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구진이 처음으로 희소 난치성 안질환을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로 치료하는 데 성공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DNA에서 특정 유전자를 자르고 붙일 수 있는 효소 단백질 복합체이다.
특히 나이가 어린 환자일수록 치료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가 발전하면 선천적으로 앞을 볼 수 없었던 환자들에게 시력을 되찾아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오리건 보건과학대 연구진은 레베르선천성흑암시(LCA) 환자 14명의 망막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주입하는 임상 1·2상 시험 결과, 시력을 일부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고 6일 밝혔다.
사람은 눈에 들어온 빛이 망막에 상을 맺으면서 사물을 볼 수 있다. LCA는 망막에서 빛을 감지하는 광수용체 세포에 문제가 생겨 심한 경우 실명까지 이르는 질환이다. 망막의 발달과 기능에 주요 역할을 하는 CEP290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겨 망막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LCA는 10만명 중 2~3명에게 나타나는 희소질환으로 아직까지 마땅한 치료제가 없다. 시각장애 특수학교 어린이의 10~18%가 이 병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리건 보건과학대와 미국 매사추세츠 안과이비인후과병원,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등 공동 연구진은 2020년 초부터 LCA 환자 14명을 대상으로 유전자 편집회사 에디타스메디슨(Editas Medicine)이 개발한 ‘에디트-101(EDIT-101)’을 시험했다. 에디트-101을 망막에 직접 주사하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CEP290의 돌연변이를 찾아 잘라낸다. 그러면 유전자 기능이 회복되고 광수용체 세포가 회복돼 시력이 향상된다.
연구진이 2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14명 중 11명(79%)이 시력과 빛에 대한 망막의 민감도, 사물 탐색 능력, 삶의 질 등 4가지 시각 척도에서 최소 1가지 이상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6명(43%)은 2가지 이상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4명(29%)은 물체나 문자를 식별하는 능력까지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치료 후 심각한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았다.
마크 펜네시 오리건 보건과학대 의대 안과 교수는 “치료를 받은 참가자들은 잘못 놓인 휴대전화를 찾거나, 작은 불빛을 보고 커피 머신이 작동하는지 알 수 있었다”며 “건강한 사람에게는 사소한 일상일 수 있으나 시각을 잃었던 사람들은 삶의 질이 크게 향상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9세와 14세 참가자가 가장 많이 증상이 호전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아직 망막이 발달하고 있을 때 에디트-101 치료를 받으면 치료 효과를 더 거둘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에릭 피어스 매사추세츠 안과이비인후과병원 교수는 “임상시험 참가자들은 원래 어떤 것도 볼 수 없고 치료 방법도 없던 사람들이었다”며 “이번 연구를 통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치료법이 LCA 같은 희귀 난치성 안질환을 치료하는 데 유망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설명했다.
학계는 이번 연구 결과를 통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LCA 외의 다른 유전성 안질환이나 실명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결과는 아직 소수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초기 임상시험이다. 앞으로 안전성과 효능을 완전히 평가하려면 대규모 장기 연구가 필요하다. 연구진은 시각을 최대한 살리려면 에디트-101을 어느 시기에 얼마만큼 주사해야 하는지 최적의 치료법을 찾을 예정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6일 국제 학술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JM)’에 실렸다.
참고 자료
NEJM(2024), DOI: https://doi.org/10.1056/NEJMoa2309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