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구 서구 내당동 반고개역 푸르지오 아파트에 '1억 이상 파격 할인'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건설업계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지방 악성 미분양 아파트 매입 상한가가 공개된 후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매입 상한가가 기대보다 낮게 설정되자 악성 주택 재고를 낮은 가격에라도 LH에 넘겨 유동성을 확보하는 게 나을지, 혹은 부동산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매물을 안고 가는 게 유리한지 저울질에 나선 것이다. 이에 따라 이번 LH의 지방 악성 미분양 매입에는 주택 가격을 대폭 깎더라도 악성 미분양을 털어내 자금 여력을 확보해야 하는 회사 위주로 신청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3일 국토교통부와 LH에 따르면 LH는 지방 악성 미분양 아파트 매입 가격을 자체 감정평가액의 83%를 상한으로 설정했다. 실제 매입은 업계가 제시한 매도 희망가가 낮은 순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매입 상한가는 과거 매입 사례, 지방 주택 경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충분한 업계 자구노력을 위해 감정평가금액의 83%를 상한으로 설정했다”며 “‘고분양가’가 미분양의 주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만큼 별도 감정평가를 통해 실제 거래가격을 반영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했다.

앞서 LH는 지난달 비수도권을 중심으로 악성 미분양 문제가 심각해지자 지방의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 3000가구를 직접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다 짓고도 팔리지 않은 악성 미분양 주택은 올해 1월 2만3000가구에 육박하며 11년 3개월 만에 최대치가 됐다.

건설업계에서는 매입 상한가를 두고 상당히 낮은 수준이라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매입 단가를 결정하는 기준이 분양가가 아닌 LH의 자체 감정평가액이 되면서 실제 분양가보다 크게 할인된 가격에 악성 미분양을 매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유동성 확보가 시급한 회사 위주로 LH에 악성 재고를 매도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간 LH의 기축 매입 사업 시 적용된 감정평가액을 살펴보면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감정평가한 금액보다 20~30% 낮은 수준”이라며 “이를 기준으로 하면 LH에서 제시한 매입 상한가는 분양가의 60% 수준에 그친다”고 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공사비가 많이 올라 가격 인하 여력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헐값에 주택을 매도할 곳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당장 자금 상황이 급한 회사라면 헐값이라도 악성 재고를 매도하려고 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LH는 악성 미분양 주택 매입 상한가를 더 올리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LH의 지난해 반기 기준 부채가 152조원이 넘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악성 미분양 아파트의 가격을 더 올려주는 것은 무리다. 건설사의 사업 판단에 따른 실패를 공공기관이 책임져 주는 ‘도덕적 해이’ 논란이 있다는 것도 LH가 악성 미분양 가격을 올릴 수 없는 이유다.

자금 여력이 있는 회사들은 금리 추가 인하 등에 따른 부동산 시장 회복 가능성과 정치권의 추가 미분양 대책 등을 고려해 악성 미분양 처분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회에서는 지방에 있는 추가 주택을 구입할 경우 다주택자 중과세를 폐지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만약 지방 부동산에 대한 민간 매입 수요가 되살아날 가능성이 있다면 헐값에 악성 미분양 아파트를 넘기는 대신 주택 시장이 회복될 때까지 버텨 제값을 받으려는 회사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건설업계 관계자는 “체력이 있는 회사들은 추가적인 금리 인하 등에 따른 지방 부동산 시장의 회복 여부 등을 따져서 악성 미분양을 매도할지 결정할 것”이라며 “최근 정치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지방 미분양에 관한 대책이 더 나올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굳이 가격을 낮춰서까지 팔려는 곳들이 없을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