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제약업체 로슈.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 미국 일라이 릴리가 양분하고 있는 비만약 시장에 후발주자로 뛰어든 글로벌 제약사들이 새로운 전략을 내세우며 시장 진입을 노리고 있다. 주로 개발해온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계열에 다른 작용제를 결합해 기존 비만약보다 체중 감량 효과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스위스 로슈는 12일(현지 시각) 덴마크 바이오텍 질랜드파마(Zealand Pharma)로부터 비만 신약 후보물질 ‘페트렐린타이드(petrelintide)’의 기술을 사들이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페트렐린타이드가 임상 3상 시험에 돌입할 경우 개발 마일스톤(단계적 기술료)으로 12억달러(약 1조7400억원), 판매 마일스톤 24억달러(3조4800억원)를 포함해 총 계약 규모는 최대 53억달러(약 7조6800억원)에 달한다. 질랜드파마는 페트렐린타이드의 임상 2상 시험을 하고 있다.

페트렐린타이드는 췌장에서 인슐린과 함께 분비되는 호르몬인 아밀린을 모방해 배고픔을 막아주는 아밀린 유사체다. GLP-1처럼 식욕을 조절하고 위 배출 속도를 늦춰 포만감을 높인다. 질랜드파마는 약효가 장기적으로 지속하는 아밀린 유사체를 주 1회 투여하는 피하주사 형태로 개발 중이다.

로슈는 현재 질랜드파마가 개발 중인 페트렐린타이드의 단독요법과 함께 GLP-1·인슐린 분비 자극 펩타이드(GIP)를 동시 활성화하는 이중 작용제 CT-388과 페트렐린타이드의 병용요법도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체중 감량뿐 아니라 심혈관·신장·대사(CVRM) 질환도 같은 방법으로 치료하겠다고 밝혔다.

테레사 그레이엄(Teresa Graham) 로슈 최고경영자(CEO)는 “질랜드파마와 협력해 비만은 물론 관련 동반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는 유망한 치료제를 개발하게 돼 기대가 크다”며 “페트렐린타이드를 심혈관·대사 질환 치료 물질과 결합해 환자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로슈에 앞서 미국 애브비도 지난 4일 아밀린 유사체를 활용한 비만약 시장 입성을 발표했다. 이 회사는 덴마크 제약사 구브라와 비만 신약 후보물질 ‘GUB014295′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계약 규모는 최대 3조2000억원으로 알려졌다. 구브라는 현재 임상 1상에서 GUB014295의 효능과 안전성을 평가하고 있다.

비만약 위고비로 시장을 선도한 노보 노디스크도 아밀린 유사체를 활용한 후속 비만약을 개발 중이다. 카그리린티드(cagrilintide)와 GLP-1 계열의 위고비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semaglutide)의 복합제 ‘카그리세마(CagriSema)’의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카그리세마의 체중 감량 효과는 위고비보다는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지만 앞서 제시한 목표 체중 감량률인 25%는 달성하지 못했다.

일라이 릴리도 아밀린 유사체인 ‘엘로랄린타이드(eloralintide)’의 임상 2상을 진행하고 있으며, 올해 9월 연구를 마칠 전망이다. 영국 아스트라제네카도 아밀린 ‘AZD6234′와 GLP-1·글루카곤(GCG) 이중 작용제 ‘AZD9550′와의 병용요법에 대한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