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신사옥 추가 공사비를 두고 시공사인 쌍용건설과 갈등을 보이는 KT가 최근 한 시공사가 제기한 추가 공사비 관련 소송에 패소하면서 건설업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6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14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5부(부장판사 김경수)는 지난해 11월 20일 GS건설이 KT를 상대로 제기한 공사대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GS건설이 청구한 공사대금 약 98억4378만원 가운데 76억7127만원과 이자를 KT에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소송비용은 GS건설과 KT가 각각 30%, 70%씩 부담하라고 했다.
앞서 GS건설은 2016년 7월 KT 신사지사를 복합시설로 개발하는 신축공사를 1133억원에 수주했고, 2019년 4월 준공을 목표로 공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세 차례에 걸친 설계 변경으로 목표 준공 기일보다 3개월 뒤인 2019년 7월에서야 공사를 마쳤다.
GS건설은 설계 변경에 따른 추가 공사비 약 89억9911만원과 공사기간 연장으로 인한 간접 공사비 8억4356만원, 미지급 공사비 110만원을 비롯한 지연 손해금 지급을 KT에 요구했다. KT는 공사 지연이 시공사 귀책이라며 지급을 거부하면서 2020년 5월부터 GS건설과의 소송전이 벌어졌다.
재판부는 KT 요구로 설계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추가 공사비가 발생했고, 공사 기간이 길어진 것이라는 GS건설의 주장을 대부분 인용했다.
재판부는 “원고(GS건설)가 설계변경 사유, 조정 계약금액 등을 기재해 승인을 요청하는 실정보고서를 제출했고 감리단 검토와 공정 회의를 거쳐 피고의 설계변경 승인에 따라 시공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며 “피고(KT)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고에게 설계변경에 따른 추가 공사비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건설업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공사비 증액 분을 시공사가 모두 부담하도록 하는 게 부당하다는 추세를 반영했기 때문에 긍정적인 결과라는 반응이 나온다.
A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사회 전반적으로 공사비가 올라가는 다양한 요인이 있는데 시공사가 오롯이 상승분을 다 부담하게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분위기가 번지고 있다”며 “이번 GS건설과 KT 소송 결과를 보더라도 재판부가 시공사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판결을 내린 것은 다른 공사비 분쟁에서도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GS건설 소송 사례는 KT와 서로 합의를 거쳐 설계변경한 것에 대한 공사비 증액을 인정한 것으로, 현재 진행 중인 다른 공사비 분쟁들과는 성격적으로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게 건설업계 중론이다.
B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설계 변경은 시행사와 시공사가 상호 합의 하에 이뤄지는 것으로, 늘어난 공사비에 대해 시공사가 인정을 받는 게 수월한 편”이라면서도 “쌍용건설, 현대건설, 롯데건설, 한신공영 등이 KT와 소송전을 벌이는 사유는 ‘물가변동 배제특약’의 효력에 대한 해석의 차이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KT는 판교 신사옥 추가 공사비 171억원 지급을 요구하는 쌍용건설을 상대로 지난해 5월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걸었다. 물가변동 배제 특약에 따라 추가 공사비 지급 의무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쌍용건설도 공사대금 청구 반소를 제기했고, 오는 14일 첫 변론을 진행할 예정이다.
KT 자회사인 KT에스테이트도 지난해 6월 부산 초량 오피스텔 개발사업 시공을 맡은 한신공영이 추가 공사비 140억원을 요구하자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KT는 올해 준공을 앞둔 KT 광화문 사옥과 서울 광진구청 신사옥·롯데캐슬 이스트폴의 각 시공사인 현대건설과 롯데건설과도 추가 공사비를 두고 갈등을 보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KT 관계자는 “GS건설과의 소송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며 KT는 판결 결과에 따라 공사비 추가 지급을 완료했다”며 “이 소송은 설계변경 등에 대한 추가 공사비 규모에 대한 소송으로 건물 준공 후 정산과정에서 시공사와 발주처간 정산금액에 대한 이견이 발생해 시공사가 소를 제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KT 판교 사옥에 대한 설계 변경을 포함한 공사비 정산은 모두 완료했으며 쌍용건설은 물가변동에 따른 공사비 증액 요구하고 있어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KT와 쌍용건설의 판교 신사옥 추가 공사비 분쟁에 대한 법원 판결에 따라 건설업계에 전반적으로 미치는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물가변동 배제 특약을 무력화하는 법원 판결이 나올 경우 앞으로 발주처들이 시공사들에게 지급해야 할 추가 공사비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물가변동 배제 특약을 인정하는 판결이 내려지면 시공사들이 추가 공사비에 대한 부담을 발주처와 분담할 수 없게 된다.
이준영 법무법인 로드맵 변호사는 “발주자와 시공사가 도급계약을 체결할 때 물가 상승분을 공사비 증액에 반영하지 않는 ‘물가변동 배제 특약은’ 공정거래법, 건설산업법, 하도급법에 따라 원칙적으로 부당 특약”이라면서도 “이 특약이 부당하다고 판단을 하면 금지하는 것인데, 타당한 사정이 있을 경우에는 허용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시공사들도 도급계약을 맺을 때 자재가격이 어느정도 올라갈 것을 감안해 금액을 제안하고, 발주처와 장기적인 관계를 고려해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감수해왔다”면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시기에 건설 자재비 등 공사비 원가가 시공사들이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올라가면서 발주처를 상대로 올라간 공사비를 분담해달라는 소송전이 계속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같은 물가변동 배제 특약 관련 소송이더라도 각 도급계약의 성격과 처한 상황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며 “공사비를 산정하는 방식이 총액계약, 확정계약, 단가계약, 제한적 총액 계약 등 종류가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각 사례마다 물가변동 배제 특약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법원의 판단을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