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가구 이상 공공주택에 한정했던 지역자치단체 지정감리 대상을 민간 다중이용 시설까지 확대하는 법안이 나와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법안 발의 취지는 ‘건설 카르텔’을 막아 안전을 강화하겠다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안전사고, 부실시공의 가능성을 더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권영진 국민의힘 의원은 ‘건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지난 1월 대표발의했다. 연면적 5000㎡ 이상 문화·집회·판매시설 또는 16층 이상 건축물 등 대규모 다중이용시설을 지정감리제 대상으로 지정하자는 것이 개정안의 골자다. 현재 건축주가 직접 시공하는 소규모 건축물과 30가구 이상 공동주택에 적용되고 있는 지정감리제를 확대하자는 내용이다. 지정감리제는 지자체 등 허가권자가 직접 감리를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는 국토부가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 후 재발 방지책으로 2023년 말 발표한 건설카르텔 혁신 방안을 권영진 의원이 입법 발의한 것이다. 개정안의 취지는 감리가 건축주에 예속되는 것을 막고, 독립성을 확보해 부실시공을 예방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간감리업계는 지정감리제 확대가 되레 부실시공, 안전사고를 키울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지자체 등 허가권자가 감리업체를 선정하는 방식이 사실상 최소자격 기준을 통과한 업체 중 뽑기식 선정인 ‘운찰제’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인천 검단 붕괴사고’,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등 대형 부실공사 현장도 공공기관, 인허가권자가 감리자를 선정한 주택 공사 현장이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개정안이 통과되면 공공발주 증가로 일정 자격요건만 갖추면 수주가 가능해진다”면서 “경쟁이 약화되면서 기술개발, 업무혁신 등은 줄어들고, 수동적 검측만 수행하는 경향이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정부 입법’이 아닌 ‘의원 입법’을 통해 법안 개정과정이 졸속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입법은 국회제출에 법안이 제출되기까지 관계부처 협의와 공청회, 법제처 심사, 국무회의, 대통령 재가를 거쳐야 하지만 의원입법은 그 절차가 훨씬 간편하다. 법안을 작성해 의원 10명 이상 서명을 받으면 국회에 제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리제도의 변경은 관련법 개정 주체가 국토부로, 건축물의 안전, 산업에 미치는 영향 등이 막대하다. 이같은 사안을 의원 입법으로 진행하게 되면 공청회, 토론회 등 객관적인 검증, 논의를 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공사비 증가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통상 건설사업관리(CM·PM) 계약을 맺을 때 감리도 포함되는데, 지자체가 별도로 감리업체를 선정하면 발주자 입장에서는 별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감리비 만으로 2배 이상의 비용이 들 수 있어 공사비를 더 상승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시행업체의 임원은 “LH 카르텔로 공공발주 감리의 혁신이 필요한 상황인데 지정감리제 확대는 이를 역행하는 것”이라면서 “공공의 비효율적인 발주시스템 확장을 통한 감리업계 하향평준화로 부실 공사의 위험성이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고 했다.
김승배 한국부동산개발협회 회장(피데스개발 대표)은 “민간 건축물의 규모와 용도에 따라 감리 기준이 달라야 하고, 그 수행능력을 평가해서 적합한 회사를 복수로 추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공공이 정하면 공공이 사업주와 함께 책임지도록 하는 구조를 만들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국토부는 업계의 반발이 커지자 지난달 20일 보도자료를 통해 입장을 발표했다. 국토부는 “건축법 개정을 통해 허가권자 지정감리 확대의 법적 근거를 마련 중에 있으며, 향후 하위법령 개정 과정에서 적격심사 방식에 대해 지자체 및 관련 산업계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