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선거는 새벽까지 피 말리는 초박빙 승부 끝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불과 24만7077표 0.73%포인트 차이로 승리했다. 이는 역대 최소 범위다. 대선에 앞서 실시된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정권교체’ 요구가 50%를 넘었지만, 윤석열 당선인의 지지율은 결국 그에 미치지 못했다. 윤 후보는 앞서 마지막 TV 토론회에서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네거티브 공방을 벌였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는 평가가 끝까지 유지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윤 후보와 국민의힘은 지상과제였던 ‘정권 교체’에는 가까스로 성공했지만, 국민의 심판을 받은 셈이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지난 8일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역대 최소차로 당선된 윤석열...갈수록 극단화된 메시지

윤 당선인은 10일 오전 48.56%(1639만4815표)를 득표해 47.83%에 그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1614만7738표)를 근소하게 앞섰다. 두 사람의 표차는 24만7077표, 득표율 차는 0.73%포인트에 불과했다. 이로써 윤 당선인은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최소 득표 차로 당선되는 대통령으로 기록된다. 역대 가장 적은 표차로 당락이 갈린 대통령 선거는 1997년 제15대 대선이었다.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득표 차이는 39만557표, 득표율 차는 1.53%포인트(P)에 불과했다.

지난 9일 치러진 지상파 3사 출구조사에 응답한 유권자 절반 가까이는 대선 후보들이 만족스럽지 않지만 투표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으로 불렸던 이번 대선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라는 평가다. KBS·MBC·SBS 방송 3사가 이날 투표 종료와 함께 공개한 출구조사 심층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가운데 49.3%는 ‘대통령 후보로서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투표했다’고 했다. ‘만족스럽다’는 답변은 47.6%였다. 이른바 ‘정권 연장론’과 ‘정권교체론’ 가운데 응답자의 48.7%가 ‘정권교체를 위해 야당 후보에 힘을 실어 줄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권 연장을 위해 여당 후보에 힘을 실어 줄 필요가 있다’는 35.0%에 그쳤다. 이번 출구조사는 여론조사기관 입소스, 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 한국리서치가 지난 9일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태블릿 PC를 활용한 개별 면접조사로 이루어졌고 응답자 수는 4195명, 응답률은 80~85%로 추정된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번 조사의 오차한계는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4%포인트다.

사실 윤 당선인은 이번 대선 과정에서 이 후보보다 오랜 기간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렸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실망한 정권교체 여론이 계속해서 과반을 넘으면서 보수 야권 대표주자인 윤 당선인에게 힘을 실어줬기 때문이다. 이른바 ‘깜깜이’ 기간으로 불린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 직전까지 발표된 여론조사 중 대다수도 윤 후보의 박빙 우세로 나타났다. 그러나 대선이 막바지로 다다를수록 이 후보와의 격차가 좁혀지는 양상으로 전개됐고, 결국 대선 결과도 1%P도 되지 않는 득표율 차로 승리를 거뒀다.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윤 당선인 메시지의 극단화다. 원래 윤 당선인은 이 후보에 대해서는 적극 공세를 펼치면서도, 중도층 표심을 잡기 위한 온건적인 표현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달 20일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의 ‘단일화 결렬’ 선언 이후 표현이 거칠어졌다. 안 후보의 지지율 하락으로 ‘이재명-윤석열’ 양강 구도가 확고해지면서 양측 지지층이 결집한 탓에 부동층의 비중이 줄어들자 메시지의 중심을 중도층에서 지지층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TV 토론회에서 이 후보를 공격하기 위해 이 후보 조카의 잔혹했던 범죄행위를 여과 없이 묘사하는가 하면, 대장동 사태의 책임자를 처벌하겠다며 이 후보에 대한 수사 강화를 예고하기도 했다. “버르장머리가 없다”, “후진 인격의 소유자” 등 거친 표현들도 쏟아냈다. 이른바 ‘세대포위론’의 한 축이었던 남성 중심의 2030세대 공략도 예기치 못한 위기를 맞았다. ‘여성가족부 폐지’ 등을 공언하는 등 다소 치우친 전략을 펼쳤는데, 이에 분노한 여성 표심이 선거 막판 이 후보로 향하면서 결과적으로 윤 당선인에게는 역풍이 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0일 새벽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20대 대통령 선거 패배 선언 기자회견을 마친 후 나서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대장동’·'소고기 법카’·'본인 설화’로 곤혹

‘비호감 대선’을 만든 건 패배한 이재명 후보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대선을 하루 앞둔 지난 8일까지 ‘대장동 몸통’ 공방을 지속했다. 지난 6일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씨가 지난 2011년 부산저축은행 불법대출 사건이 윤석열 당시 대검 중수부 검사를 통해 해결됐다는 녹취가 뉴스타파 보도로 공개되자, 민주당은 “대장동 몸통은 윤석열(국민의힘 대선 후보)”이라며 공세에 나선 바 있다. 마지막 법정 TV 토론회에서도 이 후보는 ‘대장동 몸통’은 윤 후보라고 주장하면서 두 사람의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아울러 이 후보의 아내 김혜경씨 관련 논란도 거셌다. 이른바 ‘법인카드 유용’, ‘과잉 의전’ 논란 등에 휩싸인 것이다. 특히 법인카드로 소고기를 사 먹었다는 의혹이 타격이 컸다. 결국 논란이 커지자 지난달 9일 김씨는 대국민 사과를 하고 공개 활동을 접었다. 이 후보는 장남의 불법도박 의혹이 불거지자 직접 대국민 사과를 하기도 했다.

이 후보 본인의 설화도 잦았다. 그는 ‘준비된 경제 대통령’을 자부하면서 현실성이 떨어지는 ‘기축통화국’ 발언 등을 이어갔다. 그는 지난달 16일에는 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등 택시 4단체와의 정책협약식에서 “사망사고도 잦고 사업자와 노동자 간 갈등도 격화돼 분쟁이 많았는데 그때 이게(택시) ‘도시의 탄광’이라 생각했다”며 “일자리가 없어 마지막으로 가는 게 택시인데 이게 요즘은 그 길도 막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 후보의 이 같은 발언은 직업 비하 논란을 일으켰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6개월 초보 정치인”이라고 표현하면서 비판을 받았다. 이 후보의 발언 영상은 영문으로 번역돼 영미권 최대 인터넷 커뮤니티 중 하나인 ‘레딧’ 등으로 확산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대선 결과가 선거 마지막까지 계속된 양대 후보들의 네거티브에 대한 심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들에게 포지티브(positive)한 모습을 보이지 못한 양대 후보들이 어느 누구도 주도권을 쥐지 못해 선거 막판까지 혼전 양상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평론가는 “윤 당선인과 이재명 후보의 표차가 1%P 이내로 좁혀졌다는 것은 보수, 진보 진영 간 결집은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선거 국면을 주도하지 못했다는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결국 양 진영이 극단적으로 분열된 상태라는 것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윤 당선인이 승리를 했지만, 내용적으로는 심판을 받은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국민 통합을 위한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이번 대선은 양 진영이 최대한 결집한 결과로 막판까지 초박빙의 판세를 보였다고 본다”며 “다만, 일부 중도층은 ‘비호감 대선’ 분위기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양 진영이 최대한 결집한 근본적인 이유는 문재인 정권의 ‘갈라치기’였다”며 “이에 따라 각 진영의 결집이 강해지다보니 야권 단일화 효과조차 크게 반감됐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