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K파트너스가 서울회생법원에 제출한 홈플러스 ‘회생절차 개시 명령 신청서’의 단어 하나 때문에 홈플러스 매장을 인수한 투자자들이 큰 혼란에 빠졌다.

홈플러스는 2015년 MBK 인수 당시 점포 수가 142개였지만, 현재는 126개(직영 60곳+임대 66곳)로 줄었다. 안산점, 대전 둔산‧탄방점 등을 폐점한 후 매각했고 목포 상동부지, 남양주 별내 부지, 인천 무의도 연수원 등도 매각했다. 임대 매장은 66곳으로 이 중 상당수는 매각해 소유권을 넘긴 후 동시에 장기 임차 계약을 맺는 ‘매각 후 재임차(세일앤리스백·Sale & Lease Back)’ 방식으로 운영 중이다.

홈플러스 임대 매장의 주요 투자자는 건설사, 시행개발사, 자산운용사, 증권사 등이다. 국내 최대 시행사 엠디엠(MDM)은 ‘카임전문투자형사모부동산투자신탁’을 통해 10곳을 인수했다. 이외에 10여곳이 넘는 건설사와 금융회사가 매장을 같은 방식으로 인수했다. 이들이 매각 후 재임차 방식으로 MBK에 지급한 돈은 2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MBK파트너스가 법원에 제출한 회생 신청서에는 매각한 매장에 대한 소유권을 아직도 MBK파트너스가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를 담은 용어를 사용했다. 아파트를 판 후 다시 임대해 월세로 거주한 후 임대차계약이 끝나는 시점에 “아파트 소유권을 넘긴 적이 없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MBK가 이미 매각한 매장의 토지와 건물에 대해 소유권을 넘긴 적이 없다고 주장하며 임대료를 깎거나 탕감하려는 전략을 펼 것으로 예상한다. MBK가 임대료를 내지 않고 버티면 홈플러스 매장을 산 투자자들은 인수를 위해 1‧2금융권에서 조달한 대출을 갚지 못해 다수의 매장이 경‧공매되고, 홈플러스는 파산할 가능성도 있다.

서울 시내 한 홈플러스 점포의 모습. /뉴스1 ⓒ News1

25일 금융투자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4일 홈플러스는 서울회생법원에 제출한 ‘회생절차 개시명령 신청서’에 손해배상채권을 ‘회생담보권’으로 처리하겠다고 했다. 홈플러스 회생 가능성과 그 방법에 대해 논한 신청서 40페이지에는 “해당 임차인과 차임 재조정을 시도함과 아울러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119조 제1항에 의한 쌍방미이행 쌍무계약에 관한 계약해지권을 활용한 후 해지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에 대하여는 회생담보권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사용하여 회생채권자들 일반의 이익 증진을 위하여 필요한 잉여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고 썼다.

세일앤리스백으로 매장의 토지와 건물을 매입한 투자자들이 혼란에 빠진 용어는 ‘회생담보권’이다. 홈플러스가 말한 회생담보권은 소유권이 넘어간 자산에는 사용할 수 없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매장을 세일앤리스백으로 넘길 때 소유권이 아니라 담보로 줬다고 주장하는 것”이라며 “법리를 잘 알고 있는 사모펀드가 고의로 이런 용어를 사용해 투자자들을 혼란에 빠트려 벼랑끝 전술을 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매장을 판 게 아니고 담보로 맡기고 일종의 대출을 받은 것이라는 의미다. 이 경우 계약이 해지되면 매장 소유권은 MBK파트너스에게 되돌아온다.

홈플러스의 법률대리인 김박법률사무소가 지난 3월 4일 서울회생법원에 제출한 '회생절차 개시명령 신청서'의 일부. 손해배상채권을 회생담보권으로 처리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 사진 = 정해용 기자

MBK파트너스는 회생담보권이라는 용어에 대한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힌 적은 없다. 그러나 관계자들의 언급과 금융당국에 제출한 감사보고서에는 투자자들의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언급이 나온다.

대표적인 것은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에서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 겸 홈플러스 공동대표의 발언이다. 김 부회장은 이 자리에 출석해 이강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MBK 인수 후 홈플러스 매장 매각 대금이 얼마냐?”는 질의에 “1조7000억~1조8000억원 정도”라고 했다. “금액이 알려진 것보다 너무 적다”며 “최소 4조원 이상이 될 것”이라는 이 의원의 지적에 김 부회장은 “그 부분은(4조원) 세일앤리스백이라는 금융 상품에 관한 부분을 포함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회장이 말한 1조7000억~1조8000억원은 MBK가 2015년 홈플러스를 인수한 후 폐점을 결정해 매각한 매장과 부지에 대한 매각금액으로 세일앤리스백으로 영업을 계속하고 있는 곳에 대한 매각금액은 제외한 수치다.

회생신청서를 작성한 김관기 김박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도 “고객과의 비밀유지 의무로 (회생담보권의 의미에 대해) 말할 수 없다”고 했다.

홈플러스가 지난해 5월 말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감사보고서에도 관련된 언급이 있다. 감사보고서에서 홈플러스는 “당사는 다양한 사무실, 창고, 매장을 리스(lease)하고 있다”고 했다. 또 “판매후리스 거래를 통한 자산의 이전은 기업회계기준서 제1115호에 따라 판단하였으며, 진정양도(True Sale)에 해당되지 않는 경우 해당 매각 대금 수취거래를 담보부 차입거래로 인식했다”고 밝혔다. 진짜로 판 것이 아닌 곳도 있어 이에 대한 매각 대금은 대출금으로 회계처리했다는 의미다.

그래픽=손민균

소유권 등기가 이뤄진 세일앤리스백 계약에 대해 회생담보권을 주장한 전례는 없다. 이 때문에 MBK가 회생 신청서에 적힌 대로 회생담보권을 언급하며 “매장 소유권을 넘긴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홈플러스가 임대차계약을 해지하면 투자자들은 이에 따른 손해배상액을 회수하기 어려워질 전망이다.

이지스자산운용, 산업은행, 농협, DL그룹, 마스턴투자운용, MDM, KB부동산신탁 등 다수 투자자는 재산권 행사에도 제약이 생긴다. 또 매장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투자자들이 은행과 캐피털사 등 1‧2금융권에 빌린 대출금 회수도 어려워질 수 있다. 대출금 규모가 5조5000억원 수준이라는 추산도 나온다. 임차 운영 중인 66곳 매장의 장부가치는 7조3000억원에 달한다.

변선보 법무법인 지음 변호사는 “소유권을 확보한 홈플러스 매장에 대해 담보에 준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말이 안 되는 용어”라며 “세일앤리스백에 따른 임대차계약은 회생담보권이 적용될 사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성하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는 “구체적인 계약 관계를 봐야 하지만 MBK가 세일앤리스백 거래를 돈을 빌리기 위해 외형적으로만 소유권을 넘긴 일종의 ‘양도 담보’라고 주장하며 트루세일(True Sale‧실제 매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고, 세일앤리스백 투자자들은 실제 소유권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상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