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31일 두 번째 ‘내란특검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비상계엄과 관련된 핵심 인물들이 이미 구속기소된 데다 여야 합의가 되지 않았고, 국가 기밀 유출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3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헌법 질서와 국익의 수호, 당면한 위기 대응의 절박함, 국민들의 바람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재의 요청을 드린다”며 내란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번 특검법의 거부권 행사 시한은 2월 2일까지로, 최 권한대행은 설 연휴 기간에도 정부 부처와 국무위원, 시민들의 의견을 경청하며 거부권 여부를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 권한대행은 “이전 특검 법안에 비해 일부 위헌적인 요소가 보완됐지만, 여야 합의 없이 야당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된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라며 “헌법 질서와 국익이라는 큰 틀에 비춰 필요한 것인지 고민했지만, 도입 이유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검 제도는 삼권분립 원칙의 예외적인 제도인 만큼, 수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이 의심되는 경우에 한정해 보충적이고 예외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며 “현재 비상계엄 관련 수사가 진전되고 있고, 현직 대통령을 포함한 군·경의 핵심 인물들이 대부분 구속기소되고 재판 절차도 시작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 권한대행은 또 “이전 특검 법안에 비해 보완되긴 했지만, 여전히 위헌 요소가 있는 데다 ‘국가 기밀 유출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어 헌법 질서와 국익 측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이 우려된다”며 “위치와 장소에 관한 국가 기밀은 한번 유출되면 회복이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는 “추가적 조치로 얻는 실익뿐 아니라 부정적 영향도 균형 있게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며 “정상적인 군사 작전까지 수사 대상이 될 경우, 북한 도발에 대비한 군사 대비 태세가 위축될 수 있고, 군의 사기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 권한대행은 국민들의 하루하루가 어렵다며 정치권에 “민생에 도움을 주는 ‘실행’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통합’과 ‘민생’, ‘국정안정’이었다”며 “국회·정부 국정 협의회를 하루라도 빨리 가동해 민생·경제 법안을 처리해 주길 요청드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상공인 지원과 중소기업 투자 부담 경감, 증시 활성화를 위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등 수많은 민생법안이 국회 처리만을 기다리고 있다”며 “반도체특별법은 몇 달째 국회에 묶여있고, 전력산업과 관련된 ‘전력망특별법’, ‘해상풍력특별법’, ‘고준위방폐장법’ 등의 입법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태”라고 했다.
그는 “정부도 매주 민생경제점검회의를 열어 민생 현장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듣고,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시급한 정책과제를 발굴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면서 “3월까지 시행령, 시행규칙 개정 등 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조치는 신속하게 마무리하고, 국회와도 조속히 협의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최 권한대행은 지난해 12월 31일에도 내란·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대해 재의요구권을 행사한 바 있다. 그는 당시 △특검 후보 추천권의 야당 독식 △과도한 수사 인력 및 수사 기간을 거부권 행사 사유로 제시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두 번째 특검법에서 해당 부분을 일부 수정했다. 특검 후보 추천권을 여야가 아닌 대법원장이 행사하기로 했으며, 수사 대상도 외환 혐의, 내란 선전·선동 혐의 등을 삭제해 기존 11개에서 6개로 줄였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국민의힘의 요구사항을 대폭 반영한 내용”이라며 “거부권을 행사할 이유를 전혀 찾을 수 없는 법안”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최 대행의 거부권 행사가 당연하다”며 “내란특검법은 조기 대선을 위한 더불어민주당의 쇼이자 역대급 국력 낭비”라고 야당을 비판하고 있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대통령에 대한) 수사와 기소가 끝나 재판이 시작되는 마당에도 민주당은 여전히 특검을 거두지 않고 있다”며 “100일 동안 112억원을 들여 특검해서 무엇을 더 밝혀내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곧바로 법안 재표결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내란특검법의 재표결은 의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1차 내란특검법 표결 당시 찬성표는 195표가 나오고, 재의결 때에는 198표를 기록했지만, 2차 내란특검법 표결에서는 188표로 줄었다. 이번에는 여당이 자체 특검법을 발의한 데다 여당 지지율이 계엄령 이전으로 회복돼 여당 내에서 추가적인 이탈표가 나올 가능성도 적은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