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3일 벌어진 계엄 사태와 이어진 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로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특히 정치권 물밑에서는 혹시 있을지 모를 ‘조기 대선’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구속 수감된 윤 대통령의 탄핵안이 인용될 경우 60일 내에 차기 대통령을 선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차기 대통령 후보는 누구일까. 뚜렷한 선두주자가 보이지 않는 여권에서는 다양한 인물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이재명 대표의 지지도가 압도적인 야권에서도 대안으로 거론되는 인물들이 있다. 그들은 과연 대선 후보가 되는 티켓을 거머쥘 수 있을까. [편집자주]
홍준표 대구시장이 ‘라스트 댄스’를 위한 몸풀기에 나섰다. 2017년 보수진영의 위기에서 구원투수로 등판했던 그는 “안정적인 리더십”을 강조하며 차기 대권 포부를 드러내고 있다. 풍부한 정치적 경륜과 활발한 소통 능력은 그가 현재까지 대권주자로 오르내리는 이유다. 그러나 마지막 대권 플랜이 성공하려면 취약한 당내 지지 기반을 다잡고 ‘마이웨이’ 이미지에서 벗어나 중도층까지 끌어안아야 하는 과제를 풀어야 한다.
◇ 정치 인생 29년 베테랑 정치인의 ‘라스트 댄스’
홍 시장은 이미 차기 대권 재도전을 공식화했다. 그의 나이는 올해 71세. 홍 시장은 지난 12일 자신의 온라인 소통 플랫폼 ‘청년의꿈’에서 “다음 대선이 라스트 댄스”라고 선언했다.
그의 29년 정치 인생은 대권 도전의 역사였다. 2007년을 시작으로 2017년, 2022년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 도전이다. 2007년 대선에선 ‘이명박 vs 박근혜’의 강대강 대결 구도 속에 경선 참가에 만족했다면, 2017년 대선에선 국정농단 사태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보수진영 위기 속에 구원투수로 나섰다.
당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패배했지만 보수 재건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의 활약상은 보수 진영에 깊이 각인돼 있다. 이후 21대 총선을 통해 여의도로 복귀한 후 2022년 대선에 다시 도전했지만, 당심을 얻지 못하며 본선 진출이 좌절됐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결정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차기 대권가도를 향한 그의 발걸음은 분주해졌다.
◇ 풍부한 정치 경력·정통 보수 강점...직설 화법으로 2030세대 지지
보수진영의 두 번째 대통령 탄핵소추 가결이라는 위기 앞에서 여권도 그를 주목하고 있다. 홍 시장의 화려한 정치 경력은 보수진영이 대권주자로 내세우기에 손색없다는 평가다. 홍 시장은 ‘모래시계 검사’로 유명세를 얻은 후 1996년 정계에 입문했다. 30년에 가까운 정치 인생에서 5선(15·16·17·18·21대) 중진으로 두 차례 당대표를 지냈다.
경상남도지사와 대구시장을 맡아 보수 텃밭 광역자치단체 2곳에서 행정 경험을 쌓으며 ‘보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한 적은 있지만, 새로운 당을 만들거나 보수 진영을 분열시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통 보수의 본류에 속해 있다고 평가받는다.
2017년 대선 패배 이후에도 꾸준히 활동하며 정치적 생명력을 유지해 온 것은 그만의 저력이다. 소위 ‘홍카콜라’로 불리는 직설적인 화법과 대중과의 활발한 소통 능력도 그가 대권주자로 다시 부상하는 배경으로 꼽힌다. 정치를 시작한 직후부터 정치일기를 써 왔다는 그는 늘 소통에 주력했다.
대선 패배 후 미국으로 떠났다가 2018년 정계에 복귀한 직후 가장 먼저 한 일도 유튜브 채널 ‘홍카콜라’ 개설이었다. “기울어진 언론 운동장에 기대지 않고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해야 한다”라며 참모들에게 직접 지시했다고 한다.
20대 대선을 앞두고는 온라인 소통 플랫폼 ‘청년의꿈’을 개설했다. ‘소통하는 정치인’답게 최근에는 그간 소셜미디어(SNS)에 남긴 글을 엮어 책도 출간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정치 철학을 대중에게 알린다는 계획이다.
2030세대 남성, 젊은 보수층에서 상대적으로 인기가 높은 데에도 이처럼 꾸준히 소통하고 기존 정치인들과 차별화된 화법을 구사하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거의 매일 현안에 대한 의견을 내고 있다. 국내 정치는 물론 외교·국방, 경제, 스포츠, 연예에 이르기까지 관심사도 폭넓다.
최진 대통령 리더십연구원장은 “홍 시장은 이른바 ‘이슈 파이팅형’ 정치 지도자다. 대권을 염두에 둔 정치인이라면 대중들의 주목을 받고 본인이 의도한 대로 끌고 가는 능력이 중요한데, 이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고 평했다.
◇ ‘탄핵 반대’로 보수층 공략...여전히 취약한 당내 기반
그러나 당내에 사실상 정치적 우군(友軍)이 없다는 점은 걸림돌이다. 지난 대선 경선에서도 민심에서 이겼지만, 당심에서 밀려 본선 후보 자리를 내줘야 했다. 대권을 꿈꾸는 유력 정치인들은 친분이 두터운 의원들과 세력화에 나서지만 홍 시장은 비주류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며 ‘무(無)계파’의 길을 걸어왔다. 19대 대선 패배 이후 자유한국당 대표를 맡으며 친홍계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이내 사라졌다.
한때 친홍계로 분류됐던 국민의힘 한 의원은 “홍 시장에 대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며 말을 아꼈다. 여권 관계자는 “홍 시장은 개인기는 좋은데 독불장군 이미지가 강해서 보수 핵심층에서 지지세가 약하다. 홍 시장을 오래 겪은 사람들은 그를 어려워한다”고 평했다.
홍 시장은 2021년 대선 경선에서 좌절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차기 대선을 위한 포석을 마련해 왔다. 2022년 대구시장에 도전해 지역 기반을 PK(부산·경남)에 이어 TK(대구·경북)로 넓혔다.
윤 대통령 탄핵 소추 가결 이후 그의 메시지도 ‘전통 보수층’을 향하고 있다. 다른 대권 경쟁자들이 탄핵 찬성 의사를 밝힌 것과 달리 홍 시장은 탄핵안에 반대하며 차별화를 꾀했다. 그러면서도 ‘용병 불가론’을 주창하고 있다. 윤 대통령과 한동훈 전 대표 등을 ‘용병’에 빗대면서 더 이상 대선과 총선 등 큰 선거에서 외부 인사를 영입하는 식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고 강조하며 자신은 ‘정통 보수 정치인’임을 내세우고 있다.
이처럼 전통 보수층을 공략했지만 최근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강성 보수층 사이에서 급부상하면서, 상대적으로 그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홍 시장은 정통보수의 맥을 잇는 유력한 후보 중 하나”라며 “12월 한동훈 전 대표가 사퇴할 때만 해도 오세훈 서울시장과 선두권을 형성했다. 그러나 최근 강성 보수 지지층이 김문수 장관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양상이다. 최근 입지가 흔들리는 모양새”라고 했다. 이어 “대선주자가 되려면 특정 이념이나 특정 세대, 특정 지역의 지지로 구축한 흔들리지 않는 진지(陣地)가 필요한데 홍 시장은 아직 구축하지 못한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본선에 오를 경우 확장성도 관건이다. 메시지만큼이나 그의 정책 방향성에 대한 호불호도 뚜렷하다. 홍 시장은 흉악범에 대한 사형 집행 재개, 동성애 반대에 명확한 반대 입장을 내고 있다. 특히 윤 대통령 탄핵안에 반대한 것은 지지층 확장에는 한계가 될 수도 있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홍 시장은 충분한 경험을 두루 갖춘 분”이라면서도 “최근에 말씀을 너무 많이 해 안정감을 떨어뜨리는 게 아닌가 싶다. 계엄 정국 사태를 이끌거나 기여한 분은 아니다. 그래서 이번에 대선에 도전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최 원장은 “(거친 메시지는) 지도자로서 상당히 전투적이고 불안하고 좌우충돌하는 불안감을 줄 수도 있다. 반대층으로부터 강한 거부감을 주고 중도층이 선뜻 다가가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고 짚었다.
세 차례 대권 도전에 따른 이미지 소모도 보완해야 할 지점이다. 한 야권 관계자는 “홍 시장은 이미 흘러간 사람”이라며 차기 대선에서 위협적이지 않은 인물로 평가했다.
◇ ‘친윤계’와 연대로 당내 기반 보완 가능성... ’보수 재건’ 비전 제시 필요
홍 시장이 보수진영 대선 주자로 자리매김하려면 대구·경북과 60대 이상 전통적 보수층의 탄탄한 지지를 다지는 게 관건이다. 핵심 당원층을 사로잡기 위한 지역 조직과의 연계를 강화하고, 당내 주요 인사들과 협력에 힘을 쏟을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특히 한동훈 전 대표가 물러나며 친윤계의 차기 주자가 사실상 없는 상황에서 홍 시장이 빈틈을 노려 친윤계와 전략적으로 연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여권에서 거론된다. 이와 관련해 홍 시장은 최근 10여 년간 사용해 온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고 당 지도부와의 스킨십을 늘려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한 당직자는 “홍 시장은 조직 내 비토(거부) 정서를 극복하는 게 최대 과제일 것이다. 젊은 층의 지지를 받지만 당내에서 인정받는 것이 필요하다. 약점을 보완해 줄 만한 좋은 참모들을 꾸리면 좀 더 (차기 대권)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탄핵 정국 이후엔 보수 진영의 재편이 필수적인 만큼 보수 재건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과 비전도 제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보수층 결집을 시도하되, 중도층의 반발을 막기 위해 통합과 화합의 메시지를 병행하는 노력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최 원장은 “보수를 어떻게 재건하겠다는 건지 나름대로 청사진이나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는 점이 아주 중요한 포인트”라며 “윤 대통령에 대해 어떤 입장을 보일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 또 정책이든 화법이든 행보든 안정감과 신뢰감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