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서울 관악구 갤럭스 사옥에서 만난 석차옥 대표는 “이미 본 적이 있는 데이터와 비슷한 걸 찾아내는 방식이 아니라, 학습 범위 밖에 있는 걸 예측하고 설계하는 게 드노보”라며 “그동안 계산 화학을 통해 하던 걸 AI로 대체한 건데, AI가 단백질 구조의 원리를 완전히 이해했기 때문에 새로운 단백질 구조를 만드는 게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염현아 기자

단백질은 생체 화학반응의 촉매인 효소부터 세균·바이러스와 싸우는 항체, 인슐린 같이 신진대사를 조절하는 호르몬까지 인체의 모든 생명 현상에 관여한다. 단백질에 문제가 생기면 질병이 생길 수 있다.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접히거나 뭉치면 알츠하이머병·파킨슨병이, 일부 단백질이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암을 유발한다.

국내 바이오 기업이 단백질의 구조를 예측하는 것은 물론이고, 신약이 될 단백질을 설계할 수 있는 AI(인공지능)를 개발했다. 현재 AI를 활용해 신약 후보물질을 찾아주는 업체는 많지만, 대부분 단백질 데이터베이스에서 최적의 구조를 찾아 성능을 개선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석차옥 서울대 화학부 교수가 세운 갤럭스(Galux)는 AI로 완전히 새로운 단백질을 설계하는 데 성공했다.

갤럭스는 질병 치료에 쓸 수 있는 항체 단백질 6종을 설계했다. 기존 단백질을 참고하지 않고 처음부터 새로운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기존에 없던 새로운’이라는 뜻의 라틴어인 ‘드노보(de novo)’ 단백질 설계라 불린다. 신약 개발 분야에서 가장 혁신적이지만, 도전적인 기술로 평가된다.

◇세상에 없던 新 항체 단백질 6종 공개

서울 관악구 갤럭스 본사에서 만난 석차옥 대표는 “이미 알려져 있는 물질의 정보를 이용하지 않고, 세상에 없었던 분자를 설계하는 게 드노보 기술”이라며 “그동안 계산화학을 통해 하던 걸 AI로 대체한 건데, AI가 단백질 구조의 원리를 완전히 이해하면 새로운 단백질 설계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단백질은 20가지 아미노산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연결된 형태이다. DNA 유전자는 아미노산의 연결 순서를 지정하는 정보를 담고 있다. DNA만 알면 단백질도 쉽게 파악할 것 같지만 현실은 다르다. 아미노산 사슬들이 서로 접히면서 3차원 구조를 만드는 과정은 워낙 변수가 많아 유전정보만으로는 입체 구조를 예측하기 어려웠다.

AI는 단백질 구조 해석에서 혁명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AI는 지금까지 구조가 확인된 단백질 정보를 학습해 유전정보와 단백질 입체 구조 사이의 연관 관계를 스스로 파악했다. 실험을 하지 않고도 단백질 구조를 알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갤럭스는 여기서 더 나아가 기존 단백질 구조 해석 데이터를 학습하지 않고 세상에 없는 단백질을 설계했다.

갤럭스는 지난 17일 단백질 설계 AI인 ‘갤럭스 디자인(GaluxDesign)’으로 설계한 6가지 신종 항체 후보물질을 논문 사전공개 사이트인 바이오 아카이브(bioRxiv)에 공개했다. 항체들은 PD-L1, HER2, EGFR, ACVR2A/B, FZD7, ALK7 단백질에 결합해 병원체를 공격한다.

갤럭스는 항체의 실제 결합력과 안정성을 검증한 결과, 현재 상용화된 항체 신약과 비슷하거나 더 우수한 것을 입증했다고 밝혔다. 특히 ALK7은 아직 구조가 밝혀지지 않았는데 그에 맞는 새로운 항체를 설계했다. 적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맞춤형 신형 미사일을 개발한 셈이다.

갤럭스를 비롯해 드노보 항체 설계에 성공한 곳은 전 세계 3곳뿐이다. 지난해 미국 나블라 바이오(Nabla Bio)가 드노보로 항체를 설계한 사례 1건을 공개했고, 앞서 2021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데이비드 베이커(David Baker) 미국 워싱턴대 교수가 AI 드노보 플랫폼인 ‘로제타폴드(RosettaFold)’로 2종을 찾아 발표했다.

갤럭스는 지금까지 공개된 것 중에 가장 다양한 항체 단백질을 새롭게 설계하는 데 성공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나블라 바이오, 베이커 교수가 앞서 공개한 항체보다 결합력도 키웠다. 물질의 농도를 뜻하는 1몰(mol)의 10억분의 1 크기인 나노몰(nmol) 수준의 농도에서 결합하는 항체를 개발했는데, 갤럭스가 찾은 항체 중 가장 강력한 항체는 나노몰보다 1000배 작은 1몰의 1조분의 1 크기인 피코몰(pmol) 농도에서도 항원에 결합했다.

석 대표는 크기가 작을수록 설계 정밀도도 높아져, 표적 단백질에 정확하게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 몸에는 비슷한 단백질이 많아 A라는 단백질을 표적하는 약물이 A에만 작용하는 게 아니라, A′이나 A″, 혹은 전혀 다른 곳에 가서 또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며 “A와 A′의 아주 미세한 차이를 구별해 A 단백질에만 정확하게 딱 붙도록 정밀도와 민감도를 높인 게 갤럭스 디자인의 차별점”이라고 말했다.

갤럭스 디자인을 통해 설계된 항체와 각 치료 타겟의 결합력을 검증하는 도표 이미지./갤럭스

◇ADC·이중항체·백신 모두 적용 가능

석 대표는 갤럭스의 드노보 연구 성과의 핵심 요인으로 AI 학습 방식의 차별성을 꼽았다. AI에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넣어 단백질 구조 패턴을 외우고 학습시키는 게 기존 AI 업체들의 방식이라면, 갤럭스는 처음부터 패턴이 아닌 단백질 구조의 원리를 가르치는 전략을 폈다. 단백질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어떤 형태로 어떻게 배열되는지 완벽하게 이해하도록 학습시키는 방식이다.

석 대표는 “수학 문제를 풀 때 비슷한 문제 유형을 냅다 외우면 응용력이 높아져서 해당 유형의 문제는 모두 풀 수 있어도, 그 유형이 복잡해지거나 접해보지 못한 유형이 나오면 문제를 풀지 못해 추가적인 학습이 필요하다”며 “반면, 원리를 제대로 깨우쳐 다양한 유형은 물론, 완전히 새로운 문제도 만들어내는 게 우리 AI 플랫폼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같은 데이터라도 어떤 순서로 보여주고, 어떤 방식으로 학습을 유도하는지에 따라 AI가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낸다”며 “갤럭스는 기존 데이터를 변형하거나 참고하는 방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단백질 원리를 완전히 이해하는 AI를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갤럭스의 AI 학습 방식으로 드노보가 탄생한 데에는 석 대표의 노하우가 주효했다. 석 대표는 2020년 서울대 화학부 제자들과 함께 설립했다. 석 대표는 20년 넘게 물리화학을 기반으로 단백질 구조 예측 분야를 연구한 과학자이다. 학계의 인정을 받아 2018년과 2020년 국제 단백질 구조 예측 대회(CASP)의 심사도 맡았다. 구글 딥마인드의 단백질 구조 예측 AI ‘알파폴드(AlphaFold) 1과 2가 각각 그 대회에서 발표됐다.

갤럭스는 이번 연구를 통해 갤럭스 디자인이 항체약물접합체(ADC), 이중항체, 세포치료제, 백신 등 다양한 모달리티(Modality·약물전달기술)에 적용될 수 있는 높은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석 대표는 “갤럭스의 AI 플랫폼은 특정 모달리티에 국한되지 않고 암, 대사질환, 뇌 질환 등 다양한 질병에 활용할 수 있다”며 “지난 2년간 진행한 테스트에서 정밀·민감도를 높여 신약 효능과 성공률도 높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앞으로 갤럭스는 드노보 설계를 기반으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현재 LG화학(051910), 와이바이오로직스(338840) 등 국내 신약개발사와 협력해 신약을 공동 개발 중이며, 글로벌 파트너십도 추진 중이다. 석 대표는 “우선 예측·설계 플랫폼을 완성한 만큼, 이제 신약 개발로 이어지는 사례를 만들어 나가는 게 목표”라며 “현재 여러 글로벌 제약사들과 협력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참고 자료

bioRxiv(2025), DOI: https://doi.org/10.1101/2025.03.09.6422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