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앞바다에서 약 40km 떨어진 대왕고래 구조에서 탐사 시추에 나선 웨스트카펠라호의 모습. /한국석유공사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발표하며 국민적 관심을 모았던 동해 심해가스전 개발 사업 첫 시추가 실패로 끝났다. ‘삼성전자 시가 총액의 20배에 달하는 가치’ 등 장밋빛 전망이 제시됐지만, 시추 결과 탄화수소의 가스포화도가 낮아 사업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프로젝트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매장량 최대 140억 배럴’ 등 긍정적인 요소만 부풀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정부는 사과했다.

정부는 대왕고래 유망구조는 사업성이 없었지만, 남아있는 6개 후보군에 대해선 추가적인 시추를 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음 달부터 해외 투자 유치를 본격화해 광구별 시추를 진행할 방침이다.

다만 개발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평가받던 대왕고래 유망구조에서 발견된 가스량이 사업성 기준치를 한참 밑돈 것으로 나타나면서, 투자 유치 여부를 확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계엄 이후 탄핵 정국이 이어지며 윤석열정부의 국정 동력이 상실됐다는 점도 향후 프로젝트 지속을 장담하기 어려운 요인으로 꼽힌다.

◇ 기대감 품고 3000m 시추했지만… 속 빈 ‘대왕고래’

7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4일 시추가 끝난 대왕고래 유망구조의 매장 가스량은 사업성이 없는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산업부 고위관계자는 “대왕고래 유망구조에서 가스 징후가 일부 있었음을 확인했지만,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면서 “대왕고래 (구조) 전체 가스포화도가 높지 않아서 대왕고래 추가 탐사시추 필요성은 크지 않다”고 밝혔다.

석유나 가스가 매장돼 있을만한 구조는 확인했지만, 안이 비어있었다는 게 산업부의 설명이다. 유기물이 있는 근원암층도 발견됐다. 이럴 경우 해당 구조에서 다른 구조로 석유나 가스가 이동했거나, 아니면 덮개암 쪽에 균열이 있어서 가스 등이 샜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지층의 구조와 에너지원의 이동 여부는 향후 5~6개월 간 진행될 정밀 분석을 통해 확인될 전망이다.

경북 포항 영일만 쪽 먼바다에서 진행된 대왕고래 유망구조 시추 작업은 지난해 12월 20일 시작돼 지난 4일 종료됐다. 드릴십 용선 등 시추 작업에 들어간 돈만 약 1000억원에 달한다.

해수면으로부터 3000m 이하 지점까지 시추를 했지만 있길 고대하던 석유·가스층은 발견되지 않았다.

정부는 아직 석유나 가스가 있을만한 유망구조 후보군이 남아 있어 추가적인 시추 작업은 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2차 시추부터는 해외 오일 메이저 기업의 투자를 받아 진행할 방침이다.

다만 개발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평가받던 대왕고래 유망구조에서 발견된 가스량이 사업성 기준치를 한참 밑돈 것으로 나타나면서, 해외 기업이 실제로 투자에 참여할지는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만약 오일 메이저들이 투자 의향을 포기할 경우,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을 계속 추진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워진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6월 3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첫 국정브리핑에서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탐사 결과가 나왔다"고 발표하고 있다. /뉴스1

◇ 동해 가스전 ‘허상’이었나… 野 “정치적 쇼” 맹비난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표를 1차 시추에서 받게 되면서 정부가 제시한 장밋빛 전망이 허상이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6월 3일 국정 브리핑을 열고 “경북 포항 앞바다 영일만에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매장 추정량을 현재 가치로 환산할 경우 “삼성전자 시총의 5배에 이른다”라고도 했다.

심해 유전 개발로 국부가 급격히 늘어난 가이아나 등 해외 산유국의 경제 발전 사례가 회자되기도 했다.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샴페인을 일찍 터트린 격이 됐다.

결국 정부는 지난해 6월 긍정적인 부분만 부각시켰다는 지적에 대해 “첫 발표는 생각하지 못한 정무적 영향이 개입되는 과정에서 (장관의) 비유가 많이 부각됐다”며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런 결과가 나온 데 대해 죄송하다”고 산업부 고위관계자의 입을 통해 사과했다.

일각에선 산업부 고위관계자가 언급한 ‘정무적 영향이 개입되는 과정’이라는 표현을 두고, 4월 총선 패배 이후 국정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정무적 판단’으로 동해 심해 가스전 프로젝트를 발표했다는 걸 인정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논란이 커지자 산업부는 “(안 장관이 6월 브리핑에서 매장 추정량의 가치를) 알기 쉽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삼성전자 시총을 예시로 활용했으나, 의도와 달리 정치권에서 해당 발언이 정무적으로 활용되면서 논란이 된 것에 유감을 표명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야당에선 이번 1차 시추 결과에 대해 ‘오만과 독선이 부른 결말’이라고 평가했다. 더불어민주당의 박경미 대변인은 6일 브리핑에서 “정부가 국가의 미래가 걸린 ‘게임체인저’라며 대대적으로 추진한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호수 위 달그림자였다”면서 “허술한 검증, 과대 포장된 전망, 그리고 정치적 이벤트로 변질된 석유 개발 사업의 참담한 현실은 온전히 윤석열의 오만과 독선이 부른 결말”이라고 비판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의 추가 시추 계획에 대해선 “국민의 삶을 볼모로 정치적 쇼를 벌이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고 했다.

반면 여당에서는 추가적인 시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성공 가능성의 희박한 자원개발 사업은 첫 술에 배부를 수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7일 SBS라디오에서 “지금 한 번 시추했는데 안 됐다는 것 아닌가”라며 “앞으로 시추를 더 하게 될지 (모르지만), 저는 해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 위원장은 “한 번 시추해봤는데 바로 (석유·가스가) 나온다면 산유국이 안 되는 나라가 어디 있겠나”라며 “자원과 관련된 부분은 좀 긴 숨을 보고 해야지, 당장 한 번 했는데 안 된다고 해서 바로 비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한 관계자는 “산업부 장관이 차분히 발표하고 추진했으면 이런 논란이 덜했을 것”이라면서 “대통령이 나서서 과잉 홍보한 것이 프로젝트 자체의 신뢰도를 더 떨어뜨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