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19일 윤석열 대통령이 밝힌 비핵화 로드맵 ‘담대한 구상’을 거부했다.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담대한 구상이 발표된 지 나흘 만이다. 그러면서 김여정은 “어리석음의 극치” “무식함에 의아” “바보스럽다” “정녕 ‘대통령’으로 당선시킬 인물이 저 윤 아무개 밖에 없었는가” 등 윤 대통령을 깎아 내렸다.
김여정은 이날 조선중앙통신 등을 통해 발표한 ‘허망한 꿈을 꾸지 마라’라는 제목의 담화에서 “(남측이)앞으로 또 무슨 요란한 구상을 해가지고 문을 두드리겠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는 절대로 상대해주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혀둔다”고 했다. 그러면서 “윤석열의 담대한 구상이라는 것은 검푸른 대양을 말려 뽕밭을 만들어보겠다는 것만큼이나 실현과 동떨어진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폄훼했다.
‘담대한 구상’에 대해선 “새로운 것이 아니라 10여 년 전 이명박 역도가 내들었다가 세인의 주목은커녕 동족 대결의 산물로 버림받은 ‘비핵·개방·3000′의 복사판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또 “역사의 오물통에 처박힌 대북정책을 옮겨 베껴놓은 것도 가관이지만 거기에 제식대로 ‘담대하다’는 표현까지 붙여놓은 것을 보면 진짜 바보스럽기 짝이 없다”고 비난했다.
김여정은 윤 대통령의 실명을 직함 없이 거론하며 원색적인 표현을 동원해 비난했다. 그는 “남조선 당국의 대북정책을 평하기에 앞서 우리는 윤석열 그 인간 자체가 싫다”면서 “제발 좀 서로 의식하지 말며 살았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라고 말했다.
또 “한때 그 무슨 ‘…운전자’를 자처하며 뭇사람들에게 의아를 선사하던 사람이 사라져버리니 이제는 그에 절대 짝지지 않는 제멋에 사는 사람이 또 하나 나타나 권좌에 올라앉았다”고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을 ‘의아를 선사하던 사람’이라고 했고, 윤 대통령은 ‘제멋에 사는 사람’이라고 한 것이다.
김여정은 “그래도 소위 ‘대통령’이라는 자가 나서서 한다는 마디마디의 그 엉망 같은 말들을 듣고 앉아있자니 참으로 그쪽 동네 세상이 신기해 보일 따름”이라며 “정녕 ‘대통령’으로 당선시킬 인물이 저 윤 아무개밖에 없었는가?”라고 했다. “가뜩이나 경제와 민생이 엉망진창이어서 어느 시각에 쫓겨날지도 모를 불안 속에 살겠는데(…)”라며 국내 정치문제를 조롱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담대한 구상을 발표한 데 대해서는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이겠는지,또 북남관계를 아는 사람들이 어떻게 평할런지도 전혀 개의치 않았으니 그 나름대로의 ‘용감성’과 넘치게 보여준 무식함에 의아해짐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김여정은 정부가 ‘담대한 구상’의 전제 조건으로 북한의 진정성 있는 비핵화 의지를 강조한 대목을 강하게 문제 삼았다. 그는 “’북이 비핵화 조치를 취한다면’이라는 가정부터가 잘못된 전제라는 것을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상에는 흥정할 것이 따로 있는 법, 우리의 국체인 핵을 경제협력과 같은 물건짝과 바꾸어보겠다는 발상이 윤석열의 푸르청청한 꿈이고 희망이고 구상이라고 생각하니 정말 천진스럽고 아직은 어리기는 어리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고 비아냥댔다. 그러면서 핵무기를 ‘국체’라고 표현했다.
탈북민 단체가 날려보내는 대북전단이 코로나19 원인이라는 주장도 반복했다. 김여정은 “경내에 아직도 더러운 오물들을 계속 들여보내며 우리의 안전환경을 엄중히 침해하는 악한들이 북 주민들에 대한 식량공급과 의료지원 따위를 줴쳐대는 것이야말로 우리 인민의 격렬한 증오와 분격을 더욱 무섭게 폭발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더러운 오물’이란 남측에서 살포된 대북전단 등을 뜻한다.
김여정은 지난 10일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 때도 북측의 코로나19 최초 발병 원인으로 남측에서 날아온 대북전단 등을 지목하면서 책임을 남측에 전가했다. 또 ‘강력한 보복 대응’을 위협했다.
이날은 “오늘은 담대한 구상을 운운하고 내일은 북침전쟁연습을 강행하는 파렴치한 이가 다름 아닌 윤석열 그 위인이다”라고 말해, 현재 사전연습이 진행 중인 한미 연합연습 ‘을지 자유의 방패’(UFS·을지프리덤실드)에 대한 거부감도 드러냈다
이번 담화는 통신뿐만 아니라 북한 전 주민이 접할 수 있는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과 조선중앙방송 등을 통해서도 소개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맞물려 식량·인프라 지원 등 경제협력 방안에 정치·군사적 상응조치까지 제공하겠다는 ‘담대한 구상’을 북측에 정식 제안했다. 정부는 북미관계 정상화와 재래식 무기체계 군축 논의 등 정치·군사적 상응조치도 포함된 부분을 ‘비핵·개방·3000′과의 차별점으로 앞세우며 북한의 호응을 촉구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