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3일 벌어진 계엄 사태와 이어진 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로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특히 정치권 물밑에서는 혹시 있을지 모를 ‘조기 대선’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구속 수감된 윤 대통령의 탄핵안이 인용될 경우 60일 내에 차기 대통령을 선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차기 대통령 후보는 누구일까. 뚜렷한 선두주자가 보이지 않는 여권에서는 다양한 인물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이재명 대표의 지지도가 압도적인 야권에서도 대안으로 거론되는 인물들이 있다. 그들은 과연 대선 후보가 되는 티켓을 거머쥘 수 있을까. [편집자주]

‘오세훈의 대선 시계’는 여의도에서 먼저 움직인다. 취임 3년차 오세훈 서울시장이 여권 금기어인 조기 대선을 직접 언급한 적은 없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로 혼란한 여당은 이미 그를 주목하고 있다. 보수 궤멸 우려가 커진 가운데, ‘합리적 보수’ 이미지를 구축한 인물이 필요해서다. “4선(選) 서울시장은 공공재”라는 그의 신년 메시지가 불을 당겼다.

관건은 경선을 위한 우클릭을 감행하면서 대선 승리를 위한 ‘빅텐트’를 꾸릴 능력도 보여줄 수 있느냐는 점이다. 강성 지지층 표를 얻어 경선을 통과하더라도, 본선에서 이를 상쇄할 만한 확장성을 가졌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오세훈 서울시장. /뉴스1

◇목소리 키우는 吳, 노선은 ‘갈팡질팡’

탄핵 정국에서 오 시장의 목소리는 부쩍 커졌다. 비상계엄 옹호 또는 부정선거 의혹과는 선을 긋되, 대야(對野) 공세 메시지를 연일 내는 식이다. 최근엔 이틀에 한번 꼴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저격했다.

그는 당초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반대했었다. 그러나 2차 탄핵안 표결 직전 입장을 바꿔 “법의 심판을 받으라”고 했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통과 이후, 오 시장의 첫 메시지는 ‘상식을 따르는 정당’이었다. 그는 공식 블로그에 “진영의 핵심 지지층과 일반 국민 사이에 간극이 크다” “당이 보편적 시각과 상식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적었다.

또 “‘확장지향형 정당’의 길로 회생을 도모할지, ‘축소지향형 정당’으로 고립의 길을 걷다 사라질지 국민의힘은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여기엔 오 시장의 보수 정체성을 의심하는 강성 지지층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그는 윤 대통령 체포 직후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비상계엄 사태, 사회 양극화 등 일련의 상황에 대해 대통령의 과오를 인정하는 발언이다. 그러면서도 공수처가 발부 받은 체포영장 및 수사는 모두 위법이라고 했다. 대통령에 대한 불구속 수사도 요구했다. 사법부가 발부한 영장을 부정한 셈이다.

이틀 뒤엔 이재명 대표를 “정치적 청산 대상”이라며 공격했다. 헌정사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체포된 배경에는 “이재명식 비정상 정치가 있다”고도 했다. 계엄이 불가피했다는 극우 주장과 궤를 같이 한다. 사안별로 중도층을 공략하되, 보수 통합 구호인 ‘반(反)이재명’으로 진영 내 비판을 상쇄하는 식이다.

지난해 9월 23일 당시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 오세훈 서울시장이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서울특별시 예산정책협의회에 참석해 기념 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구자근 의원, 김일호 서울시당위원장, 김상훈 정책위의장, 추 당시 원내대표, 오 시장, 신동욱 의원, 김병민 정무부시장. /뉴스1

◇‘경선용’ 우클릭… 탄핵 찬·반 갈린 與 아울러야

이런 ‘애매한’ 노선은 여당의 혼란상과 맞닿아 있다. 국민의힘은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서부지법 폭동 등 굵직한 이슈마다 확실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했다. 계엄 선포를 ‘통치행위’로 보고 탄핵에 반대하는 강성 지지층, 계엄은 ‘위법’이며 탄핵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비판적 지지층이 혼재해서다.

법원 습격 사태가 발생하자,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폭력에 가담한 이들을 두둔했다. 당 공식 회의에서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면서도 “폭도라고 낙인찍지 말라” “시민들이 분노한 원인부터 살펴보라”고 했다. 정치권은 물론 법조계에서도 집권당이 법원 습격을 용인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박성민 ‘정치컨설턴트 민’ 대표는 “오세훈 시장의 애매한 태도는 국민의힘이 처한 난감한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봤다. 박 대표는 “당에 탄핵 찬성파와 반대파가 공존하고, 대통령과의 관계 양상도, 거리도 고심하는 상황”이라면서도 “동시에 양측을 아우를 수 있는 인물이 오 시장이기도 하다”라고 했다.

반면 악재가 될 거란 시각도 있다. 이종근 정치평론가는 “한동훈의 대항마로 ‘황태자’를 꿈꿨지만, 갑자기 윤 대통령을 두둔하면서 스탠스가 애매해졌다”고 했다. 또 “왕이 폐위 위기에 처하자 거리를 뒀다가, 당 지지율이 오르니 또 슬그머니 기조를 바꿨다”고 했다. ‘비주류’ ‘’소장파’ 이미지로 정치 인생을 꾸려온 오 시장의 우클릭이 본선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오 시장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유승민 전 의원과 함께 탄핵 찬성파로 분류된다. 다만 탄핵 외 대통령 체포와 공수처의 영장 집행, 구속 전반에선 ‘우클릭’ 하고 있다. 탄핵 반대파인 홍준표 대구시장, 김문수 노동부 장관과는 노선이 다른 셈이다. 이들은 보수층 결집과 ‘반(反)이재명’ 정서를 업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전하고 있다.

대권 첫 관문은 당내 경선이다. 당원 투표 50%, 일반국민 여론조사 50%를 각각 반영한다. 강성 지지층이 다수인 당원 조사는 상대적으로 선명성 경쟁이 될 수밖에 없다. 반면 일반국민 여론조사, 더 나아가 대선 본선에선 확장성이 승패를 가른다. 양측 모두의 지지를 받아야 대선행 티켓을 거머쥘 수 있다. 정치권이 ‘탄핵 찬성파 오세훈’을 주목하는 것도 이 대목이다.

2023년 2월 2일 황교안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대표가 박근혜 전 대통령 생일을 맞아 대구 달성군 유가읍 사저 앞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생일상 음식과 생일 선물 등을 준비해 경호처 관계자에게 전달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TK “본선에서 팔릴 카드는 吳”

정치권 일각에서는 ‘탄핵 학습효과’가 오 시장의 정치적 무게를 더 키울 거란 관측도 나온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이 ‘탄핵 반대파’ 주도로 강성 지지층에 의존했다가 총선에서 대패했기 때문이다.

황교안 당시 한국당 대표는 전광훈 목사가 주도하는 집회에 참석하고 보수 유튜버 채널에도 출연했다. 대통령 탄핵으로 당의 전국적 지지 기반이 무너지자, 세력을 확장한다는 명분이었다. 결국 2018년 지선에서 17개 시도지사 중 3석(무소속 포함), 2020년 총선땐 103석으로 민주당(180석)에 참패했다.

반면 2021년 보궐선거에선 ‘탄핵 찬성파’였던 오 시장과 박형준 후보가 각각 서울과 부산을 탈환했다. 두달 뒤엔 30대 원외인사 이준석 당대표를 배출했다. 이 대표 역시 박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던 인사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은 “탄핵에 반대한 황교안, (친박계가 지원한) 나경원 등이 당을 이끌 땐 선거에서 졌다”면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적 평가도 쌓였지만, ‘탄핵 찬성파’인 오세훈·박형준에 보수표가 모여 이겼다”고 봤다. 황 전 대표는 총선 당시까지, 나 의원은 총선 4개월 전까지 각각 당 대표와 원내대표를 지냈다.

최 소장은 “오 시장이 등판하면, 다른 찬성파 잠룡이 표를 당겨올 공간이 적어 단일화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했다. 당내에도 이런 시각이 많다. 대구 지역 한 의원은 ‘보수 총 결집’ 카드로 오 시장을 꼽았다. 그는 “오세훈이 아닌 김문수, 홍준표로는 본선을 치르기 어렵다. 다른 주자들이 빅텐트에 동의할 명분을 못 얻는다”고 했다.

경북을 지역구로 둔 의원은 ‘상품성’을 언급했다. 강성 지지층의 ‘불신’을 상쇄하는 건 친윤계 의원들의 몫이라고도 했다. 그는 “탄핵에 반대하는 당원들, 찬성하는 지지자를 다 모을 수 있는 사람은 오세훈”이라며 “지지자들 눈에 못 미더운 미지근함이 있지만, 의원들이 가교가 돼서 당원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해 12월 3일 오후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명태균 씨에 대한 고소장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명태균 파도’ 넘을까 ‘주목’

여기에 넘어야 하는 산이 하나 더 있다. ‘명태균 리스크’다. 오 시장 측근이 명 씨에게 여론조사 비용 수천만 원을 대납했다는 의혹이 해결돼야 한다.

당내 시선은 엇갈린다. 수도권 지역 의원은 “민주당이 여권 경선판의 ‘키’를 쥐고 있다”고 봤다. 야당이 김건희 특검법에 속도를 내면, 명씨와 연관 사실이 드러나 여권 인사들이 줄소환될 것으로 보는 것이다.

부산 지역 국민의힘 의원은 “이젠 오 시장이 (대선) 승부수를 던질 때가 됐다”면서도 “명태균 리스크를 무시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내란 특검법’보다 오히려 ‘김건희 특검법’이 야당의 꽃놀이패라고도 했다. 명 씨 연관 의혹이 제기되기만 해도 여권 잠룡 다수가 발이 묶일 거란 이유에서다.

반면 대구 지역 의원은 명씨 영향이 미미할 거라고 봤다. 그는 “대구 지역 정치판엔 자칭 브로커나 평론가를 자처하는 사람이 널렸다”면서 “오 시장 본인부터 굉장히 떳떳한 태도이고, 빨리 수사를 해달라지 않았나.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