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에서 ‘바이오 & 디지털 헬스 오픈이노베이션’ 포럼이 열리는 모습./런던(영국)=염현아 기자

“한국은 국민건강보험제도와 전자문진표 도입률이 90%를 넘어서면서 데이터 표본을 확보했고, 총 100만명의 유전체 정보를 모으는 바이오빅데이터 구축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빅데이터를 인공지능(AI) 디지털 기술과 접목하면 개인 맞춤형 의료가 가능해집니다.”

정은영 보건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장은 4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에서 열린 ‘바이오 & 디지털 헬스 오픈이노베이션’ 포럼 축사를 통해 “국립암센터와 40개 거점병원을 중심으로 대규모 암 환자 데이터를 수집해 대학·병원·제약사 등 신약개발 연구자들에게 개방하는 ‘K플랫폼’으로 혁신을 이끌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3~4일 이틀간 열리는 이번 포럼은 영국 과학혁신기술부와 의학연구위원회(MRC), 킹스칼리지런던(KCL)이 공동 주최했다. 주제는 ‘바이오·AI 기술을 통한 건강·질병 해결과 오픈이노베이션 육성’이다.

이번 포럼은 한국과 일본, 영국이 바이오·디지털 헬스 분야의 최신 기술을 공유하고, 협력 방안을 찾는 첫 자리다. 영국 산업통상부(DBT), 한국 보건복지부·한국보건산업진흥원·서울바이오허브, 일본 무역진흥기구(JETRO)가 참석했다. 포럼 이틀째인 4일, 한국의 AI·디지털 헬스 혁신을 위한 주요 정책이 소개됐다.

삼정KPMG는 지난해 ‘AI로 촉발된 헬스케어 산업의 대전환’ 보고서에서 한국의 AI 헬스케어 시장이 2023년 3억7700만달러(한화 5400억원)에서 2030년 66억7200만달러(9조55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는 연평균 50.8% 성장하는 것으로 같은 기간 세계 평균(41.8%)을 웃도는 수치다.

영국 기관도 한국의 디지털 헬스 기술 발전에 기대를 내비쳤다. 지오바나 랄리(Giovanna Lalli) 영국 라이프아크(LifeARC) 디렉터는 “한국은 AI를 활용한 신약, 디지털 치료제 개발은 물론, 병원용 어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이나 원격진료 등 디지털 헬스 분야에 강점이 있다”며 “이러한 디지털 의료 기술은 곧 환자에 혁신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라이프아크는 영국의 의학연구단체로, 한국의 국가신약개발사업단(KDDF)과 같은 역할을 한다. 라이프아크는 미국 머크(MSD)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의 전임상·1상 시험을 진행했다. 키트루다는 2023년과 2024년 전 세계 매출 1위 의약품에 올랐다. 라이프아크는 현재 제2의 키트루다를 찾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마사히데 사키시게 일본 무역진흥기구(JETRO) 부국장도 “일본은 의료·헬스케어 분야에서 ICT(정보통신기술) 활용과 AI 도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며 “이 분야에서 빠르게 정착하고 있는 한국과 앞으로 긴밀한 협력을 기대한다”고 했다.

국내에서는 AI·디지털 헬스 생태계 조성을 위해 대규모 펀드를 조성하고 있다. 복지부는 2022년 신약 개발과 백신 분야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복지부와 국책은행 출자와 민간자금을 합쳐 1조원 규모의 ‘K바이오·백신 메가펀드’를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정은영 보건산업정책국장은 “투자 시장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3060억원이 조성됐으며, 올해는 600억원 이상 조성을 추진 중”이라며 “1·2차 펀드가 결성됐으며, 오늘 1000억원 규모의 3호 펀드 주관 운용사로 데일리파트너스와 NH투자증권이 최종 선정됐다”고 했다.

정은영 보건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장은 4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에서 열린 ‘바이오 & 디지털 헬스 오픈이노베이션’ 포럼 축사를 통해 “국립암센터와 40개 거점병원을 중심으로 대규모 암 환자 데이터를 수집해, 대학·병원·제약사 등 신약개발 연구자들에게 개방하는 K플랫폼으로 혁신을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한국보건산업진흥원

대학, 병원의 연구 성과가 상용화되는 성공 사례로 잇따라 나왔다. 이날 포럼에서는 불면증 인지개선 디지털 치료제(DTx) ‘슬립큐(SleepQ)’를 개발한 웰트(WELT)와 석차옥 서울대 화학과 교수가 박태용 부사장을 비롯한 3명의 제자와 창업한 AI 신약개발 기업 갤럭스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자사 주요 핵심 기술을 소개했다.

강성지 웰트 대표는 “슬립큐는 AI 소프트웨어가 6~8주 동안 수면 패턴을 분석해 환자 맞춤형 치료를 제공하는 원리”라며 “AI와 디지털 헬스 기술을 고도화해 불면증, 우울증, 섭식 장애, 약물 중독 등 다양한 질병에 대응하는 디지털 제약사가 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국산 디지털 치료제 2호인 슬립큐는 2023년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허가를 받아, 지난해 6월부터 세브란스병원에서 처방이 시작됐다.

박태용 갤럭스 부사장은 “AI로 단백질 구조를 찾는 데는 크게 ‘프로틴 엔지니어링’과 ‘드노보(De novo) 디자인’, 두 가지 방법이 있다”며 “기존에 있던 단백질에서 구조를 바꿔 치료제로서 효능을 높이는 프로틴 엔지니어링 기술에 더해, 아예 처음부터 새로운 단백질 구조를 만들어 내는 드노보 디자인으로 새로운 항체 신약을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뉴라클사이언스(신경계 치료 신약 개발), 프로앱텍(통풍치료제), 엔파티클(나노입자·마이크로 입자 제조) 등 기업도 자체 개발한 기술을 발표했다.

세계 최초의 디지털병원인 분당서울대병원은 2023년 의료진과 입원환자, 보호자가 직접 만나지 않고도 회진과 상담이 가능한 ‘온라인 상담’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림은 의료진과 환자가 비대면으로 상담을 하는 모습./분당서울대병원

AI·디지털 헬스 기술은 서울아산병원, 분당서울대병원 등 국내 주요 병원에서 활용하고 있다. 김남국 서울아산병원 융합의학과 교수 연구팀은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을 조기 진단하기 위해 폐 기능을 예측하는 AI를 개발했다.

김 교수는 2015~2018년 건강검진을 받은 1만6148명의 저선량 흉부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 결과와 폐 기능 검사 결과를 AI에 학습시켜, 90% 이상의 정확도로 폐 기능을 예측하는 데 성공했다. COPD를 비롯해 폐 질환을 조기 진단하는 AI 프로그램 10종을 국내 의료AI 기업인 코어라인소프트(384470)에 기술을 이전했다.

강소현 분당서울대병원 외과 교수는 5년 전 설립된 의료인공지능(AI)센터를 소개했다. 분당서울대학교병원은 세계 최초 100% 디지털병원을 표방하며 개원했다. 그에 발맞춰 2023년 의료진과 입원환자, 보호자가 직접 만나지 않고도 회진과 상담이 가능한 ‘온라인 상담’ 시스템도 도입했다.

강 교수는 “우리 병원의 의료AI센터는 의료AI 연구에 관심 있는 의사, 간호사들에게 교육 서비스는 물론 여러 R&D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며 “환자의 입원 기록, 실험실 검사 또는 영상 검사 결과 데이터, 입원 메모를 기반으로 LMM(대규모 언어 모델)을 사용해 의료 기록을 생성하는 AI를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