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모든 산업을 바꾸고 있다. 국내 대표 기간 산업인 반도체는 물론 엔터테인먼트와 미용, 의료산업 등 거의 모든 영역에 AI가 적용되고 있다. 인간과 동등한 수준의 지능을 갖춘 범용인공지능(AGI)이 수년 내 현실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조선비즈는 가장 전통적인 산업 중 하나인 건설업의 현장에서도 AI를 접목한 변화가 이뤄지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이에 AI가 우리의 삶의 공간을 창조하는 건설업의 곳곳에서 어떤 변화를 이뤄내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AI와 건설업계’ 기획을 준비했다. 건설업 현장을 찾아 실제 AI가 어떤 방식으로 접목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앞으로 AI를 활용한 건설산업 진화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전한다. [편집자 주]
카메라가 도로에 있는 균열을 비추자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이 균열을 식별하고 붉은색으로 표시했다. 균열을 식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전과 비교해 균열의 변동사항 등 세부 데이터를 분석해 전달했다.
사람이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든 흙막이 가시설의 상부를 드론으로 촬영해 영상을 입력하면 앵커가 정확하게 박혀있는지 판독하는 역할도 했다.
지난 23일 방문한 서울 강남구 논현동 롯데건설 기술연구원에서는 롯데건설이 시행 중인 AI기술을 시각자료를 통해 볼 수 있었다. 롯데건설은 지난 2023년부터 R&D조직과 사업본부 인력으로 구성된 AI 전담조직을 만들어 관련 연구를 이어나가고 있다.
◇업계 최초 AI활용 흙막이 가시설 안정성 확보
롯데건설은 지난 2023년 AI 기반 흙막이 가시설 배면(인근 건물, 도로 등)에서 발생하는 균열을 가시화할 수 있는 ‘흙막이 가시설 배면부 균열 추적 시스템’을 개발하고 관련 기술에 대한 프로그램을 등록해 특허 출원했다.
흙막이 가시설은 건설현장에서 지하를 굴착할 때 땅이 무너지거나 지하수가 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하는 구조물로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시설이다. 국토교통부 건설공사 안전관리 종합정보망에 따르면 지난해 건설현장 위험발생 6만3149건 중 가시설에서 발생한 위험이 2만3971건으로 38%를 차지했다.
롯데건설은 가시설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업계 최초로 AI기반 영상 분석 기술을 활용했다. 건설현장 근로자가 개인 촬영 장치(액션캠, 휴대폰 카메라 등)로 현장 영상을 취득해 플랫폼에 등록하면 AI 모델이 영상 분석과 균열 정보를 가시화하며, 추출한 균열 정보는 이력 관리를 통해 시간 경과에 따른 균열 진행 상태 등을 비교 분석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균열 감지에 투입되는 인력과 시간을 크게 단축했다. 또 육안으로 판별하던 것보다 정확성도 크게 향상됐다.
실제로 기자가 영상을 육안으로 봤을 때는 전혀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던 균열도 AI는 세세하게 분석해 이를 수치로 제공했다. 앵커의 경우도 영상이 아닌 이미지만으로도 정확하게 박혀있는지 여부를 가려냈다.
롯데건설은 AI 기반 지능형 영상분석 솔루션 개발기업인 ‘비젼인’과 ‘건설분야 인공지능 기술 개발 업무협약’을 체결해 AI학습속도를 높였다. 현장마다 영상과 이미지를 촬영해 AI를 학습할 경우 걸리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비젼인에서 가상의 이미지를 제공해 학습하도록 한다. 롯데건설은 AI 학습 과정이 완료돼 일정 수준의 정확도를 확보할 경우 전국 현장에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흙막이 가시설 균열 판독뿐 아니라 가시설 설계도 AI를 통해 할 수 있다. 지도에서 공사현장 범위를 표시하면 AI가 경사도 등을 분석해 설계를 진행한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과거에는 설계 변경도 자주 일어나고, 한정된 자원과 인력으로 전국 현장의 안전성을 일일이 검토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했다”며 “AI를 활용하면서 적은 인력으로도 시간을 단축하고 최적의 가시설 설계 단면을 선택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안전상황센터 설치해 본사서 전국 현장 모니터링
롯데건설은 지난 2023년 본사에 AI시스템을 연계한 통합 영상관제시스템 ‘안전상황센터’를 개관했다. 롯데정보통신과 개발한 ‘위험성평가 AI시스템’을 활용해 분석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난이도가 높은 현장을 선별하고, 중점적으로 모니터링한다. 태풍 및 지진 등 기상 특보시에도 현장 대응상태를 확인해 비상상황에 대비했다.
롯데건설 모든 현장에 설치된 CCTV를 본사에서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이중으로 감지하고 사고 예방 및 신속한 조치가 이뤄지도록 마련됐으며, 안전관리 전문가가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한 영상을 통해 사각지대를 최소화한다.
지난해에는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작업자 행동 기반 AI 안전 모니터링 기술 개발에 나섰다. 기술 적용을 앞두고 지난해 12월 진행한 시연회에서는 작업자가 총 6개의 웨어러블 센서를 착용하고, 테스트베드 구역 내에서 중장비 충돌·협착, 작업자 이상행동 패턴, 출퇴근 시 건강모니터링 등 시나리오에 맞춰 작업을 진행했다. 고정형 카메라를 통해 지속적인 모니터링 데이터를 확보하고 AI 모델이 탑재된 AI 안전관리 플랫폼으로 분석해 현장 안전사고 예방 및 사고 감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자체 챗봇 개발로 기업 보안 강화
최근 챗GPT 등 상용 챗봇을 통한 회사 주요 기밀 및 개인정보 유출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면서 기업들은 이를 방지하기 위한 자체 AI개발을 시작했다. 롯데건설도 자체 챗봇 ‘Q봇’을 개발해 이달 2일부터 활용하고 있다. Q봇은 현재 ▲Q-품질사례 봇 ▲Q-품질사례 (플랜트) 봇 ▲Q-품질 매뉴얼 봇 ▲초고층 타워 (연돌 사례) 봇 등 4개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Q봇에 업무와 관련한 질문을 입력하면 업무가이드 및 시공품질 사례 등 방대한 양의 자료를 분석해 관련 정보를 제공한다. 최근 기업 신입사원이 업무가이드를 상용 챗봇에 검색하는 사례가 발생하면서 정보유출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데 Q봇은 롯데건설에서 자체적으로 관리하는 서버로 이를 방지한다.
현장에서 프로그램 시연을 위해 건설 업무와 관련없는 질문을 하자 관련 정보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고, 각종 건설 용어를 간단하게 설명해달라고 요청하자 3줄가량의 축약된 정보가 제공됐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현재 시범적으로 4개의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고 사원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추후 추가 개발을 통해 2026년에는 더 많은 서비스들이 제공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