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주택 시장 안정화를 위해 본청약보다 시기를 앞당겨 공급하는 사전청약 물량을 대폭 늘리기로 하면서, 시장에서는 물량 확대에 대한 기대와 실현가능성에 대한 의심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정부가 계획하는 ‘사전청약 추가 물량 10만호’는 현 주택시장 매수세를 잠재우는 효과를 낼 수도 있을만한 물량이지만, 관건은 정부의 계획대로 시장이 움직이느냐, 즉 실현 가능성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25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현재 수도권 공공분양물량(3기 신도시)에 대해 실시하는 사전청약 방침을 민간분양 및 2·4대책 사업까지 확장하겠다”고 밝혔다.
사전청약은 공공택지 등에서 공급되는 공공분양주택의 공급 시기를 본청약보다 1∼2년 앞당겨 시행하는 제도다. 당첨 후 본청약 때까지 무주택자 요건을 유지하면 100% 입주가 보장된다. 기존 사전청약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이 지어서 공급하는 공공주택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주택 시장 안정화를 위해 민간 분양과 2·4대책 공급 물량까지 총동원하기로 한 것이다.
홍 부총리는 “그간 공공택지 공공분양에만 시행해온 사전청약을 ‘민간분양’과 ‘3080+(플러스)’ 물량에도 확대 적용해 올해 하반기부터 총 10만1000호를 추가로 조기 공급하겠다”며 “이렇게 되면 민간분양은 약 2년, 3080 플러스 물량은 약 1년 이상 청약 일정이 앞당겨진다”고 말했다.
즉, 현재 추진 중인 ‘2·4 대책’의 잔여 미정 부지 13만호 대상 부지 등 공공분양 사전청약 물량을 추가 확보하고, 민간 건설사가 공급하는 민간분양에도 인센티브를 제시해 사전청약을 실시하도록 유도겠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2024년 상반기까지 총 10만1000호의 주택이 조기 공급(분양)되며, 기존 LH 공공주택 사전청약 물량까지 합하면 총 16만3000호의 주택이 당초 공급 시점보다 1~3년 정도 앞당겨 공급된다. 이 중 13만3000호가 수도권 공급 물량이다.
앞서 진행된 3기 신도시 첫 사전청약에 4만명 몰렸고 최고 경쟁률이 240대 1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사전 청약이 충분할 경우 수요를 일정 부분 잠재울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높은 경쟁률이 오히려 사람들의 불안 심리를 키운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충분한 물량을 내놓을 경우 이런 우려도 해소할 수 있다는 점도 기대해볼 만하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최근 지연되고 있는 수도권 분양 상황을 고려할 때, 민간 청약 대기수요 일부를 사전청약이 흡수해주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번에 나온 사전청약 계획에 포함된 상당수 물량이 ‘봉이 김선달’ 식이라는 것이다. 정부가 민간 건설사가 공급하는 주택 등에서 사전청약이 나오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인데, 말 그대로 유인책이라 그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더구나 2·4대책 물량에도 기대를 하는 모양인데, 2·4대책 자체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곳이 많아 실효성에 물음표가 붙는다. 지난 2월 4일 정부가 발표한 ‘공공주도 3080 플러스 대책’은 정부, 지자체, 공기업이 주도해 2025년까지 서울 32만호, 전국 83만호 주택 부지를 추가 공급하는 것을 골자로 한 주택 공급 확대 방안이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약 10만가구에 대한 사전청약이 실시되면, 사전청약 당첨자 10만가구는 기존 주택 시장의 매수 대열에서 이탈되는 격이니 시장 안정화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물량”이라면서 “하지만 사전청약이 분절돼 더디게 조금씩 진행되거나 계획만큼 충분한 공급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정부는 민간 건설사의 사전청약 활성화를 위한 유인책도 내놨는데, ‘사업성’에 따라 움직이는 기업이 과연 정부의 유인책에 얼마나 반응할지도 현재로선 미지수다. 주택 분양가격을 택지비와 건축비의 합계 이하로 제한하는 ‘분양가상한제’ 하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 기업들의 셈법은 정부의 계획보다 더 복잡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한시적으로 택지공급제도를 개편해, 민간 건설사가 사들여 보유하고 있으나 착공과 분양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미개발 택지에 대해서 제도 개편 후 6개월 내 사전청약을 실시하면 향후에 공공택지를 공급할 때 가점 부여 등을 통해 우선권을 주는 인센티브 방안을 제시했다. 또 사전청약을 진행한 민간 건설사 사업장의 본 청약에서 사전청약 당첨자 이탈로 미분양이 발생하는 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해 공공이 분양물량 일부를 매입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제시한 인센티브가 민간 건설사들이 기존 택지 개발 계획 및 분양 전략을 바꿀 정도인지가 관건인데, 민간 기업의 기대치보다 기업의 수익에 미치는 영향이 저조할 경우 시장 반응이 신통치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준석 교수는 “민간 업체들이 현재 보유한 수도권 택지 중 분양 및 착공 계획을 잡지 않고 있다는 건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등 광역교통망 확충 사업과 연결되지 않은 입지일 가능성이 크다”면서 “기업은 사업성을 분석해 손익에 따라 판단한다는 점에서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민간 건설사의 입장에선 이미 토지 사용 시기가 임박했기도 했고, 알짜 택지 구득난을 감안할 때 향후 안정적인 택지 확보차원에서도 사전청약에 단기적인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면서도 “다만 민간사업자는 사전청약도 소비자와의 약속이니 만큼 기업의 신뢰도와 이미지를 감안한 분양가 책정에 고민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간에 매각된 공공택지와 달리 정비사업을 통해 공급해야하는 도심 공공주택복합사업의 경우 소송과 사업 지연 변수도 있어 유연한 사전청약이 가능할지도 미지수”라고 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미분양 발생 시 이를 공공이 일부 사줘 리스크를 분담해주겠다는 그 자체보다는 ‘얼마나 매력적인 가격을 제시하는가’가 관건이라고 본다”면서 “분양가 책정 및 보전 방식 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아직 없다보니 파격적인 인센티브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의견을 냈다.
사전청약 확대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가뜩이나 전세난이 심화하고 있는 가운데, 사전청약 당첨자 상당수가 전월세 시장에 머물게 돼 무주택자의 불안을 더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다.
사전청약 당첨자들은 실제 입주할 수 있는 주택이 나올 때까지 무주택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청약 당첨으로 기존 주택 시장 매수 행렬에서 빠지게 됐지만 실입주까지 최소 4~5년간 수도권 전·월세 임대차 시장에 계속 머무는 상황이 된다.
본 청약과 입주까지 주택 공급 사업이 늦어질 수 있다는 불안도 잠재해 있다. 과거 1~2기신도시 교통망 구축이 늦어진 사례가 있고, 2009년부터 2018년까지 10년간 32만채의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보금자리주택 청약 과정에서도 정부가 공언한 목표 시점보다 지연된 바 있다.
심교언 교수는 “사전청약을 늘릴수록 단기적으로 시장이 꼬이는 문제가 있다”면서 “특히 전세난을 더 가중시킬 수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전청약 물량 확대로 매수 대기 수요의 심리적 안정 효과는 낼 수 있겠지만, 실질적인 공급 효과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시장 안정화가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업계 부동산 전문가는 “사전청약은 본청약 공급 물량을 당겨쓰는 조삼모사식 대책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면서 “현재 정부가 주택 공급을 확대하기 위해 내놓은 신규 공공택지는 물론 공공재개발, 도심공공 복합개발사업 후보지 곳곳에서 지역민들의 반대에 부딪쳐 파열음이 나오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그는 “공급에 속도가 붙기는 커녕 잡음이 커지면서 정부의 주택 정책에 대한 신뢰가 계속 흔들리면 주택 시장의 불안도 커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