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도 예산안 편성 지침을 통해 ‘적극 재정’을 예고했다. 경기가 침체하면서 내수 진작, 청년 일자리 창출 등 ‘민생’ 과제들이 내년 최우선 예산 과제로 꼽혔다. 인공지능(AI)·반도체·바이오 분야의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트럼프 리스크’에 따라 통상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데도 예산이 집중 투입될 전망이다.

정부는 25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2026년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 지침’을 의결·확정했다. 이로써 예산 편성의 ‘가이드라인’인 이 지침은 곧 전 부처에 통보되고, 각 부처는 해당 지침에 따라 내년도 예산 편성 요구서를 작성해 5월 31일까지 기획재정부에 제출해야 한다. 기재부는 이를 모아 부처 협의 등을 거쳐 내년도 예산안을 편성해 9월 2일까지 국회에 제출한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전면서 사라진 ‘건전 재정’… “재정 적극 역할 要”

정부는 내년 ‘적극 재정’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는 편성 지침에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이는 윤석열 정부에서 수립한 2023·2024·2025년 예산 편성 지침에서 ‘건전 재정’이 전면에 내세워져, 내내 ‘짠물 예산’이 예고됐던 것과 사뭇 달라진 기조다.

그렇다고 건전 재정을 아예 포기한 것은 아니다. 정부는 필수적 소요를 제외한 재량지출을 10% 이상 구조조정하겠다고 밝혔다. 또 법적으로 지급 의무가 있는 의무지출도 손볼 여지가 있는지 함께 살피겠다고 했다. 그간 재량지출 절감은 매년 언급돼 왔는데, 기초연금·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같은 의무지출까지 구조조정 여지를 살피겠다고 밝힌 것은 처음이다. 쓸만한 곳엔 적극적으로 쓰되, 아낄 구석이 있다면 아끼는 노력도 같이한다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민생·산업 등 중점 분야에 대한 재정 지원 역할은 충분히 하면서도, 구조조정을 통해 재원 여력을 확보한다는 두 명제를 모두 양립시키겠단 생각”이라며 “단, 과거엔 단기적인 ‘건전 재정’을 앞세웠다면 이제는 중장기적인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래픽=정서희

◇ 민생·산업·미래·안전 등 4대 분야 예산 중점 투자

정부는 내년 예산을 중점적으로 투입할 가장 첫 과제로 ‘민생 안정’을 꼽았다. 산업 육성이 첫머리로 제시됐던 올해 예산 편성 지침과 차이가 있다. 이를 위해 영세 소상공인과 전통시장 등 취약 부문 소비를 진작하고, 소상공인 경영 안정을 도울 방침이다. 청년·고령층 일자리를 창출하고, 공공주택 공급, SOC(사회간접자본) 조기 보강으로 서민 주거를 안정시킬 예정이다.

산업 경쟁력 강화에도 힘쓴다. AI 분야 인재 양성·유치와 함께 관련 인프라를 확충하는 데 집중하고, 바이오·반도체 등 첨단 산업, 조선·방산·철강 등 주력 산업도 적극적으로 지원한단 방침이다. AI·바이오·양자 등 ‘게임 체인저’ 기초·원천기술 연구개발(R&D) 투자도 강화한다. 무엇보다 통상 불확실성 확대에 대응해 수출 애로 해소, 글로벌 사우스 등 신(新)시장 개척, 공급망 안정화 등에도 예산을 투입한다.

미래의 인구·지역소멸·기후위기 등에도 대응한다. 저출생 대응을 위해 일 가정 양립, 돌봄, 주거 지원을 강화하는 한편, 초고령사회 진입에 따라 고령자의 고용·소득·돌봄에도 신경 쓴다. 지역 거점을 중심으로 산업·교육·주거 등 문제를 개선하고, 농어업 스마트화도 지원한다. 또 원전·수소 등 무탄소 에너지 확대, 촘촘한 영유아 돌봄망 구축에 나선다.

국민 안전과 외교·안보에도 중점 투자한다. 마약·디지털성범죄·보이스피싱 등 민생 침해 범죄에 대한 예방·수사를 강화하고, 지역·필수 의료 서비스 기반 조성, 재난 대비 인프라 확충에 나선다. 첨단 전력 증강, 방위 산업 수출 지원, 군 복무 여건 개선을 비롯해 우리 기업·청년 해외 진출과 연계한 전략적 공적개발원조(ODA)에도 집중한다.

정부는 이들 중점 예산을 지원하기 위해 각종 기금도 적극적으로 끌어 쓸 방침이다. 기재부는 ‘2026년 기금운용계획안 지침’에서 “연기금투자풀을 통해 수익성을 제고하는 등 기금 여유자금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여유자금이 있는 기금을 적극 활용해 국가 재정의 통합적 운용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