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우리나라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기후변화와 저출생·고령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택소노미 체계 재정비와 탄소배출권 가격 현실화, 지방거점도시 육성, 지역별 비례선발제 등을 제안했다.

13일 이창용 총재는 연세대학교 백주념기념관에서 열린 ‘글로벌지속가능발전포럼(GEEF) 2025′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 포럼은 연세대학교와 글로벌사회공헌원, 반기문세계시민센터와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반기문재단이 매년 공동으로 주최하는 국제포럼으로, 올해 7회차를 맞았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 후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그는 최근 잦아진 집중호우를 언급하며 기후변화가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 총재는 “재작년에는 강수량이 13일 동안 50mm를 넘어서면서 지하차도의 제방이 붕괴되고, 이로 인해 14명의 소중한 생명이 희생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면서 “태국이나 남아메리카에서 발생하는 ‘스콜(squall)’ 현상이 한국에까지 찾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했다.

이 총재는 또 “기후변화는 우리의 먹거리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과거에는 남해안과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사과 재배가 가능했지만, 기후변화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면서 2030년대에는 강원도 산간 지역을 제외하면 국내에서 고품질 사과를 재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녹색분류체계(그린 택소노미)의 재정비와 탄소배출권 가격 현실화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총재는 “(그린 택소노미에서)’친환경’의 정의를 더욱 명확하게 제시해 탄소감축을 위한 분명한 방향성을 제공해야 한다”면서 “또 탄소배출권 가격을 개선해 현재 90%에 달하는 무상 할당 비율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배출권 총량도 점진적으로 줄여야 한다”고 했다.

저출산·고령화에 대해서는 경제성장률을 낮출 수 있는 심각한 문제라고 평가했다. 이 총재는 우리나라 합계출산율(가임이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현행 0.75를 유지할 경우와 1.4로 오를 경우를 대비해 설명하면서 “두 경우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매년 0.4%포인트(p) 차이를 보일 것”이라고 했다.

이 총재는 또 “출산율이 낮아질수록 국가재정은 더욱 악화되고 고령층 비중이 상대적으로 증가하면서 연금·의료·돌봄 등 재정지출에 대한 청년세대의 부양부담이 급증한다”면서 “출산율이 0.75 수준을 유지할 경우 50년 후 국가채무 비율이 182%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출산율이 1.4 수준이라면 국가채무 비율은 163%로 상승폭이 다소 완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저출산·고령화의 원인이 경쟁압력에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부족한 양질의 일자리를 두고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고, 설령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직업 안정성에 대한 확신이 약해졌다”면서 “여기에 더해, 급등한 집값은 청년들에게 내 집 마련의 꿈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으며, 이는 곧 결혼과 출산에 대한 부담으로 직결되고 있다”고 했다.

이 총재는 또 “청년들의 경쟁과 불안을 더욱 부추기는 핵심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수도권 집중’ 현상”이라면서 “한국의 인구, GDP, 일자리에서 수도권 집중도가 50%를 넘어서는 반면, 미국과 독일은 5% 내외, 영국과 이탈리아는 10~20%, 프랑스는 20~30%, 일본조차도 30% 내외에 그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 총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방 거점도시를 2~6개 육성하고, 대학 입시 과정에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에 맞춰 학생을 뽑는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이 총재는 이를 통해 실질적인 국토 균형발전과 지역 간 갈등 완화가 실현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끝으로 이 총재는 “기후변화와 저출생·고령화 문제는, 우리나라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라면서 “한국은행도 미래 세대에게 더 나은 삶을 물려주기 위한 노력에 앞장설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