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전쟁으로 유연탄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유연탄을 많이 쓰는 시멘트 가격 인상을 두고 곳곳에서 밀고 당기는 기 싸움이 계속되는 가운데,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5일 시멘트 업계에 따르면 유연탄 가격은 지난해부터 국제 원자재시장의 불안 여파로 급등 추세를 보였다. 한국광물자원공사의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CFR동북아 기준 t(톤)당 유연탄 가격은 지난해 초 68.12달러에서 10월 중순 221.89달러까지 치솟았다. 이후 124달러까지 떨어지나 싶었지만, 지난달 말 기준 199.55달러로 다시 폭등했다.
문제는 이 같은 급격한 상승세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으로, 러시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가 강화되면서 대(對) 러시아 수출입 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유연탄 가격이 폭등하면 시멘트 업계가 가장 큰 타격을 입는다. 한국 시멘트 업계는 유연탄 사용량의 75%를 러시아에서, 나머지 25%를 호주에서 들여오고 있다. 시멘트 생산에 유연탄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큰 편이다. 시멘트 1t을 생산하는데 0.1t가량의 유연탄이 필요하다. 시멘트 생산원가의 40% 이상을 유연탄이 차지한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러시아 유연탄 생산량은 2470만톤인데, 한국의 러시아 유연탄 수입량이 1933만 톤(MTI기준)에 이른다. 러시아로부터의 유연탄 수입이 끊길 경우 유연탄 가격이 지금보다도 훨씬 더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시멘트 업계 관계자는 “연간 시멘트 생산량의 절반가량이 러시아산(産) 유연탄에서 나온다고 보면 된다”면서 “통계치는 추세를 나타낼 뿐이고, 실제 유연탄 거래가는 400달러를 웃돌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600~7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은 유연탄 물량을 구하기도 힘들지만, 호주·중국·인도네시아에서 유연탄 물량을 얻는다고 해도 단가가 너무 높아 생산을 해도 손해를 봐야 하는 수준”이라며 “유연탄 가격 부담이 너무 심해 차라리 시멘트 생산을 당분간 중단하는 방안까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시멘트를 주원료로 하는 레미콘 업계도 시멘트 업계의 움직임에 긴장하기 시작했다. 주요 시멘트업체들은 이미 지난 1월 t당 7만8000원이었던 시멘트 가격을 9만2500~9만4000원으로 18% 안팎 인상하겠다고 통보하고, 지난달 초 시멘트를 선공급한 뒤 지난달 말 인상 가를 바탕으로 레미콘업체와 단가협상을 시작한 상태다.
레미콘 업계 관계자는 “솔직히 말하면 답이 없는 상황”이라며 “유연탄 가격 상승으로 시멘트 가격도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은 국민도 모두 알고 있지만, 지난해 7월 가격이 인상되고 1년도 안 돼서 또 오른다는 게 레미콘 업계나 건설업계 모두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시멘트 업계나 건설업계 모두 손해를 보지 않으려 한다면 레미콘 업계만 가운데서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아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건설업계로서도 수심이 깊어지는 건 마찬가지다. 박철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작년에는 철근이 문제였다면, 올해는 시멘트와 레미콘이 큰 문제가 될 것”이라며 “대형 건설사들은 작년 말이나 연초에 당시 단가로 계약했기 때문에 당장 문제는 없겠지만, 중견 건설사나 소형건설사들은 바로 타격을 받기 시작해 하반기로 넘어가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철한 연구원은 “민간 공사의 경우 착공을 지연하면 건설경기가 급랭할 가능성이 있어 어렵겠지만, 공공 공사의 경우 공기(工期) 연장이나 착공 지연을 고려할 필요성이 있다”면서 “민간 공사는 건자재 가격상승분을 반영해 다시 공사가를 책정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현실적으론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결국 업계에서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멘트 업체 관계자는 “자연재해 수준의 급변 사태에 기업이나 업계 차원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결국 국가가 나서 다방면의 지원을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