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30여일 앞두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아내 김혜경씨의 ‘과잉 의전’이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이 후보가 변호사일 때부터 함께 일을 하던 배모 씨가 성남시청을 거쳐 경기도청에서 5급 사무관으로 근무하면서, 별정직 7급 공무원 A씨에게 업무 범위를 벗어나는 김씨의 사적 심부름을 시키고, 의료법과 위반에 해당하는 대리 처방 등을 했다는 의혹이다.
민주당 선대위는 의혹이 최초로 보도된 지난달 28일 후 닷새 만에 처음으로 배씨와 김씨의 해명 입장문을 배포하며 진화에 나섰다. 배씨는 A씨에게 사적 심부름을 지시한 것은 자신이라면서 이 후보와 김씨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고, 김씨는 배씨의 입장문을 보기 전에는 A씨를 알지 못했다는 듯한 입장을 냈다.
국민의힘은 김씨와 배씨의 해명이 거짓말이라고 반박에 나섰다. 여기에 더해 2일에는 A씨가 김씨의 집으로 소고기를 사서 배달을 가면서, 경기도 법인카드를 이용해 구매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김씨는 지난달 30일 방송된 MBN 인터뷰에서 “대통령에게 옆에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무한 검증을 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배씨 “넌 배달의 민족” “이재명·김혜경 모시는 마음이 돼 있는지”
김씨의 ‘과잉 의전’ 중 최초로 제기된 의혹은 배씨가 현재는 퇴직한 경기도 별정직 7급 공무원에게 김씨와 관련된 각종 심부름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배씨는 텔레그램 메신저를 이용해 지시를 내렸다.
SBS는 지난 28일 A씨가 “일과의 90% 이상이 김씨 관련 자질구레한 심부름이었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A씨가 공개한 배씨와 텔레그램 메신저 대화 내용을 보면, 냉장고 정리와 속옷과 양말, 셔츠 정리 등도 A씨가 했다. A씨는 김씨의 음식 배달 심부름도 했다고 한다. 김씨가 즐겨 찾는 식당에서 음식을 받아 자택에 둔 뒤 배씨에게 사진을 전송했다는 것이다. A씨는 “배씨가 ‘넌 배달의 민족’이라고 불렀다”며 “자신이 이 후보나 가족 앞에 나타나면 큰 혼이 났다”고 했다.
배씨는 A씨에게 김씨와 관련된 각종 사적 심부름을 지시하면서 ‘마음 자세’를 언급하기도 했다. 채널A가 지난달 31일 공개한 녹음파일에서 배씨는 A씨에게 “차가 여기 있고 윗사람이 여기 타는데 앞으로 이렇게 쌩 가는 게 맞아? 기본적으로 마음을 잘 생각을 해봐요”라며 “내가 지금 이재명이랑 김혜경을 모시는 마음이 돼 있는지, 그거부터 좀 장착을 해야 해요.어려워해야 돼”라고 했다.
◇”호르몬제 대리 처방해 수내동 자택 문에 걸어 놓고 보고”
SBS에 따르면 지난해 봄 당시 경기도청 총무과 소속 배씨는 비서실 직원 A씨에게 “사모님(김씨) 약을 알아봐달라”고 했고, 한 시간 후 A씨는 1시간 뒤 처방전 사진을 올렸다. 경기도청 부속 의원이 비서에게 28일 치 약을 처방했다는 내용의 처방전이다.
A씨는 비서들이 약을 산 뒤 이 후보의 아내 김씨가 머무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자택으로 직접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김씨가 직접 약을 타지 않고 타인의 이름으로 수령하게 한 데 대해서는, 김씨가 의료 기록이 남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A씨는 “구매한 약은 수내동 집 문에 걸어놓고 사진을 찍어 보고했다”고 말했다.
A씨가 대리 처방한 약은 호르몬제다. 지난달 29일 TV조선은 지난해 4월 배씨가 텔레그램에서 “사모님 호르몬 약을 알아봐달라”고 지시하자, A씨가 28일치 약을 대리 수령해 이 후보 자택으로 가져다 뒀다고 보고했다고 보도했다.
◇장남 퇴원수속 대신 해…종합병원 문진표 허위 작성
A씨가 지난해 6월 배씨의 지시로 업무시간에 경기 고양시 한 종합병원을 가서 퇴원 수속을 대리로 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TV조선 보도에 따르면, 당시 상황을 녹음한 파일에서 배씨는 “야 근데 약 주는 사람이 누구냐고 안 물어보디?”라고 했고, A씨는 “그런 거 안 물어보던데요” “‘(이 후보 아들 이모씨가) 아침에 일찍 나가셨네요’ 그 이야기만 하던데요”라고 했다. A씨는 당시 관용차를 타고 병원에 갔다고 한다.
채널A는 지난달 31일 김씨가 지난해 4월 자택 인근 종합병원을 방문했을 때 A씨가 김씨의 문진표를 대신 작성했다고 보도했다. A씨는 배씨의 지시에 따라 가상의 인물을 내세워 문진표를 대신 작성했고, 김씨와 배씨를 위한 출입허가증 2장을 받았다는 것이다.
현재 종합병원은 코로나19 상황이어서 문진표를 작성한 후 출입허가증을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다. 이 때문에 방역법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고기 개인 카드로 사서 자택에 배달하고 후에 법인카드로 다시 결제 의혹도
KBS는 2일 김씨가 경기도 비서실의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썼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김씨 수행팀이 개인카드로 먼저 결제를 했다가, 이를 취소한 후 법인카드로 다시 결제했다는 것이다.
A씨와 배씨의 지난해 4월 13일 텔레그램 대화를 보면, 배씨는 A씨에게 “고깃집에 소고기 안심 4팩을 이야기해 놓았다. 가격표 떼고 랩 씌워서 아이스박스에 넣어달라고 하라”며 “수내로 이동하라”고 한다. 이 후보와 김씨의 자택인 수내동 아파트를 뜻한다.
A 씨는 이런 방식으로 김씨의 찬거리와 식사를 경기도 공금으로 산 뒤 집까지 배달해 왔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개인 카드를 먼저 사용해 결제한 뒤 나중에 법인 카드로 재결제해 왔다고 주장했다. KBS가 확보한 A 씨의 카드 내역을 보면 ‘고기 구입 후 배달’ 지시가 있던 날, A 씨는 개인 카드로 고깃값 11만8000 원을 결제한 뒤 다음날 이를 취소하고, 비서실 법인 카드로 다시 결제했다. 지난해 11월까지 9개월 간 카드를 바꿔 결제한 경우는 열 차례가 넘는다.
◇배씨 “누구도 시키지 않았다” 김씨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있었다”
김씨의 ‘과잉 의전’이 보도된 후 침묵을 이어가던 김씨와 배씨는 닷새 만에 입장을 내놓았다. 배씨는 “어느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을 A씨에게 요구했다” “이 후보 부부에게 잘 보이고 싶어 상식적인 선을 넘는 요구를 했다”고 주장했다. 음식 배달에 대해선 “제 치기 어린 마음에서 비롯된 것” “누구도 시키지 않았다”고 했다. 전부 자신이 알아서 한 일이고, 이 후보와 김씨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또 A씨가 대리 처방해 김씨의 집으로 배달했던 ‘호르몬제’에 대해서는 “제가 복용할 목적”이었다고 했다. “늦은 결혼과 임신에 대핸 스트레스로 남몰래 호르몬제를 복용했다”는 것이다.
민주당 선대위는 출입기자들에게 배씨의 입장문을 이날 오후 5시22분 배포됐다. 선대위는 그 40분 뒤 김씨의 입장문을 내보냈다.
김씨는 “배씨의 입장문을 보았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있었다”고 했다. 배씨의 입장문을 보기 전까지는 A씨가 했던 일들을 몰랐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배씨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공과 사를 명료하게 가려야 했는데, 배씨와 친분이 있어 도움을 받았다”며 “그러나 상시 조력을 받은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다만 김씨는 “모든 것이 저의 불찰”이라며 국민들께 사과했다.
◇국민의힘 “단 한 구절도 수긍 가는 곳 없는 엉터리 거짓말”
국민의힘은 배씨와 김씨의 입장문에 대해 “단 한 구절도 수긍 가는 곳이 없는 엉터리 거짓말”라고 반박했다. 이양수 선대본부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배씨가 ‘대리 처방’한 호르몬제에 대해 “본인이 필요한 약이었는데 왜 김씨 집으로 배달이 되나”라고 물었다. 또 음식 심부름을 본인이 자청해서 했다는 주장에는 “김씨는 시키지도 않은 음식을 경기도 공무원이 사다 줘서 먹었다는 거냐”라고 했다.
이 후보와 김씨 자택의 냉장고와 옷장 정리를 A씨가 한 것과 관련해서는 김씨가 A씨의존재를 몰랐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수석대변인은 “김씨 집에 누군가가 와서 냉장고 정리며 옷장을 정리하는데 김씨는 그냥 보고만 있었다는 건가”라며 “아니면 배씨가 비밀번호라도 알고 있어서 김씨 부재중에 들어가 일 처리를 해서 몰랐다고 발뺌이라도 할 셈인가”라고 했다.
최지현 수석대변인 논평에서 경기도 법인카드로 구매한 소고기 등이 김씨 집으로 배달된 데 대해 “이 후보의 승인 내지 묵인 없이 법인카드로 생활비를 쓰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배씨, ‘혜경궁 김씨’ 사건에 등장…성남시청 거쳐 경기도 공무원 돼
국민의힘은 배씨에 대해 이 후보가 2010년 성남시장에 당선되기 전부터 이 후보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했던 직원이라고 설명한다. 원일희 선대본부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배 모 전 사무관은 이 후보가 변호사 시절부터 데리고 있던 직원을 성남시장과 경기도 지사를 거치면서 특별 채용해 부인 수발을 드는 임무를 맡겼다가, 대선 후보 캠프까지 데리고 온 인물”이라고 했다.
배씨는 2018년 경기지사 선거를 앞두고 이른바 ‘혜경궁 김씨’ 트위터 계정이 논란이 됐을 때에도 등장했다. 이양수 국민의힘 선대본부 수석대변인은 지난해 12월 20일 논평에서 “‘혜경궁 김씨’는 트위터에 가입할 때 ‘khk631000@gmail.com’이라는 이메일 주소를 사용했다”면서 “배씨는 한겨레신문 인터뷰에서 이 이메일 주소는 ‘2012년~2013년 사이 이 후보 일정을 김씨에게 구글 캘린더로 공유하기 위해 자신이 만들었다’라고 털어놓았다. 김혜경 씨를 의미하는 ‘khk’와 이재명 후보 이메일 아이디에 나오는 숫자 ‘631000′을 합성한 것이라고 한다”고 했다.
이어 “배씨가 만든 이메일을 이용해 트위터에 가입할 사람은 김씨 아니면 그 수행원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라며 “공무원인 수행원들이 트위터를 이용해 함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세월호 유족을 소재로 막말들을 올릴 수 있나. 그런 글을 올릴 수 있는 사람은 김씨밖에 없다”고 했다.
A씨의 제보가 언론에 보도되자, 과거 이 후보가 성남시장 시절 수행비서를 지낸 백모 씨도 지난달 30일 ‘통화 좀 할 수 있을까’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백씨는 2014년 이 후보의 성남시장 재선 선거운동을 돕다가 알게 된 버스 업자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2016년 1심에서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이 일로 공직을 떠났지만,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검찰의 압수수색 직전 통화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2011년에 12월 이 시장을 비판한 연설을 했다는 이유로 이덕수 당시 성남시의회 의원에게 욕설과 협박을 해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다. 2013년 12월에는 자정쯤 택시 기사와 요금 문제로 다투다 바닥에 넘어뜨려 머리와 얼굴 등을 때렸고, 경찰관의 신분증 제시 요구를 거부하며 욕설을 했다. 백씨는 1·2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백씨 변호는 성남시 고문변호사로 있던 이현용 변호사가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