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보 노디스크는 이르면 수개월 내로 먹는 비만 치료제의 품목 허가 신청을 할 전망이다. 먹는 비만 치료제는 주 1회 투약하는 주사제와 달리 매일 먹어야 하는 만큼 의약품 원료 수요가 폭증할 것으로 보인다./챗GPT 달리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계열 비만 치료제의 개발 트렌드가 주사제에서 먹는 약으로 넘어가면서, 시장 선점을 위해 생산 능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먹는 경구용 약은 복용하기 쉽고 용량도 많아 상용화되면 비만 치료제 수요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 이 경우 원료의 생산 능력이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할 전망이다. 국내 위탁생산(CMO) 업체들도 비만약 생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31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와 미국 일라이 릴리가 먹는 GLP-1 계열 비만약 상용화를 앞두고 생산 능력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 일라이 릴리의 마운자로가 장기간 생산량 부족으로 국가별 출시 속도를 조절했던 만큼, 먹는 비만약 출시 전에 생산 능력을 충분히 갖춰 빠르게 시장을 공략한다는 전략이다.

노보 노디스크는 비만약 위고비를 먹는 약으로 개량한 ‘리벨서스(Rybelsus)’의 허가를 추진하고 있다. 리벨서스는 2019년 당뇨병 치료제로 미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았다. 노보 노디스크는 고용량의 리벨리서스를 먹었을 때 비만 치료 효과가 있는지 임상시험으로 확인 중이다. 노보 노디스크는 이르면 수개월 안에 리벨서스의 품목허가를 신청할 것으로 보인다.

노보 노디스크는 리벨서스의 출시에 대비해 생산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지주사인 노보홀딩스는 지난해 미국 CMO 기업 카탈란트를 인수했다. 인수 금액은 165억달러(약 23조9000억원)로 지난해 제약·바이오 업계 인수합병 중 최대 규모다.

노보 노디스크의 CMO 기업 인수는 과거 시장 수요에 제때 대응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다. 노보 노디스크는 2021년 위고비를 출시했으나 수요 폭증으로 공급 부족을 겪었다. 위고비의 공급 부족 문제는 출시 4년 차인 지난해에야 해결됐다.

일라이 릴리도 먹는 비만약 ‘오르포글리프론(orforglipron)’의 내년 허가를 추진하면서 미리 생산헤 비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르포글리프론은 GLP-1 계열 비만 치료제와 달리 기존 의약품과 같은 저분자 화합물로 이뤄져 있다.

일라이 릴리는 오르포글리프론이 펩타이드 기반 의약품보다 합성과 생산이 쉬운 만큼 공급적인 면에서 사업성이 크다고 홍보하고 있다. 일라이 릴리는 자체 생산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5억5000만달러(약 8000억원) 규모의 신규 투자 계획도 최근 공개했다.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가 개발한 먹는 세마글루타이드 '리벨서스'./노보노디스크

먹는 비만 치료제는 이르면 올해부터 상용화가 시작되면서 공급 문제가 더 심화할 전망이다. 주사형 비만 치료제가 주 1회 투약하는 방식이라면, 먹는 비만 치료제는 주로 1일 1회 복용하는 방식으로 개발 중이다. 같은 기간 환자가 복용하는 양이 많아지면서 원료에 대한 수요도 폭증할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체인 글로벌데이터에 따르면 현재 개발되고 있는 경구용 비만 치료제는 63개에 달한다. 중국 항서제약은 먹는 비만 치료 후보물질인 ‘HRS-9531′을 개발해 임상 3상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 화이자는 지난해 7월 경구용 GLP-1 비만 치료 후보물질인 ‘다누글리프론’ 개발을 재개했다. 국내에서는 한미약품(128940), 디앤디파마텍(347850), 삼천당제약(000250) 등이 먹는 비만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특히 대부분 기업이 펩타이드를 기반으로 한 먹는 비만 치료제를 개발하면서 생산량이 한계에 빠르게 도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펩타이드는 단백질을 구성하는 작은 단위의 물질을 말한다. 기존 생물학적 제제는 동물세포를 배양해 생산하는 반면, 펩타이드는 박테리아나 효모 같은 미생물을 배양하거나 화학적 합성으로 만든다.

펩타이드 CMO 기업도 많지 않아 글로벌 생산량에 한계가 있다. 펩타이드로 만든 의약품이 별로 없어 시장 자체가 적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 루트 애널리시스가 2020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CMO 기업 중 50곳이 펩타이드를 생산할 수 있지만, 완제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곳은 5%에 불과하다.

국내 바이오 CMO 업체들은 GLP-1 계열 비만 치료제 원료 생산에 나서기 위해 펩타이드 생산 능력을 확보하고 있다. 존림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 대표는 지난 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펩타이드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며 “펩타이드 생산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이미 전문가를 영입한 상태”라고 말했다.

SK팜테코도 지난해 펩타이드 생산 능력을 확장하기 위한 시설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이 회사는 지난해 12월 최대 2조원 규모의 GLP-1 계열 비만 치료제 원료의약품 공급 계약도 맺었다. SK팜테코 연 매출의 2배에 이르는 대형 계약이다. 계약 기업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업계는 일라이 릴리로 추정하고 있다. 한미약품(128940) 역시 펩타이드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