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예산 편성 지침에서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하며 재정 운영 기조를 전환한 가운데, 재원 마련 방안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는 ‘의무지출’ 구조조정을 주요한 방안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데, 법을 개정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실현 가능성에 ‘물음표’가 붙은 상황이다. 사업성 예산을 일컫는 재량지출과 달리, 의무지출은 기초연금이나 지방교육재정교부금처럼 법적으로 지출이 의무적으로 설정된 예산을 일컫는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 尹 정부 4년간 강조한 ‘건전재정’ 후순위로

기획재정부가 25일 발표한 ‘2026년도 예산안 편성방향’에는 “경기회복 마중물, 산업 경쟁력 제고, 사회 구조개혁 지원 등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요구된다”고 쓰였다.

이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기조와는 사뭇 달라진 기류다. 출범 첫해인 2022년 재정전략회의에서 재정 기조를 기존 ‘확장’에서 ‘건전’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한 윤석열 정부는, 2024년 예산안 편성 지침에서 건전재정 기조의 ‘견지’, 2025년 지침에서 건전재정 기조의 ‘확립’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런데 내년 예산안에선 ‘건전 재정’이란 문구는 사라졌다. 대신 이보다 수위를 낮춘 ‘재정의 지속 가능성’이 언급됐고, 그 순서도 후순위로 밀렸다. 기재부 관계자는 “과거엔 단기적인 ‘건전 재정’을 앞세웠다면 이제는 중장기적인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올해 내수 침체에 더해 그나마 우리나라 경제를 지탱하던 수출마저 꺾이자, 무조건 ‘건전 재정’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는 비판이 잇따랐는데, 정부도 “재정이 ‘마중물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요구를 수용한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출범 첫해인 2022년 7월 7일 충북 청주 충북대학교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는 모습. 당시 '건전 재정'으로의 전환을 강조했다. /대통령실 제공

정부는 내년에 모처럼 쓸 곳에는 과감하게 돈을 쓰겠다는 입장이지만, 재정 여력이 뒷받침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문제가 있다. 경기 회복 여부가 불투명하다 보니 세입 여건이 나아질지도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비과세‧감면 제도 정비 등 조세지출 관리 실효성을 강화하고, 탈루소득·체납 세액은 철저히 과세하겠다”고 밝힐 뿐, 별다른 세수 확보 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법적으로 정해진 의무지출의 규모는 어마어마하게 불어나고 있어, 사업하는 데 쓸 재량지출 운용의 폭은 대폭 좁아지고 있다. 전체 지출에서 의무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52.9%에서 2026년 55.6%, 2028년 57.3% 등으로 지속해서 불어날 예정이다. 또 ‘2024~2028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재량지출 규모가 2026~2028년 313조원, 318조원, 323조원 등으로 증가할 동안, 의무지출 규모는 391조원, 413조원, 433조원 등으로 가파르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래픽=손민균

◇ ‘의무지출’ 손본다지만… “법 개정 사안” 험로 예상

이 때문에 정부는 이번에 ‘의무지출’을 대대적으로 손볼 가능성을 내비쳤다. 기재부는 “의무지출 비중이 지속적으로 커지면서 향후 재정 여력 대부분을 의무지출 충당에 투입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며 “특히 초고령사회 진입에 따른 연금·의료 등 복지지출 급증, 국채이자 부담으로 의무지출 소요는 계속 증가할 전망”이라고 진단했다. 연금 구조 개혁이나 기초연금,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등이 도마 위에 오를 의무지출 항목으로 거론된다.

재량지출만 짜낼 것이 아니라 의무지출의 구조조정도 적극적으로 단행해야 한다는 것은, 재정 운용과 관련해 정부에 자문 역할을 하는 재정운용전략위원회의 반복된 제언이기도 하다. 한 재정운용전략위원은 조선비즈에 “현재 ‘재량지출’만을 타깃하고 있는 구조조정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며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아일랜드·네덜란드 등이 인건비·연금·사회보장 제도 등에 대한 그림을 다시 그리는 작업을 한 바 있다”고 했다.

내년 재정의 ‘적극적 역할’과 ‘지속 가능성 제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고 나선 예산당국이지만, 재정 전문가들은 현실 가능성에 의문을 표한다. 이강구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특히 의무지출은 법 개정 사항”이라며 “인구 구조 변화 등으로 재구조화가 필요하다는 취지에 공감은 하나,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국회뿐 아니라 행정안전부·교육부·지방자치단체와 합의가 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 예산편성 지침에서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강조되긴 했으나, 경제 위기를 타개할 만큼 전격적인 재정 기조 전환으로 보기엔 애매하다는 의견도 냈다. 이 연구위원은 “현재 정치적 불확실성이 매우 큰 만큼, ‘내년 예산 편성 시 어떤 기조로 편성해야 한다’고 기재부가 뚜렷하게 내세우기 어려운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