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가 임박한 가운데, 한국은행이 국제 신용평가사 및 글로벌 투자은행(IB)들과 연이어 면담을 진행하며 국가 신인도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장기화될 경우 국가신용등급 하락 가능성이 커지는 만큼, 한국은행이 선제 대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 한은, 12일 S&P 연례협의… 조사국·금안국·통정국 참여
1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연례협의단은 지난 12일 서울 중구 소공동 한은 본사를 방문해 면담을 진행했다. 이번 면담은 한국 국가신용등급 평가를 위한 연례협의의 일환이다. S&P는 10일부터 14일까지 관련 논의를 진행한 뒤 약 2~3개월간 검토를 거쳐 오는 5월 중 최종 신용등급을 발표할 예정이다.
한국은행은 이번 연례협의에 앞서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통상적으로 과장·팀장급 실무진이 참석하는 자리지만, 이번에는 조사국, 금융안정국, 통화정책국 등 핵심 부서의 총괄팀장을 배치했다. S&P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등 정국불안과 관련해 한국 경제 불확실성 확대 가능성을 우려할 경우 적극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한은 관계자는 “평소 S&P 연례협의에는 실무진 위주로 참석했지만, 이번에는 주요 부서 총괄팀장들이 직접 면담에 나섰다”면서 “여러가지 정치·경제 이슈가 있어 이전보다 신경을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통화위원회도 글로벌 IB 및 해외 기관 투자자들과 면담을 진행하며 한국 경제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신성환 금통위원은 이번 주에만 씨티은행(10일), 골드만삭스(12일)를 잇따라 면담했다. 면담에는 수석이코노미스트와 포트폴리오매니저 등 경제·투자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신성환 위원은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IB들은)한국 상황에 대해 궁금한 것을 내게 물어보고, 나는 외국 투자자들이 우려하는 바가 무엇인지 물었다”면서 “(투자자들은)한국의 여러가지 경제정책의 불확실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다”고 했다.
신 위원은 씨티은행과 골드만삭스 외에 지난주에도 한 곳의 IB와 면담을 더 진행했다. 신 위원이 한 달에 3회 이상 면담을 진행한 것은 작년 3월 이후 처음이다. 한은 관계자는 “올해는 연초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한국 상황을 파악하려는 IB의 면담 신청이 몰렸다”고 했다.
◇ 피치·무디스 “정치적 긴장 고조, 韓 신용에 부정적 영향” 경고
한은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정국 불안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국가신용등급 하락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3대 신용평가사(피치, S&P, 무디스) 중 올해 처음으로 한국의 신용등급을 발표한 피치는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AA-, 안정적’으로 유지했지만, 정치적 불확실성이 잠재적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피치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정부부채가 증가하거나, 심각한 경제 악화를 초래할 지정학적 리스크가 발생할 경우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피치는 “향후 정치적 상황이 경제 정책 추진력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평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디스는 비상계엄 직후인 작년 12월 6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정치적 여파가 장기화하면 경제 성장 둔화, 어려운 지정학적 환경, 인구 고령화로 인한 구조적 제약 등 수많은 과제를 해결하는 정부의 능력에 부담을 줄 수 있다”면서 “정치적 긴장이 고조돼 경제활동에 지장을 초래하는 상황이 장기화화면 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국제 신평사들이 잇따라 부정적인 평가를 내놓으면서 정부도 대응에 나서고 있다. 올해 1월 초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범정부 국가신용대책위원회’가 출범했으며, 이를 통해 글로벌 신용평가사들과의 협력을 강화했다. 또 최종구 국제대사를 싱가포르와 홍콩 등지로 파견해 한국 경제 설명회를 개최하고, 국제 신용평가사 관계자들과 직접 면담을 진행했다.
또 다른 한은 관계자는 “지금은 국내외 경제 여건이 모두 녹록지 않아, 수출 중심 국가인 우리나라에 특히 부담이 큰 상황”이라면서 “정부가 신용등급 관리에 집중하는 만큼 한은도 이에 맞춰 대응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