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첫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했던 한국은행이 이번에는 금리를 연 2.75%로 내리면서 인하를 재개했다. 경기 하방 압력이 커지고 성장률 전망치가 1.5%로 하향 조정된 것이 주요 배경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이 구체화되면서 원·달러 환율 급등세가 진정된 점도 고려한 결정이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오는 4월 금통위에서 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국 불안이 지속되는 가운데 대외적으로도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이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이창용 한은 총재가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한 만큼, 5월이나 7월 중 추가 인하가 단행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하… “경기 리스크 확대”
한국은행 금통위는 25일 열린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2.75%로 인하했다. 금리 인하 결정은 만장일치였다. 한은은 2023년 1월부터 작년 9월까지 금리를 연 3.5%로 묶어두며 물가 안정에 집중했다. 이후 작년 10월 3.25%로, 11월에는 3.0%로 금리를 낮추며 통화정책 기조를 전환했다. 지난달 회의에서는 금리를 동결하고 숨 고르기에 나섰지만, 이번에 다시 금리 인하를 재개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금리 인하가 예상됐다는 분위기다. 금융투자협회가 지난 12~17일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채권 운용 종사자 100명 중 55%는 한은이 2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예상했다. 나머지 45%만 동결을 전망했다. 조선비즈가 최근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증권사 채권·거시전문가 11명 전원이 인하를 예측했다.
주된 배경은 경기 둔화 우려다. 한은은 이날 발표한 수정경제전망에서 올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1.5%로 제시했다. 작년 11월 전망치(1.9%)보다 0.4%포인트(p) 낮다. 작년 말 1480원대까지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이 1430원대로 내려오면서 금융시장 불안이 다소 완화된 점도 금리 인하 결정에 힘을 보탰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금통위 직후 기자회견에서 “외환시장의 경계감이 여전하지만 물가상승률 안정세와 가계부채 둔화 흐름이 지속되는 가운데 경기가 크게 약화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해 경기 하방압력을 완화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추가 인하 가능성도 열어뒀다. 그는 “현재 금리 인하를 멈춰야 된다고 생각하는 견해는 많지 않다”면서 “지금 시장에서는 2월을 포함해서 올해 2~3회 인하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저희가 가정하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밝혔다. 기준금리를 0.25%p씩 인하한다고 하면 올해 연말 기준금리가 2.25~2.5% 수준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인하 시점은 2~3분기로 미뤄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6명을 대상으로 한 기준금리 전망 조사에서 3개월 뒤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밝힌 위원은 2명뿐이었다. 나머지 4명은 기준금리가 연 2.75%로 유지될 것으로 봤다. 지난달 금통위에서는 금통위원 전원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뒀었다.
◇”한은, ‘인하 사이클 지속’ 신호… 최종금리 연 2.25% 전망”
시장에서는 한은의 이번 결정이 ‘비둘기파적(dovish·통화 완화 선호)’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번에 한은이 연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면서 추가 금리 인하가 불가피한 상황임을 재확인해 줬다는 분석이다.
백윤민 교보증권 연구원은 “한은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5%로 제시한 것도 이번 결정을 포함한 연내 2~3회 금리 인하를 감안한 것”이라며 “물가가 안정되는 상황에서 성장 리스크가 커진 만큼, 한은에서는 통화정책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한은이 올해 성장 전망 관련, 순수출(수출-수입) 기여도(순수출이 경제성장에 기여한 정도)가 0%로 본다고 언급한 것 등을 보면 좋지 않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금리를 인하한 것”이라며 “금리 인하 속도조절 자체는 하려는 것 같지만, 인하 중단 시그널은 원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한은이 4월 금통위에서는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과 트럼프 행정부 정책 불확실성이 5월 이후에야 해소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연내 0.25%p씩 2회 추가 금리 인하가 단행돼, 올해 최종 금리가 2.25%가 될 것이라는 데에도 입을 모았다. 다만 추가 금리 인하 시점이 5월이 될지, 7월이 될지에 대해선 의견이 갈렸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동결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도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불확실성이 축소된 5월쯤 통화정책 관련 신호를 줄 것”이라며 “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감이 더 높아지면 한은도 5월에는 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조용구 연구원은 “금통위원들의 향후 3개월 이내 금리 전망을 나타내는 포워드 가이던스가 4대 2(동결 4, 인하 2)로 ‘동결’에 더 우세했다”며 “또 상반기 추가 금리 인하 여부에 대한 질문에 이 총재가 ‘상황을 보겠다’고 한 만큼, 속도조절을 위해 한 분기를 건너뛰고 7월에 금리 인하를 단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한편 금리 인하 기대감이 커지면서 국고채 금리는 일제히 하락했다. 서울 채권시장에서 이날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1.4bp(1bp=0.01%포인트) 내린 연 2.596%를 기록했다. 5년물과 10년물 금리도 각각 1.9bp, 2.8bp 내린 연 2.717%, 연 2.825%로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 주간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는 전일보다 3.0원 오른 1430.4원으로 거래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