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 인해 발생할 무역 전쟁과 금융 혼란에 대비해야 할 때다.”

세계적 경제 석학 배리 아이켄그린(Barry Eichengreen)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 버클리) 교수(경제학)는 최근 조선비즈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관세 정책은 다른 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자체에도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아이켄그린 교수는 세계적인 통화·금융 시스템 전문가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자문위원, 전미경제연구소 연구위원,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그의 연구는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의 통화정책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이켄그린 교수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과 중국에 대한 기술 견제 등으로 한국 경제가 크게 흔들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방위비 분담금 인상이나 반(反)중 정책 동참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2025 세계경제포럼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에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하고, 유럽연합(EU)과의 무역관계가 불공정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아이켄그린 교수는 “한국은 트럼프 1기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대미 투자를 강조하며 미국에 좋은 동맹국이 되겠다는 약속을 확인시켜줘야 한다”며 “‘미국과 중국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강요받을 것을 대비해 수출 시장, 생산지 다변화에도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배리 아이켄그린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경제학 교수. /조선DB

―앞으로 미국 경제 정책이 어떻게 변화할까.

“정책 변화는 규제 완화, 감세, 관세의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이뤄질 것이다. 은행 규제 완화는 금융 불안정을 야기할 것이고 기술 규제 완화는 독과점 위험을, 환경 규제 완화는 환경 오염을 초래할 것이다.

또한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는 감세로 재정 적자, 국가 부채 문제가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상상하는 지출 삭감은 그저 풍부한 상상력의 산물이다. (머스크 CEO는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정부 구조개혁과 지출 삭감 등을 추진하기 위해 신설한 조직 ‘정부효율부’의 수장을 맡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관세 정책은 다른 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자체에도 마이너스가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퍼스트 버디(최측근)’로 떠오른 머스크 CEO의 영향력을 어느 정도로 보나.

“알 수 없다. 확실한 점은 선출되지 않은 개인에게 막대한 영향력과 권력을 맡기는 것은 무모하고 비생산적이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적자를 완화하기 위해 달러화 약세를 유도하려 한다. 그가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달러화 수준은 궁극적으로 통화정책에 의해 결정되고, 통화정책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결정한다. 따라서 트럼프가 달러화를 약화시키려면 연준의 독립성을 위협해야 한다.

이런 가능성을 일축하지는 않겠지만, 연준의 독립성에 대한 대통령의 공격에 금융 시장은 부정적으로 반응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를 감안할 것이라 생각한다. 외국인의 미국 국채 매입에 세금을 부과하는 등 달러화 약세를 위한 다른 방안도 있다.

다만 달러 약세가 반드시 미국 무역수지를 개선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달러가 약세를 보인다고 해서 펀더멘털이 바뀌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 정책’이 한국에 미칠 영향은.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은 트럼프 행정부가 유럽과 한국 방위에 과거만큼 기여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기적으로 그는 다른 국가들이 국방비를 더 많이 부담하도록 강요할 것이다.

이로 인해 발생할 무역 전쟁과 금융 혼란에 대비해야 할 때다.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는 한미 동맹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한국은 안보 상황을 고려해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올해 미중 갈등은 어떻게 전개될까.

“우선 트럼프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인상으로 (무역 갈등이) 시작될 것이다. 처음에는 적은 수치로 시작하지만 결국에는 중국산 수입품에 35%의 관세를 추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도 미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고, 희토류 등에 대한 수출 금지에 나설 것이다. 미국 내 틱톡 서비스 중단 여부는 재미있는 ‘사이드 쇼’에 불과하다. 미국의 대 중국 첨단기술 수출 금지 조치 강화, 이에 대한 중국의 보복 등이 이어지면서 양국 간의 긴장은 계속 고조될 것이다.”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한국은 트럼프 1기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에 좋은 동맹국이 되겠다는 약속을 재차 확인시켜줘야 한다. 한국의 대미 투자를 계속 강조하면서 동시에 한국 기업의 수출입 시장이자 조립 기지인 중국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포함한 국가들에 ‘미국과 중국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요구할 경우다. 한국은 이런 최후통첩에 응하지 않기 위해 가능한 모든 외교적 수단을 동원해야 하지만, 이를 강요당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안보상의 이유로 한국은 미국 편을 들 것이고, 그로 인한 경제적 타격은 심각할 것이다. 또한 미국의 관세는 한국 등에 당연히 큰 악재다. 기업들이 수출 시장, 제품, 생산지 다변화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제조업 강국’ 독일의 경제 위기를 ‘한국의 미래’라고 우려하는 시각이 있다. 독일의 사례에서 한국은 어떤 교훈을 새겨야 하나.

“독일은 현재 성장세가 둔화된 중국 시장과 쇠퇴하고 있는 기술인 내연기관, 비싸고 불안정한 러시아 에너지에 의존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합쳐져 ‘독이 든 칵테일’이 됐다.

독일의 사례는 일부 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자동차 산업이 대표적이다. 한국은 수십년 동안 조선 산업에서 중국의 추격을 받아온 만큼, 이미 이 교훈을 얻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이나 미국 등 단일 수출 시장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피하고, 재생 에너지 등에 투자해 비싸고 신뢰할 수 없는 수입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

―올해 세계 경제를 뒤흔들 것으로 예상되는 다른 주요 변수는.

“중국의 성장 둔화다. 중국이 지난해 5% 성장 목표를 달성했다는 최근 발표는 일부 수치 조작이 반영됐다. 실제 성장률은 더 낮았을 것이다. 올해도 중국의 성장세는 더 둔화될 것이다.

또 시리아, 우크라이나, 대만 등을 중심으로 한 지정학적 갈등도 변수다. 이는 금융 시장에 큰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국은 저출산·인구 고령화,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인한 경제 침체 및 국제 신인도 하락 우려 등 문제에 직면했다. 이에 대해 조언한다면.

“저출산이나 고령화 같은 사회 구조적 문제는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정치적 정상성과 안정성을 회복하는 것에 단기적인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한국이 경제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고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비스 부문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나는 이를 한국 경제에 대한 저서 ‘기적에서 성숙으로’를 통해 강조해 왔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국 정부의 경제 대응을 평가한다면.

“지금까지의 경제 정책 대응은 적절했다고 본다. 특히 한국은행의 신속한 대응에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위기를 해결하는 키는 경제 정책이 아니다. 이는 정치적인 문제다. 한국 유권자들의 다수가 하나의 중도 성향 지도자에게 결집하는 것이 관건이지만, 아쉽게도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