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9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지난해 6월 광주 학동사고. 불법 재하도급으로 공사 단가가 후려쳐진 것이 문제로 지목됐다. 당초 HDC현대산업개발이 50억원에 하도급을 줬던 철거 비용은 재하도급(서울 한솔기업→광주 백솔기업)을 거치면서 9억원으로 대폭 줄었다. 철거업계 관계자는 “폐기물 처리 비용이 전체 철거 비용의 40%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학동 4구역은 철거 대상이 4만평 600여개 동에 달해 폐기물 처리 비용만 20억원은 필요했을 것”이라며 “인건비나 처리 비용을 제외하고 순수 철거 비용이 아니라 모든 철거 비용이 9억원이었다는 건 업계에선 믿기가 힘들 수준”이라고 했다.
#2. 지난 11일 광주 화정아이파크 아파트 붕괴사고 현장에서도 편법 재하도급 정황이 나왔다. 전문건설업체인 A사는 본래 화정아이파크 공사의 콘크리트 타설 업무를 맡기로 원도급사와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붕괴 당시 타설 작업을 하고 있던 8명의 작업자는 모두 A사와 장비 임대계약을 맺은 B사의 직원들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B사는 레미콘으로 반입된 콘크리트를 고층으로 올려주는 장비(펌프카)를 대여해주는 회사로, A사와는 장비 임대에 대해서만 계약을 맺었던 업체다. B사가 업무 범위를 초과해 A사의 업무였던 콘크리트 타설 업무까지 맡으면서 ‘대리시공’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HDC현산의 연이은 대형 참사를 두고 고질적인 재하도급 관행을 근본적 원인 중 하나로 꼽한다. 여기에 남 일이 아니란 한숨 섞인 푸념도 나오는 중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현장마다 이런 일이 잦다는 것이다. 건설 현장의 기본이 무너졌다는 진단이 나오는데 도대체 일선 건설 현장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 기나긴 불법 재하도급 역사… 규제에도 불법 재하도급은 만연
19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하도급은 건설산업기본법상 2단계까지만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발주자가 일반·종합 건설업체(모든 공종별 면허가 있는 건설업자)에 도급을 맡기면 전문 건설업체(토목·철근 등 특정 공종 면허만 가진 건설업자)에 ‘하도급’을 주는 식의 2단계만 가능하다. 전문 건설업체가 다시 다른 업체에 도급을 맡기는 ‘재하도급’은 금지돼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건설 현장에서 불법 다단계 하도급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일반·종합 건설업체→전문 건설업체→십장→실행소장→팀·반장→현장 노동자’의 불법 재하도급 고리가 5~7단계까지 이어졌다. 당시에도 이에 따른 문제가 많았다.
전문가들은 지난 1996년에 도입된 시공참여제도가 취지와 다르게 다단계 하도급을 존속시킨 제도로 활용됐다고 말한다. 국토교통부는 1994년 성수대교, 1995년 삼풍 백화점 붕괴사고 이후 부실시공의 원인을 찾다가 시공에 직접 참여하는 자를 실명화해 책임시공을 정착시킨다는 취지로 1996년에 시공참여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결국은 중간 단계에서 실공사비만 챙기는 건설 브로커들이 활개치고, 팀장·반장이 시공 참여자로 등장하게 됐다는 것이다.
전문건설협회 관계자는 “십장은 원래 일하지 않고 사람만 끌어모으는 인력 모집책에 불과했지만, 시공참여제도가 시행된 뒤부터는 이들이 직접 근로를 제공하면서 ‘사업주’로 등장하게 됐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2012년 이 제도가 폐지되면서 전문 건설업체는 자신과 도급계약을 맺어온 기존 십장과 일용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 임금도 전문 건설업체가 개별 노동자들의 급여통장에 직접 지급해야 하고, 4대 보험에도 가입해야 하는 등의 형태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건설 현장에서 불법과 편법을 넘나드는 재하도급 관행은 여전하다는 것이 건설업계 종사자들의 중론이다. 재하도급은 이윤을 남기려는 하도급사와 영업·수주 비용을 절감하려는 재하도급사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발생하기 때문에 현재 산업구조에선 현실적으로 근절하기 힘들다는 말도 나온다. 하도급사는 재하도급을 통해 원도급사 못지 않은 중간 수수료를 확보할 수 있고, 실제 시공을 수행하는 재하도급사도 입찰을 위한 영업활동이나 입찰 경쟁 없이 공사를 수주할 수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작년 6월까지 불법 하도급이 적발돼 행정처분을 받은 건수는 총 509건이다. 이 중 무자격자에게 하도급을 준 사례(364건)와 일괄 하도급(79건)이 가장 많았지만, 재하도급(30건)도 전체의 8.2%를 차지했다.
한 건설현장 관계자는 “예전에는 공사 현장 10곳 중 7~8곳이 재하도급했다면, 노무현·이명박 정부 이후에는 10곳 중 1~2곳 수준까지 줄긴 했다”면서도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평균”이라고 했다. 그는 “당국이 집중 관리·감독하는 수도권의 경우에는 이제 재하도급이 쉽지 않은 반면, 공무원 수가 부족한 지방은 여전히 관리·감독의 사각지대라 재하도급하는 현장이 적지 않다”고 했다.
◇ 말도 안 되는 돈으로 공사하고 민원까지 처리하는 재하도급사
하도급 업체는 이윤을 남기기 위해 수주한 돈보다 적은 돈으로 재하도급을 줄 수밖에 없다. 결국 실제 공사를 하는 업체는 자재비와 인건비를 줄여 공사를 하게 된다.
국토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기준 정상적인 건설공사인 경우에도 재하도급 계약금액은 원도급의 73.2% 수준으로, 도급 과정에 약 27%가 삭감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발생했던 광주 사고처럼 다단계 불법 하도급이 발생할 경우 공사비 누수는 더욱 심각해진다.
김소정 법률사무소의 김소정 대표 변호사는 “지방에서 공사를 하려면 장비를 옮기는 비용도 많이 들고, 공사비도 부담이 되니 관행적으로 50% 이상은 공사비를 깎는 불법 하도급 거래가 이뤄진다”면서 “자재비가 관건인데, 하도급 단계가 늘어날수록 공사비가 절반 이상으로 줄어들다 보니 현장 입장에서 보면 공사비가 줄어드는 폭은 상상 초월”이라고 언급했다.
공사비 누수가 발생하면 자재비가 가장 먼저 줄어든다. 불법 재하도급이 부실 공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 변호사는 “하도급 업체가 받아 이를 재하도급 업체로 넘기는 과정에 공사비를 줄이려면 자재비를 줄이는 것이 관건”이라면서 “자재를 거의 후려치는 식으로 공사를 진행한다”고 언급했다.
그 다음은 인건비다. 이윤을 남기기 위해 인원을 줄이거나 공기를 단축하는 일이 발생한다. 한 건설 현장 관리자는 “하청에 재하청이 이어지는 구조에서 시공비가 급격히 줄어들어 자잿값도 모자라게 되면, 그 다음으로 삭감하는 것이 인건비”라면서 “정해진 인원보다 적은 인원을 투입하거나 비숙련공, 심지어 무자격자까지 투입하게 된다. 부실 공사가 나타나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고 말했다.
심지어는 공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민원을 대비한 비용까지도 재하도급사에 떠넘기는 경우도 있다는게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지난해 광주 학동4구역의 철거 현장 붕괴사고에서는, 하도급사인 한솔기업이 재하도급사인 백솔기업에 분진 민원 발생에 대비한 살수 장비 등의 동원 비용도 떠넘긴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원도급자가 기초공사 과정에서 타일을 박는 작업을 하도급하는 경우, 원도급자는 하도급자에게 민원 응대 책임을 전가하고, 하도급자는 재하도급자에게 인근 주민들에게 약간의 금전이나 식음료 등을 갖다주라고 지시한다. 비용은 재하도급자의 몫이다. 물론 이미 불법으로 규정된 일이다.
전영준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하도급 공사에 대한 민원은 하도급자가 일차적으로 책임을 지지만, 당연히 원도급도 같이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그런데 하도급 공사와 상관없는 책임까지 떠넘기는 경우가 과거 왕왕 발생했다. 이런 책임이 다시 재하도급사에게 전가되는 일도 과거에는 많았을텐데 관리의 사각지대에 있던 것들이라 단속·적발된 사례는 많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구조적인 문제가 바뀌지 않으면 이 같은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 개발업체 관계자는 “현재의 원가·발주 구조에서 원도급사인 종합건설사도 모든 공사를 책임지고 하기가 어렵고, 이는 하도급사도 마찬가지”라면서 “어느 한 회사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건설산업 전반의 문제다. 구조적인 원인을 들여다봐야 해결책이 나올 것”이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