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토지주·농부들도 다 똑같은 사람이라 어떻게든 수용을 피하거나 늦추고 싶어 해요. 특히 베트남은 한국보다 기후가 온난하기 때문에 기본이 이모작입니다. 그래서 토지 보상하러 현장에 나가면 농부들이 ‘이번 작물 수확만 끝나고 수용해달라’고 간청을 해요. 알겠다고 하고 수확이 끝난 후 현장에 가보면 또 다른 작물들이 끝도 없이 심어져 있습니다. 그러면 이번엔 우리가 농부를 붙들고 간청해야 하죠.”

최동일 대우건설 신사업본부 베트남사업개발팀 차장은 18년 업력의 절반 가까이를 베트남 개발 관련으로 채운 베테랑 해외 디벨로퍼다. 자부심이 묻어나올 법도 하건만 베테랑이란 말에 “법제와 문화가 다르고 상황이 시시각각 변하는 해외개발 시장에서 진짜 베테랑은 현지에서 몇십 년을 보내면서 현지인보다 현지를 더 잘 아는 분들”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베트남 하노이에서 진행 중인 스타레이크 시티 사업의 의미를 설명할 때는 마치 자식을 자랑하듯 눈을 반짝였다. 스타레이크 시티가 그에게 자식과도 같은 이유는 오랜 기간 그가 인생을 바쳤기 때문이다. 이국의 허허벌판에 한국의 도시철학과 건설역량으로 새로운 도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는 작업을 우리는 ‘해외개발’이라고 부른다. ‘K-디벨로퍼’ 선봉장인 최동일 차장에게 음악과 영화를 넘어선 ‘또 다른 한류’의 가능성을 물었다.

사진 / 10일 오후, 서울 중구 대우건설 본사에서 최동일 대우건설 차장이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1.8.10. / 고운호 기자

― ‘디벨로퍼’라는 개념이 낯선 독자도 있을 것이다. 무슨 일을 하는가.

“8년 동안 베트남에서 개발사업을 하면서 느낀 디벨로퍼의 역할은 무엇보다 ‘토지의 이용 가치 극대화’다. 하노이 스타레이크 시티 사업이 본격화된 이후 바나나와 코코넛 나무가 자라던 땅이 하노이의 최고급 빌라 단지로, 최고급 호텔·레지던스로, 글로벌 기업들의 오피스 건물로 변모하고 있다. 10여년 가까운 시간에 걸쳐 하나둘씩 바뀌어 가는 땅을 보고 있노라면, 무궁한 가능성을 가진 토지에 개발이라는 숨결을 불어 넣고 있다는 감회가 든다.”

― ‘스타레이크 시티’는 어떤 곳인가

“스타레이크 시티는 베트남 북부의 중심인 하노이 북서쪽에 서울 여의도 면적의 약 3분의2에 해당하는 186ha(헥타르) 규모의 복합 신도시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대우건설이 지난 1996년 하노이 도시계획 단계부터 참여해 ▲기획 ▲토지 보상 ▲인·허가 ▲자금 조달 ▲시공 ▲분양 ▲도시의 관리·운영까지 주도하는 한국형 신도시 개발 수출사업이다.

분당·일산 등 한국 1기 신도시 개발사업을 모델로 했지만, 주거가 주축인 한국 신도시와 다르게 주거·상업·업무·행정 등 자족 기능을 충실히 갖춘 베트남식 변형이라고 봐야 한다. 베트남 정부 부처와 관공서 8곳이 입주하기로 했고 한국 대사관을 비롯한 외교단지도 인접했다.

여기에 이마트, CJ·삼성전자 베트남 현지법인 본사, 롯데호텔, 신라호텔 등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까지 들어서 한국-베트남 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업성 측면에서 보면 지금까지 한국 건설사들의 해외개발 사례 중 이렇게 수익성이 높고 공정이 순조롭게 진행 중인 케이스는 매우 드물다. 국내의 다른 건설사들도 스타레이크 시티 사업을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드론으로 촬영한 스타레이크시티 /대우건설 제공

― ‘개발’을 진행하는 데 중요한 것은

“각 분야 간의 긴밀한 정보교류를 통한 유기적인 협조다. 해외 시장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해 개발계획을 수립·변경하고, 현지 당국과의 유기적인 관계유지를 통해 사업을 계획대로 추진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자금이 필요한 곳에 있을 수 있도록 금융기관들과도 밀접하게 협업해야 한다. 이처럼 모든 업무들이 단일한 유기체처럼 진행될 수 있으려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 국내에서 개발을 진행할 때보다 변수가 더 많을 텐데

“역시 언어·문화·제도·법령이 한국과 다를 수밖에 없기에 어려운 점도 없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래서 현지 법인의 임원은 물론 관련 업무를 수행하던 공무원 출신을 비롯해 현지 개발업체의 임·직원, 설계 전문인력 등 현지 인력을 적극적으로 채용했다.

예를 들어 현지 직원들이 식사 자리에서 담배를 피거나, 상급자의 어깨를 치며 일대일로 술을 먹자고 청하는 일도 있었다. 베트남에서는 친분이나 배려의 표시였던 것이지만, 한국에서는 용납치 못할 하극상이기에 처음에는 당황하기도 했다. 하지만 1년 정도 지나고부터는 눈빛만 봐도 무슨 뜻인줄 알게 됐다. 힘들게 영어로 말하느니 그냥 눈빛으로 대화하곤 했다.

베트남 당국으로부터 우수 납세기업상을 받는 등 시간이나 비용이 더 소요되더라도 현지 규정을 준수하며 사업을 진행하자는 원칙을 일관되게 지킨 것이 도움이 됐다. 현지 공직사회에 많은 신뢰가 축적되면서 외국인 사업자임에도 사업 진행이 점차 수월해지고 있다.

처음에는 외국인이라고 만나기도 꺼리던 지역 행정구역장과 이제는 밥자리·술자리도 함께한다. 결국 같은 유교 문화권이라 술자리를 한 번 하니까 비로소 마음을 열기 시작하더라. (웃음)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기 시작하자 인·허가는 물론 민원도 적극적으로 해결해줬다.

국가 지원이 없는 민간사업의 경우 토지 보상에 더 큰 노력이 요구되는데, 철저하게 협의를 통해 주민들을 설득하다 보니 사업이 다소 늦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사이 베트남의 땅값이 전반적으로 엄청나게 올랐다. 사업 규모가 워낙 커 분양도 장기간 순차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사업 지연에 따른 손해보다도 분양가의 상승 폭이 더 커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기도 했다.”

― ‘세계 경영’을 기치로 내세웠던 대우의 DNA도 사업에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처음부터 대우그룹의 사업으로 시작돼 세계 경영의 DNA가 심어지고 발현된 사업이다. 한국과 베트남은 지난 1992년에 수교했지만, 대우그룹의 베트남 진출은 이미 1990년에 이뤄졌다. 냉전 끝 무렵부터 동구권에 적극적으로 진출했던 고(故) 김우중 전 회장의 의지가 관철된 것이다. 대우그룹이 해체된 현재는 그룹 차원의 지원이 없어 아쉽기는 하지만, 당시 영업조직·사업조직과 경험들이 해외개발에 있어 확실한 비교우위로 작용하고 있다.

또 다른 ‘대우 DNA’는 현장 중심의 조직문화다. 대우그룹 시절부터 현장 담당자에게 많은 권한을 위임해 시의적절한 의사결정과 사업추진을 가능하게 했다. 국내·외의 다른 건설사와 협업하다 보면 확실히 ‘자율과 책임’이라는 대우건설의 핵심가치가 어떻게 구현되는지 체감할 수 있다.

스타레이크 시티의 경우에도 지난 2006년 5개 회사가 합작해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2011년에 대우건설이 모든 지분을 인수했다. 이때 지분 인수 결정은 물론, 인수 이후의 사업 추진 과정에서도 현지 사정을 제일 잘 아는 주재원들에게 많은 권한을 부여했던 것이 주효했다. 특히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자주 나오는 해외개발에서는 이런 장점이 크게 빛난다.”

베트남 하노이 스타레이크 시티 조감도 /대우건설 제공

―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모든 개발사업에 있어 가장 기본은 역시 토지의 확보다. 토지 확보 없이는 이후 단계를 진행할 수 없다. 알박기하고 있던 토지주 보상을 마치고 부지 진입도로를 확보한 순간, 한 필지 때문에 분양이 지연될 뻔한 토지의 주인에게 가까스로 사인을 받아 사업 일정을 맞춘 순간 등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박항서 베트남 축구국가대표팀 감독도 기억난다. 박 감독이 지난 2018년 스즈키컵에서 우승한 이후 하노이에 카퍼레이드를 오자, 10시간 전부터 온 거리에 인파가 가득 찼고 일부 베트남 사람들은 대형 태극기를 들고 환호하기도 했다. 이런 장면을 보고 울컥하면서도 뿌듯했다.”

― 고충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고충이 역시나 제일 크다. 베트남 당국이 강력한 방역 조치를 취하면서 입국이 전면 중단되거나 항공기 운항 편수가 급감했다. 특히 지난해 초 한국의 1차 팬데믹 당시엔 ‘한국인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더 많은 유·무형의 제약을 받아야 했다. 이에 국내 투자자들의 실사 등도 대거 연기되면서 개발사업도 교착상태에 빠졌었다. 또 5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베트남 총선도 겹쳐 관공서들의 인·허가 일정 역시 다소 지연됐다.

개인적으로도 힘들었다. 지난해 3월에는 하노이에 4주 이상 전면 폐쇄 수준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돼 한동안 배달음식으로 지내야 했다. 베트남 당국의 해외 입국 금지 조치로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가지 못할까 봐 원래 4개월에 2주씩 주어지던 귀국 휴가도 1년 이상 포기해야 했다. 현지 직원들은 지금도 한국에 오기 힘든 상황이다.”

― 앞으로 제2·제3의 스타레이크 시티가 될 해외개발 사업이 있다면

“베트남의 경우는 이전부터 포스트 차이나(post china)로 주목받던 곳이다. 이에 지난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추가적인 베트남 신도시 개발사업에 나서기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제는 ‘포스트 베트남’도 생각해야 한다. 베트남의 경험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 등 발전 가능성이 높은 베트남 인접 개발도상국들을 고려해 봄 직하다. 이들은 최소한의 경제 기반을 갖추고 한국과도 문화적 동질성이 어느 정도 있는 나라들이다. 실제로 의류·섬유 산업은 이미 베트남을 빠져나가 인접국으로 분산되고 있다. 스타레이크 시티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이를 동남아 개발의 전초기지로 삼아 적극 진출할 필요가 있다.

다만 해외사업은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많은 사전 준비와 학습을 거쳐 진출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제2·제3의 스타레이크 시티가 나온다면 현지인들에게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줘 한국의 위상도 높아질 수 있다.”

― 앞으로 해외 개발은 어떻게 발전할까

“예측하기 어렵지만 정보통신(IT) 기술의 발달로 공간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지금까지의 물리적 의미의 공간에 한정됐다면, 이제는 문화적·정서적 의미의 공간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 해외 개발사업도 그 변화에 발맞출 것이다. IT를 통해 국적을 넘나드는 공간을 창출하고 문화적·정서적 효율성까지 극대화하는 개발이 미래가 되지 않을까.”

사진 / 10일 오후, 서울 중구 대우건설 본사에서 최동일 대우건설 차장이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1.8.10. / 고운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