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달 2일 상호관세 조치를 예고한 가운데, 미국의 비관세 장벽에 대한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미국은 무역대표부(USTR)의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NTE)를 바탕으로 검역·보조금 등 비관세 장벽을 모두 고려해 표적화된 관세를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29일 정부에 따르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지난 21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미국산 제품이 한국의 비관세장벽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면서 “한국의 비관세조치 때문에 미국 제품이 한국에서 덜 팔리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도 미국 기업들로부터 접수 받은 ‘불공정 무역 관행으로 인한 피해 의견’을 나열하면서, “미국 기업들의 불만이 많다”고 언급했다.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발표를 앞두고 그간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에서 반복적으로 지적해왔던 내용을 살피는 한편, 조만간 발표될 USTR의 NTE 보고서를 주목하고 있다. USTR은 올해 756건의 기업·단체들의 의견을 접수했으며, 이를 취합해 이달 말까지 국가별 NTE보고서를 발표할 계획이다.
통상업계와 정부는 미국이 이번에도 주요 비관세장벽으로 우리나라의 위생 및 식품위생(SPS) 조치를 꼽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미국 바이오산업협회는 지난 11일 “한국의 유전자변형생물체(LMO)법이 규정한 심사가 여러 기관에 분산돼있어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이 부족하다”며 “10년이 넘도록 해결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미국 대두협회도 “한국의 승인절차가 지나치게 복잡하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농촌진흥청이 최근 심플로트의 ‘미국산 LMO 식용 감자’에 대해 7년 만에 ‘수입적합’ 판정을 내리자, ‘안 장관의 방미 선물’이라는 분석이 나온 이유다.
미국이 사과와 배를 포함한 과일 수입을 압박할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다. USTR은 지난 2018년부터 매년 NTE를 통해 한국의 사과 배 시장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한미 FTA로 후지사과, 동양배를 제외한 대부분의 미국산 사과·배에 대한 관세가 철폐됐지만 검역 문제로 사실상 수입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다른 나라가 사과, 배, 복숭아, 수박 등을 수출하려면 8단계 수입 위험 분석(IRA)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를 통과하지 못한 탓이다. 미국은 한국 정부에 1993년과 1994년 각각 사과와 배에 대한 IRA를 요청했으나, 현재 3단계에 머물고 있다.
그간 USTR이 지속해서 요구해온 미국산 소고기 월령조치 해제에 대해 압박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 전국소고기협회(NCBA)는 지난 11일 “중국이나 일본, 대만에서는 미국산 소고기의 안전성과 품질을 인정해 30개월 제한을 해제했다”며 “한국에서도 비슷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요구한 바 있다.
◇ 서비스·투자 지분 제한까지 사정권
미국은 그간 법률 시장과 금융·보험 등 서비스 장벽도 지적한 바 있다. 지난해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에는 “2016년 해외 로펌과 합작을 허용하는 외국법자문사법이 통과됐으나, 한국은 외국 로펌의 소유 지분을 49%로 제한하고 업무 범위에 제한을 둔다”고 지적했다. 방송, 통신, 농업, 육류유통업, 에너지발전, 언론, 운송서비스에 대한 외국인 투자 지분이 제한된다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미국은 ‘금융 기관이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할 때, 한국 서버를 이용하도록 의무화’하는 규제를 무역장벽으로 수차례 언급해왔다. 해당 규제가 미국의 클라우스 서비스 공급 업체의 한국 시장 진입을 막는다는 것이다. 공공조달 IT 장비도 암호화 인증이 글로벌 표준과 달라 미국업체가 한국 시장에 진입하기 어렵다고 지적해왔다.
미국은 특히 빅테크 기업에 부담을 주는 외국정부의 정책을 반(反)경쟁적 조치로 규정하고, 면밀히 조사하겠다는 의지까지 밝힌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지도 데이터 반출 금지나 망 사용료 부과, 온라인 플랫폼 경쟁 촉진법이 이에 해당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미국 혁신기업에 대한 부당·불공정 벌과금 대응을 위한 각서’도 체결한 바 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통상학회장)은 “한국이 비관세 장벽을 늘린 게 아니기 때문에 올해 크게 추가될 내용은 없을 것이라 본다”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빅테크 기업들의 서비스에 관심이 많아 이를 강조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일부 전문가는 NTE 보고서와 트럼프의 관세 조치 근거에 부가가치세가 포함될 수 있을 것이라 봤다. 한주희 무역협회 연구원은 “바이든 정부 때 무역장벽의 의미를 축소하면서 상당히 많은 부분이 삭제됐다”면서 “트럼프 정부로 들어서면서 NTE 보고서에 삭제된 내용이 다시 복구되고,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하는 부가가치세와 관련한 내용이 추가될 수 있다”고 했다.
한편, 통상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 달 2일 표적화된 관세를 발표하더라도, 시간을 주고 협상의 여지를 열어둘 것이라고 봤다. 허윤 교수는 “200명의 USTR 직원들로 수백개국의 비관세 장벽을 관세화하기는 상당히 어렵다고 본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일단 국가별, 업종별 관세율을 발표한 후 각국 반응에 따라 협상하며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할 것”이라고 봤다.
최석영 법무법인 광장 고문(전 외교부 경제통상대사)은 “당장 트럼프 대통령이 비관세 장벽에 대해 관심이 많은 만큼, 비관세장벽을 관세화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면서도 “미국은 협상 기간을 주면서 상대국이 스스로 비관세 장벽을 무너뜨리게끔 하려는 전략을 활용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