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3월 13일 오후 3시 20분 조선비즈 RM리포트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김상현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를 경제분석과장으로 임용했습니다. 공정위가 현직 대학교수를 과장급 직위에 영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최근 공정위 사건에서 경제분석이 핵심 증거로 활용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김 과장의 합류가 공정위 경제분석 기능을 한층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공정위 경제분석과는 시장 내 경쟁 제한 여부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기업 간 합병이 경쟁을 저해하는지를 분석하는 기업결합 심사는 물론, 담합과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사건에서도 경제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과거 공정위의 심사는 법리적 해석과 문서 증거 중심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경제적 분석이 주요한 증거로 자리 잡으면서 사건 심리 과정에서도 경제 논쟁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김 과장은 대학에서 테뉴어(tenure)를 받은 직후 공정위에 합류했습니다. 테뉴어는 대학에서 종신 교수직을 보장받는 제도로, 이를 받으면 연구 독립성과 직업적 안정성이 커집니다.
김 과장은 2013년 미국 미시간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후 영국 이스트앵글리아대와 연세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산업조직론과 행동경제학을 연구해왔습니다.
공정거래 분야에서도 꾸준한 연구와 자문을 수행해 왔습니다. ‘양면시장(플랫폼)에서 광고수익과 가격 책정 전략’, ‘기업 간 끼워팔기의 경쟁 효과 분석’, ‘중개플랫폼의 광고 결합판매가 시장 경쟁에 미치는 영향’ 등이 주요 연구 주제로 꼽힙니다. 특히, 플랫폼 시장에서 기업들의 가격 전략과 경쟁구조를 분석한 연구는 최근 공정위가 다루는 사건들과도 밀접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이 같은 연구 성과는 공정위 실무에도 반영된 바 있습니다. 김 과장은 과거 공정위의 ‘클라우드 산업 시장조사’, ‘온라인 플랫폼의 광고 결합판매 경제효과 분석’ 등의 프로젝트에서 경제분석 자문을 맡으며 실질적인 정책 수립 과정에도 참여했습니다.
공정위 입장에서 테뉴어를 받은 경제학자를 과장급으로 영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교수들의 경력이 쌓일수록 직급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고, 세종에서 근무해야 하는 현실적 제약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김 과장이 공정위에 합류한 것은 연구자로서의 경험을 정책 실무에 접목할 기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김 과장은 “학교에만 있으면 현실 감각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느꼈다”며 “실제로 연구하고 강의하는 분야인데,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연구하는 산업조직론은 공정위 사건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산업조직론은 기업 간 경쟁, 시장 구조, 정책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학문으로, 기업결합 심사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사건에서 핵심적인 분석 도구로 활용됩니다.
기업결합 사건에서는 두 기업이 합쳐질 경우 시장 내 경쟁이 얼마나 제한될지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경제모형과 계량 분석이 필수적입니다.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사건에서도 사업자가 경쟁을 제한하는 방식이 소비자 후생에 미치는 영향을 입증하는 데 경제학적 접근이 요구됩니다.
사건 당사자인 기업들도 자체적으로 경제모형을 활용해 반박하는 사례가 늘면서, 공정위 역시 이에 대응할 분석 역량을 확보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최근 공정위가 다룬 이동통신 3사의 판매장려금 담합 의혹을 비롯해 올리브영의 ‘시장지배력 남용’, 쿠팡의 ‘알고리즘 조작’, 4대 시중은행의 ‘LTV 정보교환 담합’ 사건에서도 경제분석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공정위가 외부에서 경제분석과장을 영입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첫 번째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출신 조성익 박사, 두 번째는 같은 KDI 출신 이화령 박사였습니다. 공정위는 2020년부터 인사혁신처의 ‘정부 민간인재 영입지원(정부 헤드헌팅)’을 활용해 경제분석과장을 민간 개방형 직위로 전환했습니다. 이는 경제분석이 필요한 사건이 많아지면서, 기존 공정위 내부 인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다른 정부 부처에서도 현직 대학교수가 국·과장급 직위에 임용된 사례가 있었습니다. 질병관리청에서는 현직 교수를 과장급 직위에 임용한 전례가 있고, 국토교통부와 문화체육관광부에서도 학계 출신 인사를 국장급으로 영입했습니다.
다만, 공정위가 현직 대학교수를 직접 영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는 경제 분석의 역할이 점점 확대되는 상황에서, 보다 정밀한 경쟁제한성 평가와 경제적 입증 능력을 강화하려는 공정위의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됩니다. 특히, 법원에서의 패소를 줄이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공정위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공정위 관계자는 “김 과장의 합류로 공정위의 경제분석 기능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면서 “김 과장이 학계에서 쌓아온 연구 경험을 실무에서 어떻게 녹여낼지, 그리고 공정위 경제분석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을지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