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더불어민주당에서 건설노동자들의 ‘적정임금제’ 안착을 위한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업계에선 이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이미 시범사업장에서 적정임금제를 도입한 건설현장이 일반 사업장에 비해 노동생산성이 높다는 데이터가 나오기도 했지만, 현장에서는 성급한 법안 추진에 따른 부작용이 예상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고물가 상황에서 건설사업자들의 피해가 수반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수도권의 한 공사현장. /뉴스1

29일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 내용에 따르면 개정안은 적정 임금 수준을 결정하고, 해당 금액 이상의 임금 지급을 보장하는 제도를 마련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임금 비용 구분지급(건설근로자의 임금 비용을 다른 공사비와 구분하여 지급하는 제도) 대상 공사 범위를 공공에서 민간 부문까지 확대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임금 지급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 조치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적정임금제 논의는 이미 오랫동안 건설산업에서 다뤄져왔다. 2017년 12월 ‘건설산업 일자리 개선대책’을 통해 도입 방향이 발표된 후 서울시와 경기도, LH, 도로공사 등이 발주한 건설현장에서 20여건의 시범사업이 실시됐다. 2년 전인 2021년 정부도 근로자 임금삭감 방지를 취지로 공공발주자가 정한 금액 이상으로 임금을 지급하도록 강제하는 적정임금제 도입을 추진한 바 있다.

실제로 적정임금제를 도입 건설현장이 일반 사업장에 비해 노동생산성이 뛰어나다는 실증 데이터도 나왔다. 건설근로자공제회는 적정임금제 시범사업이 적용돼 준공을 마친 건설현장과 일반 사업장을 각각 2곳씩 비교한 결과 1인당 노동생산성은 적정임금제 현장 3200만원, 일반 현장 1970만원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노동생산성 뿐 아니라 고용안정성 등도 높았다. 사업주 입장에서도 인건비를 오히려 줄일 수 있게 된 셈이다.

그러나 시범사업은 일부 업체의 이야기일 뿐 현장에서는 우려가 더 크다고 지적한다. 특히 임금 논의 이전에 기능인등급제의 정착이 더 시급하다는 목소리다. 기능인등급제는 건설기능인의 경력관리를 지원하기 위해 현장 경력 등을 반영해 초급·중급·고급·특급 등 4단계로 구분하는 제도다. 2021년 5월부터 시행됐다.

최윤정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박사는 “기능인등급제 도입 이후 해당 등급의 사람들이 그에 상응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나오고 있어 경력 산정 기준을 다시 세우려고 하는 중”이라며 “등급 산정 기준이 제대로 정해지면 그에 따른 임금 기준도 정해지고 적정임금제를 논의할 수 있는데, 등급제 정착도 제대로 안 된 상황에서 적정임금제 논의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건설산업에 최저임금제가 생기는 것에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물가급증과 납품대금(하도급대금) 연동제 시행으로 건설업계의 어려움이 커지는 가운데 적절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적정임금제라는 것이 결국 최저임금제랑 같은 개념이기 때문에 우상향 구조로 갈 수밖에 없다”며 “비수기냐 성수기냐에 따라서 일용직의 수요와 공급이 달라지는데, 적정임금제 도입은 이런 원칙을 무시할 뿐 아니라 생산성 담보도 어려운 형태기 때문에 사업자 입장에서는 부담이 명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미국과 호주 등 해외 사례처럼 적정임금제를 도입하고 생산성이 향상되지 않으면 노조가 적극적으로 인력을 교체해주는 방법 등도 고려해볼 수 있다. 미국은 적정임금제 도입 후 충분한 숙련 인력의 확보 등이 가능해지면서 재해건수는 50%, 사망사고는 15% 감소한 바 있다.

전영준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미래산업정책연구실장은 “실제로 2017년 서울시가 적정임금제를 운영한 이후 사회보험료 지원 확대, 주휴수당 지급 등 노무비 보존 정책이 마련되기 전까지 발주자로부터 받은 금액보다 많은 금액을 노무비로 지급해야 하는 건설사업자들의 피해 호소가 계속됐다”며 “도입타당성에 대한 검토와 세부 운영 방안에 대한 협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