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들이 새 먹거리 사업 발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공동주택이나 건물을 짓고 도로를 내는 것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단순 시공을 넘어 시행까지 넘보는 것도 이미 철 지난 얘기다. 최근엔 더 적극적으로 변화를 모색 중이다. 그룹 역량에 건설사의 시공 능력을 더해 새 먹거리를 창출하는 건설사가 있는가 하면 경영성과의 척도로 자리잡고 있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연관 분야에 집중하는 곳이 있는 등 형태도 다양하다. 정보기술(IT)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새 기회를 엿보는 경우도 많다.

그래픽=손민균

◇ “모듈러 주택·소형모듈원전이 새 먹거리”

포스코건설은 ‘모듈러 주택’ 사업에서 새 기회를 찾고 있다. 모듈러 주택은 일명 ‘레고형 주택’이다. 모듈러 주택 공법은 기둥·슬래브(판 형태의 구조물)와 보(수평으로 하중을 지탱하는 구조재) 등 주요 구조물을 비롯해 창호와 외벽체, 전기배선 및 배관, 욕실 등 70% 이상의 부품을 공장에서 선(先) 제작한 후 현장에서 설치하는 스마트 건설기술이다. 그룹사 역량까지 발휘되고 있다. 모듈러 하우스의 외부는 포스코 칼라강판 사용으로 다양한 색상을 연출할 수 있다. 포스코 강건재를 사용하기 때문에 외부 충격에도 강하다고 회사 측은 강조한다.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은 소형모듈원전(SMR)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국내 최다 원전 건설 능력과 수출 경험을 앞세워 한국형 대형원전 사업을 기반으로 SMR과 원전해체, 사용후핵연료 처리 등 원자력 전 분야에 걸친 관리체계를 구축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윤영준 현대건설 대표는 최근 창립 75주년 기념 메시지에서 “현대건설은 국내·외 최고의 원전사업 선진사들과 협력해 총체적인 원자력 밸류체인을 구축하고 있다”며 “현대건설만의 창의와 도전의 DNA로 글로벌 1위의 ‘원전 토털 솔루션 프로바이더(Total Solution Provider)’로 도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미국 소형모듈원전(SMR) 기업 USNC와 ‘캐나다 초크리버 MMR 실증사업’ 상세설계 계약을 체결했다. MMR은 모듈러 설계를 기반으로 개발한 원전이다. 이번 계약으로 현대엔지니어링은 캐나다 온타리오주 초크리버 원자력연구소 부지에 고온가스로 기반 5MWe(메가와트)급 MMR을 건설한다. 현대엔지니어링 관계자는 “대형 원전에 비해 시공 기간이 짧고, 지역의 지리적⋅환경적 영향을 덜 받아 극지나 오지에도 건설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면서 “전 세계 MMR 시장의 규모는 지속적으로 확대될 전망”이라고 했다.

◇ “친환경·사회기여 사업이 중요”

건설사 새 먹거리 전략의 또다른 주요 키워드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다. ESG 경영이 투자나 경영성과 측정의 지표가 되면서 이왕이면 ESG 측면에 맞는 사업에 집중하자는 분위기가 마련됐다.

대표적인 곳은 DL그룹이다. DL이앤씨는 최근 이산화탄소 포집 및 활용, 저장설비(CCUS) 사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다. CCUS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만큼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대책을 세워 이산화탄소의 실질적인 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는 개념인 ‘탄소 중립’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기업의 ESG 활동으로 분류된다. DL이앤씨는 국내에서 현대오일뱅크와 서해그린에너지, 서해그린환경 등과 CCUS 관련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SK에코플랜트는 지난해 5월 ‘아시아 대표 환경기업’이 되겠다는 포부를 담아 회사 이름까지 바꿨다. 당장 국내외 환경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것으로 기업 체질을 바꾸고 있다. 지난해에만 국내 초대형 환경플랫폼 기업인 환경시설관리 등 6곳의 기업을 인수했고, 올해 들어서도 2곳의 환경기업을 인수했다. 이에 따라 국내 수처리 1위 기업, 사업장폐기물 소각 1위 기업, 의료폐기물 소각 2위 기업, 폐기물 매립 3위 기업이라는 지위를 획득했다. 지난 5월엔 말레이시아 최대 종합환경회사인 센바이로 지분 30%도 인수했다. 센바이로는 1991년 설립된 말레이시아 최초의 통합 폐기물 처리 회사로 세 곳의 자회사를 통해 소각과 폐수·침출수 처리 시설은 물론 전자 폐기물 처리시설까지 보유하고 있다.

건설현장과 건물의 안전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사회기여에 힘쓰는 곳도 있다. 사회공헌이 곧 기업경영의 척도가 되고 기업가치에 영향을 준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대표적이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층간소음에 대한 직접 체험과 관련 기술에 대한 이해·연구에서 실증까지 가능한 층간소음 복합 연구시설인 ‘래미안 고요안(安)랩(LAB)’을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개관했다.

고요안랩은 연면적 2380㎡,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의 층간소음 전문 연구시설이다. 관련 시설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연구시설 외에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층간소음 해결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에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지금까지 개발한 기술과 공법 등을 고요안랩을 통해 빠르게 검증해 공동주택에 적용하면서 사회문제인 층간소음 갈등을 줄이는 데 기여하겠다”고 했다.

◇ “IT기술 활용이 미래”

IT기술을 적극 활용하면서 기회를 엿보는 건설사도 있다. GS건설은 업계 최초로 쌍방향 메타버스 견본주택을 선보였다. 단순히 평면도와 현장 견본주택 사진 등을 보여주는 데에서 나아가 GS건설은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시스템까지 구축했다. 단지에 대해서 더 알고 싶은 사용자는 견본주택 내 마련된 상담창구로 캐릭터를 가져가면 화상을 통해서 실제 견본주택에서 상담 받는 것과 같이 상담을 받을 수 있다. GS건설의 메타버스 견본주택은 1개 채널당 최대 1000명을 수용할 수 있고, 채널 수를 늘리면 최대 5만명까지 동시 접속이 가능하다.

대우건설은 수주부터 분양, 시공, 하자관리 등 건설업 전반에 최첨단 기술을 접목시키고 있다. 수주할 땐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하는 해외 EPC(설계·조달·시공) 입찰안내서(ITB) 데이터 분석 시스템인 ‘바로답(BaroDAP)’을 활용한다. 바로답은 PDF 파일을 인식해 자동으로 목차별 섹션을 분리하는 데이터 전처리 과정에서부터 공종별로 대상을 분류·분석하는 과정, 검토화면 시각화 등을 수행한다. 입찰 담당자는 이를 통해 발주처의 요구사항과 제약사항을 쉽고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쌍용건설은 스마트 건설 기술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쌍용건설은 최근 ‘기존파일 지지력 확인을 위한 기존골조를 이용한 시험 공법’을 업계 최초로 개발, 특허 등록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이 공법은 리모델링 안전진단 과정에서 기존 파일(건물을 받치는 말뚝)의 내력을 측정할 때 파일 중간 단면을 자르고, 그 공간에 유압기를 설치해 내력을 측정하는 방식이다.

이 공법을 쓰면 기존 공법 대비 비용과 기간을 절반 이상 감축할 수 있다. 예컨대 기존 반력체 공법으로 10개동 규모의 아파트 파일의 내력을 진단할 때는 약 12억원의 비용과 함께 철골 제작과 설치까지 5일 이상의 기간이 소요되지만, 특허 공법을 적용하면 6억원의 비용과 2~3일의 시간이면 된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시공이나 플랜트 등 기존 먹거리에만 집중해선 새로운 성장을 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모든 건설사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면서 “회사마다 다른 신사업을 구상한 만큼 건설업계의 다양성도 확보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