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주주 충실의무’ 조항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처리하기 전 공청회를 열어 학계와 재계의 의견을 들었다. 상법 개정 찬성 측은 소액주주 보호와 국내 자본시장 가치 상승을 주장했다. 반면 반대 측은 주주 충실의무를 담은 상법 개정안은 엉터리라며 국회의 입법 수준이 낮다는 취지로 강하게 비판했다.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는 15일 오전 국회에서 상법 개정 관련 공청회를 열었다. 공청회는 법안1소위 위원장인 박범계 민주당 의원 사회로 진행됐다. 민주당에서는 박균택·박희승·서영교·이성윤 의원이 참석했다. 국민의힘은 장동혁 의원만 참석했다.
공청회는 전문가들의 발표를 청취한 뒤 법안1소위 소속 법사위원들이 질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전문가는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정우용 한국상장사협의회 부회장, 송옥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명한석 법무법인 화현 변호사가 참석했다.
상법 개정안은 민주당이 당론으로 채택해 지난해 11월 이정문 정책위 수석부의장을 대표로 해 발의했다. 상법 개정의 최대 쟁점은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와 ‘총주주이익 보호 의무’를 법에 명시할 것인가이다.
개정안은 상법 제382조에 명시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 ‘이사는 직무수행 시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며,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상법 개정 찬성 측은 일반주주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현실을 꼬집었다. 기업이 합병·분할, 상장폐지, 유상증자 등을 할 때 일반 주주가 손해를 보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예컨대 두산그룹이 두산에너빌리티의 자회사 두산밥캣을 분할해 두산로보틱스에 편입시키려다가 두산밥캣 주주들의 반발을 산 것이 대표적이다.
송옥렬 교수는 “지주사 전환이나 합병, 분할, 상장폐지 등으로 지배주주가 사익을 추구하는 행위들이 많이 이뤄지고 있다”며 “투자자 입장에서는 거래할 때 법적 통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본시장에서 주주가 대우받지 못한다, 주가가 폭락해도 회사가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는 투자자들의 인식이 상법 개정으로 분출된 것”이라고 했다.
기업 지배구조가 취약해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시장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송 교수는 “국내 투자자들, 심지어 연금도 다 나스닥으로 가고 있는데, 외국인이 국내 주식시장에 들어온다고 생각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회사와 주주의 이익이 분리돼 있지 않기 때문에 총주주이익을 보호하는 것이 경영진에 추가적인 부담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반대 측은 추상적인 조항을 상법에 넣어 불필요한 소송만 많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이사가 회사와 주주에 충실의무를 지는 것은 명문화하지 않아도 당연한 사실이라는 설명이다. 오히려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상법에 명시하는 것은 세계적 기준에 맞는 법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온다.
최준선 교수는 “이사의 충실의무는 지위를 이용해 회사 재산을 편취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비롯됐고 이게 글로벌 스탠다드”라며 “하지만 지금 상법 개정안은 충실의무가 변질돼 모든 경영활동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의도가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이사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없고, 이런 측면에서 한국 경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최 교수는 경영권 침탈 문제도 더 쉽게 발생할 수 있다며 상법 개정안을 강하게 비판했다. 최 교수는 “한국은 투기자본의 경영권 침해에 대한 방어 수단이 없다”며 “이사의 충실의무 개정이 상법을 혼탁하게 만들어 체계 자체를 흩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상법 개정안을 엉터리로 만들었다”면서 “국회의 입법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나 화가 난다”고 했다.
민주당은 상법 개정안을 이달 말 법사위에서 통과시키고, 올해 초 본회의에서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19일 재계 관계자와 개인투자자들이 참석한 상법 개정 공개토론회에 직접 좌장으로 나서기도 했다. 민주당은 상법의 ‘주주 충실의무’를 기본 원칙으로 세우고,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합병·분할·상장폐지·전환사채·유상증자 등 경영 활동을 규제해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를 해소한다는 방침이다.
법사위 법안1소위원장인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공청회에서 전문가들과 함께 심도 있는 토론을 했다”며 “공청회 의견은 법안1소위원회의 상법 개정안 심사 시 많은 참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