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개발·재건축 등 도시정비사업에 참여하는 건설사들이 조합에 미분양 리스크 분담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과거 부동산 경기가 호황일 때 건설사들은 책임준공 확약 등 정비 사업을 따내기 위한 출혈 경쟁마저 불사했지만, 지금은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불황이 지속되는 시장 상황에 건설사들은 서울 일부 핵심 지역을 제외하고는 사업성이 높지 않은 정비사업을 수주할 경우 미분양 위험이 커진 상황이다.
26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경기도 의정부 424번지 일원 의정부동지역주택조합에서 추진 중인 정비사업이 시공사 선정 단계에 있다. 현재 쌍용건설, 현대산업개발 등이 해당 조합과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업에 관심이 있는 시공사들은 공통적으로 조합에 미분양 리스크를 조합원 분담금에 포함하자고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건설사는 약정된 미분양 리스크가 반영된 분양가의 15%를 자납해 달라는 요청도 했다.
건설사가 조합에 미분양 위험을 분담해 달라고 요구하는 사례는 이 사업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최근 서울 핵심 지역과 일부 수도권을 제외하고는 미분양 위험이 늘어나면서 건설사는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조합에 미분양을 대비한 별도의 비용 책정을 요구하고 있다. 분양 시 홍보, 할인 등에 사용되는 이 비용은 불과 5~6년 전만 해도 건설사가 부담하던 부분이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지역주택조합(지주택) 사업의 경우 일반 사업보다 사업성이 떨어지거나 분양 리스크가 큰 경우가 많다”며 “그래서 최근에는 사업 참여 전 조합이 주택이나 상가 미분양에 대해 리스크를 분담해줘야 한다는 조건을 많이 걸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건설사들의 행태는 최근 미분양이 급증하면서 공사가 끝나도 자금 회수가 어려워 유동성 위기까지 발생하는 건설사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금 회수 가능성이 크지 않은 시기에 공사비마저 큰 폭으로 오르고 있어 사업을 진행해도 큰 이익이 남지 않자 건설사들은 이전만큼 적극적으로 정비 사업에 뛰어들지 않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1월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7만2624가구로 전월 대비 3.5% 증가했다. 특히 악성 미분양으로 분류하는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2만2872가구에 달했다. 이는 2013년 10월(2만3306가구) 이후 11년 3개월 만에 가장 큰 규모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서울이라도 핵심 지역을 제외하고서는 사업성이 떨어지는 사업이 있는데, 지방은 말할 것도 없다”며 “지방의 경우 미분양이 많아 도산하는 지역 건설사도 많은 상황인데 시공사가 굳이 미분양 리스크까지 부담하면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어렵다는 판단”이라고 했다.
이러한 상황에 정비 사업을 진행 중인 조합들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 지주택 조합 관계자는 “미분양 리스크를 최근에 대부분의 시공사들이 요구하고 있어 사업 진행에 애로가 있다”며 “부동산 경기 침체로 시공사와 조합원 간 이견이 큰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