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이 2%를 기록했다. 역대 성장률 중에서는 7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비상계엄과 잇따른 탄핵, 제주항공 항공기 사고 등 영향으로 4분기 성장률이 한국은행 예상치의 5분의1에 불과한 0.1%로 집계된 영향이 컸다.

올해는 작년보다 성장률이 더 낮아질 전망이다.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위축된 소비심리가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고 있어서다. 수출도 구조적 둔화세가 지속되면서 경기 부진이 심화하는 모습이다. 한은은 연간 경제 성장률이 1% 중·후반대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 지난해 GDP 2.0% 성장… 2021년 절반 수준

2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4년 4분기 및 연간 실질 국내총생산(속보)’에 따르면 지난해 실질 GDP 성장률은 2.0%를 기록했다. 2023년(1.4%)보다는 성장률이 개선됐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엔데믹(endemic·감염병의 풍토병화)으로 접어들었던 2021년(4.3%)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그래픽=손민균

GDP 성장률 통계를 집계한 1954년 이래로는 1998년(-4.9%)과 1980년(-1.5%), 2020년(-0.7%), 1956년(0.7%), 2009년(0.8%), 2023년(1.4%)에 이어 7번째로 낮다. 1998년에 한국은 외환위기를 겪었고, 1980년에는 2차 오일쇼크, 2020년에는 코로나19 위기, 1956년엔 심각한 흉작, 2009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바 있다. 경제위기급 충격이 오지 않은 시기 중에서는 2023년과 지난해 성장률이 제일 낮다.

경세성장률이 2%로 낮아진 주된 원인으로는 소비 증가세 둔화가 지목된다. 지난해 민간소비는 1.1% 성장하면서 2023년(1.8%)보다도 증가 폭이 작았다. 코로나19 직후인 2020년(-4.6%) 이후 최저 수준이다. 정부소비가 1.7% 증가하면서 전년 대비 증가 폭이 커졌지만 민간소비 부진을 만회하지 못했다.

한은은 작년 4분기에 불거진 비상계엄과 탄핵정국, 제주항공 항공기 참사 등이 소비심리를 위축시켰다고 보고 있다. 이 여파로 4분기 GDP는 전기 대비 0.1% 성장에 그치면서 한은이 지난해 11월 제시했던 전망치 0.5%를 크게 밑돌았다. 신승철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작년 12월에 정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신용카드 사용액 증가세가 많이 떨어지는 등 민간소비가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투자 부진도 심화했다. 지난해 건설투자 성장률은 -2.7%를 기록하면서 마이너스 전환됐다. 코로나19가 발생한 2019년(-1.3%) 이후로 보면 2020년(1.7%)과 2023년(1.5%)을 제외하고 전부 역성장했다. 설비투자 성장률은 2023년(1.1%)보다 높은 1.8%를 기록했지만 3년 전인 2021년(10.2%)과 비교하면 10분의1 수준이다.

그나마 수출이 개선되면서 증가율이 2% 밑으로 내려가는 것을 막았다. 지난해 수출은 6.9% 늘면서 1년 전(3.6%)보다 증가 폭이 대폭 커졌다. 수출은 정보통신(IT) 수요 확대 등의 영향을 받았다. 같은 기간 수입 증가율도 1년 전(3.5%)보다 1%포인트(p) 넘게 내린 2.4% 증가에 그치면서 GDP의 항목 중 하나인 순수출(수출-수입) 증가에 기여했다.

◇ 올해 성장률은 더 낮다… 건설투자·수출 둔화 영향

올해 경제성장률은 1%대 중·후반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은은 작년 11월 올해 성장률을 1.9%로 제시했는데, 최근 전망치를 1.6~1.7%로 낮췄다. 정부는 올해 성장률로 한은 전망보다 소폭 높은 1.8%를 제시했다.

건설투자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부진하면서 성장률 악화에 일조할 전망이다. 신 국장은 “건설 경기가 하반기 들어 조금 개선될 것으로 보이지만 연간 전체로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부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특히 작년 4분기부터 건설 부진이 심화됐는데, 올해 1분기에도 그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23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박창현 지출국민소득팀장(왼쪽부터), 신승철 경제통계국장, 장은종 국민소득총괄팀장, 김건 국민소득총괄팀 과장이 참석한 가운데 2024년 4분기 및 연간 실질 국내총생산(속보) 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뉴스1

둔화하는 수출 증가세도 우려 요인이다. 신 국장은 “작년 3분기부터 중국에서 반도체 공급을 확대하면서 우리 수출 증가세 둔화에 영향을 줬다”면서 “작년 4분기에 발생한 정치적 불확실성도 올해 1분기와 전체 연간 성장률에 계속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것 같다”고 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 신정부 출범에 따른 경제·통상정책의 변화도 변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자국 내 수입품에 최대 20%의 관세를 매기는 ‘보편적 관세’ 정책을 예고해왔다. 이 정책이 실현되고 전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가 심화되면 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수출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한은은 경기 부양을 위해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신 국장은 “올해 상반기도 전년 동기 대비 성장률이 낮아지는 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상이 돼 경기 하방 압력에 대한 우려가 커진 상황”이라면서 “추경 등 경기부양 대책과 정부에서 발표한 재정 신속 집행 등 계획들이 가시화되면 민간 소비 심리 위축이나 건설투자의 부진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정부도 민생경제 안정을 위해 정책 집행 속도를 높일 방침이다. 김범석 기획재정부 1차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차관회의 겸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 “건설투자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경제심리 위축 등이 소비심리 회복을 제약하면서 내수가 어려운 모습을 보였다”면서 “정부는 국민께 약속드린 경제·민생 정책과제를 속도감 있게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