부의 승인까지 받았으나 현재는 의정 갈등으로 이행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