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에 대응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금융권이 45조가 넘는 손실을 볼 수 있다는 한국은행의 분석이 나왔다. 또한 금융 건전성 지표인 국제결제은행(BIS) 자본비율이 규제비율(11.5%)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에 따라 한은은 기후 리스크에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리스크 관리 지침을 개선하고 녹색투자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은은 18일 서울 소공동 한은 본관에서 금융감독원과 공동으로 ‘기후금융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은행·보험사에 대한 하향식(Top-down) 기후변화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를 발표했다. 테스트는 한은 지속가능성장실 주도로 추진됐으며, 14개 금융기관(7개 은행, 4개 생명보험사, 3개 손해보험사)이 참여했다.

스트레스 테스트란 예외적이긴 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있는 사건에 대해 금융시스템의 잠재적 취약성을 평가하는 테스트를 말한다. 한은은 이번 테스트를 통해 기후 리스크가 금융안정에 미치는 영향을 조기에 파악하고 국내 금융기관의 리스크 관리 역량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 기후대응 않으면 식료품·음식점·건설업 손실 확대

한은은 한국을 비롯해 전세계가 2050년까지 기온 상승 폭을 ▲1.5℃로 낮춰 탄소중립을 달성하거나(1.5℃ 대응) ▲2℃ 이내로 조절해 탄소배출을 현재 대비 80% 감축하는 경우(2.0℃ 대응) ▲2030년까지 대응하지 않다가 급격히 탄소중립 정책을 추진해 2050년까지 2℃로 낮추는 경우(지연 대응) ▲기후정책을 도입하지 않는 경우(무대응) 등 4가지 시나리오를 토대로 스트레스 테스트를 진행했다.

기후-금융 리스크에 따른 예상손실 규모. /한국은행 제공

분석 결과 금융권(은행 7개사, 보험 7개사 기준) 예상 손실 규모는 1.5℃ 및 2℃ 대응 시 27조원 내외로 예상됐다. 그러나 지연 대응 시 급격한 탄소 감축에 따른 리스크 확대로 금융권 예상손실 규모가 약 40조원으로 불어났다. 무대응 시 고온·강수 피해가 증가해 손실 규모가 45조7000억원으로 확대됐다.

리스크 유형별로 보면 은행은 신용손실(차주의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실)이 전체 예상 손실의 95% 이상을 차지하는 반면, 보험사는 시장손실(시장가치 변화로 주식·채권의 가치가 변하면서 나타나는 손실)이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손보사의 경우 보험손실(보험금 지급 증가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이 전체 손실의 6% 내외를 차지했다.

업종별로도 손실 규모가 달랐다. 기후대응 정책을 시행하면 철강과 금속가공제품, 시멘트 등 업종의 손실이 컸고, 대응하지 않으면 식료품과 음식점, 건설, 부동산 등의 손실이 확대됐다. 보험사의 경우 투자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인 전자부품 제조업 부문의 손실이 대부분의 경로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 BIS 비율, 규제수준 밑돌아… “기후대응 조기에 추진해야”

한은은 이번 테스트에서 기후변화 리스크가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과 지급여력비율 등 금융권의 건전성 지표에 미치는 영향도 점검했다. BIS 비율은 은행의 위험가중자산 대비 자기자본의 비율을, 지급여력비율은 보험사의 지급여력금액(자산-부채+내부유보자산)을 지급여력기준금액(책임준비금 4%+위험보험료의 3%)으로 나눈 지표다. 두 수치가 높을수록 금융기관의 건전성이 좋다는 뜻이다.

국내은행의 BIS 총자본비율 변화. /한국은행 제공

분석 결과 시나리오에 따라 일부 은행의 BIS 비율이 규제비율(11.5%)을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1.5℃ 대응 시 2050년에는 BIS비율이 8.0%까지 하락했지만, 이후 반등하면서 2100년에 11.5%로 회복했다. 2.0℃ 대응 시 하락 폭은 제한적(2050년 13.1%, 2100년 12.3%)이었고, 지연대응 시에는 2050년 6.5%까지 하락하고 2100년에도 10.6% 수준을 유지했다. 무대응 시 고온·강수 피해 증가로 2100년까지 BIS 비율이 10.0%로 하락했다.

반면 보험사의 지급여력비율은 모든 시나리오에서 규제비율(100%)을 상회했다. 1.5℃ 대응 시 2050년 생보사와 손보사의 지급여력비율이 각각 197.7%, 186.7%까지 하락했지만, 이후 점차 회복되면서 2100년에는 각각 206.4%, 198.7%로 반등했다. 무대응 시에는 2050년까지 큰 변화가 없으나 시장손실과 보험손실이 확대되면서 2100년 각각 196.8%, 181.4%로 하락했다.

한은은 금융기관이 기후 리스크에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금융사 대상 ‘리스크 관리 지침’을 개선해 ‘기후 시나리오 분석 및 스트레스 테스트’를 의무화하고 ▲예상외 손실에 대한 대비를 강화하는 한편 ▲녹색·적응 투자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녹색투자란 환경 개선에 기여하는 투자를, 적응투자는 기후위기에 대한 취약성을 줄이는 투자를 말한다.

한은은 “미국의 기후변화협약 탈퇴를 계기로 글로벌 탄소감축 노력이 위축될 경우 자연재해가 더 빈번하고 강력하게 발생하면서 금융기관의 자본비율 하방 압력이 증대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기후대응 정책을 조기에 추진하는 것이 개별기관의 경영 건전성 제고 및 금융시장 안정에 유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 금감원, 금융기관 36곳 대상 테스트… “무대응시 25兆 손실”

금융감독원도 이날 컨퍼런스에서 기업여신 규모 1조원 이상 금융사 36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를 공개했다. 금감원은 2100년까지 지구 평균온도의 상승이 1.5℃ 이내로 제한되는 경우와 감축을 하지 않는 무대응 시나리오로 나눠 분석을 진행했다.

기후 시나리오 시점별 신용손실 증가 추이. /금융감독원 제공

분석 결과 탄소중립이 달성될 경우 자연재해 등으로 인한 금융권 손실이 19조5000억원으로 추정됐으나, 무대응 시에는 손실 규모가 25조1000억원으로 불어났다. 은행권 총자본비율은 탄소중립시 3.1%포인트(p), 무대응 시 3.8%p 하락했으며, 보험권 K-ICS 비율은 탄소중립시 1.8%p, 무대응 시 2.9%p까지 하락했다.

특히 지방 소재 금융사의 손실률(2.0%·기업여신 잔액 대비 손실 비율)이 시중은행(1.3%)을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탄소 배출 제조업(철강 등)과 자연재해 민감업종(도소매 등)이 밀집한 지방일수록 기후리스크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탄소저감 효과가 입증됐으나 현재 녹색기준을 일부 총족하는 투자도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전환금융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제조업 집중 등으로 기후리스크 노출이 큰 지방소재 금융사 및 지자체 등과 연계해 저탄소 전환 금융지원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