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조원의 누적 부채를 안고 있는 한국전력이 올해도 자산 매각에 나섰다. 앞서 한전과 그룹사는 자산 매각을 포함해 사업 시기 조정, 비용 절감 등으로 20조원의 재무 개선 계획을 세웠지만, 부채는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재무 구조 개선을 하려면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한전은 오는 21일 올해 2분기 전기요금 인상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연료비조정단가’를 공개할 예정이다.

20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한전이 2022년부터 현재까지 재정건전화 계획에 따라 매각한 자산과 출자지분은 8448억원이다. 재정건전화 계획상 자산·출자지분 매각 목표 금액(1조5742억원)의 53%가량으로, 목표까지 7294억원만큼 남은 셈이다.

전남 나주시 빛가람동에 있는 한전 본사 사옥의 모습. /연합

한전은 올해도 자산 매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전은 지난 1월 경기북부본부 구사옥 별관 매각 공고를 올렸다. 하지만 입찰에 나선 사람이 없어 매각이 무산됐다. 당초 이 건물은 한전이 2023년 매각 목표로 삼았던 자산이지만, 현재까지 매각하지 못했다. 지난해 하반기 최저입찰가가 93억원에서 89억원으로 하향 조정했지만, 유찰이 지속돼 유찰횟수만 11회에 달한다.

한전은 지난 10일 1173.6㎡규모의 동부지사 사옥부지도 237억672만원에 매물로 내놨다. 2023년 세 차례, 2024년 네 차례 유찰된 부지다. 한전이 매각에 어려움을 겪는 사이 입찰가는 229억원에서 237억원으로 오히려 올랐다. 한전은 2026년까지 ▲경남본부사택 ▲김포지사 사옥 ▲목포변전소 등도 매각할 계획이다.

문제는 올해도 한전의 자산 매각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상업용 부동산 경기 침체가 나타나고 있는 데다, 구도심이나 도시 외곽 지역 부동산은 인기가 더욱 하락한 탓이다.

공공기관 특성상 자산 가격을 크게 낮추기가 어렵다는 점도 장애물이다. 민간 부동산은 공매에서 유찰되면 가격을 낮춰야 하지만, 공공기관은 매도자가 가격을 정하는 구조라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는 경향이 있다. 정부와 한전 모두 헐값 논란을 빚지 않기 위해 가격을 내리지 않는 것이다.

고준석 연세대학교 상남경영원 주임교수는 “올해 아파트 가격은 오를 것으로 보이지만,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오르기 어렵다고 본다”며 “특히 공공기관의 부동산은 지리적 요건이나 용적률 제한 문제로, 매각이 더욱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 한전, 4년 만에 흑자전환했지만 부채는 늘어나

한전이 자산 매각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부채를 줄이기 위해서다. 한전은 막대한 부채를 줄이기 위해 2022년 ‘재정건전화 종합계획’을 내놨고, 2023년 5월에는 ‘2차 재정건전화 계획(자구책)’을, 2023년 11월에는 ‘특단의 자구책’을 발표했다. 2026년까지 20조원 넘는 돈을 아끼겠다는 내용이 골자로, 알짜 부동산인 서울 여의도 남서울본부와 1년에 1000억원 넘는 배당을 하는 자회사 KDN의 지분도 매각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한전은 지난해 재정건전화 목표를 2조원가량 확대·수정했다.

자산 매각이 지지부진한 사이 재무구조는 오히려 악화했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가스 가격이 급등하는데, 요금 인상이 더뎠기 때문이다. 한전의 부채는 2020년 132조원에서 지난해 205조원으로 커진 상황이다. 한전 안팎에서는 직원을 줄이고 부동산을 매각한다 해도 부채를 줄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사채발행한도 확대 규정의 일몰 기한이 2년밖에 남지 않은 것도 부담이다. 한전은 2022년 말 사채발행한도 기준을 기존 2배에서 5배로, 유사시 6배로 확대할 수 있도록 바꿨다. 한전이 지난해 4년 만에 흑자 전환을 기록하긴 했지만, 여전히 사채발행한도 기준을 맞추기엔 역부족이다. 증권업계에서는 한전이 일몰 기간 연장을 비롯한 우회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 “한전 요금 인상 필요해”… 정부, 조만간 2분기 전기 요금 인상 여부 발표

이 때문에 한전의 요금 인상 필요성도 계속해서 불거지고 있다. 한전은 지난해 10월 산업용 전기요금을 인상했으나, 주택용 및 일반용 전기요금은 동결한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애널리스트는 “자산건전성 계획은 한전이 가정한 유가와 환율에 따른 것으로, 해당 시나리오대로 흘러갈 것이란 보장을 할 수 없다”며 “한전이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요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했다.

더구나 늘어나는 투자 수요를 감안하면 요금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학과 교수는 “한전이 송전망 구축에 향후 15년간 60조원을 투자해야 하는데다, 재생에너지 확대로 부채가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라며 “2050년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하려면 전기요금 인상은 필연적”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한전도 요금 인상이 필수적이라는 데에는 공감하고 있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앞선 1월 “지난 하반기 민생이 어려워 산업용 요금만 올리는 고육지책을 썼다”며 “상황이 안정되면 전기·가스 요금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철 한전 사장도 신년사에서 “원가를 반영해 전기요금 정상화를 이뤄내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다만 정부가 당장 전기 요금을 올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올해 국제 유가가 내리면서 전력도매가격(SMP)이 안정화하고 있는 가운데, 민생도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오는 21일 오전 한전이 오는 2분기 적용할 ‘연료비조정단가’를 공개한다. 연료비조정단가가 ‘㎾h(킬로와트시)당+5원’으로 유지되고 다른 요금(기본요금·전력량요금·기후환경요금)도 인상되지 않으면 2분기 전기요금은 동결하게 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현재 한전으로부터 실적 연료비 및 기준 연료비 자료를 받아 검토하고 있다”며 “조만간 2분기 최종 연료비 조정 단가를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