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179명의 사망자를 낸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에서 활주로 끝에 설치된 콘크리트 둔덕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이런 구조물이 “다른 국내 공항에도 설치돼 있다”고 했다. 콘크리트 둔덕이 규정에 맞게 설치된 것인지, 규정은 국제안전기준에 맞춰 제정돼 있는지가 추후 쟁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30일 관계부처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제주항공 2216편은 동체 착륙을 시도하던 중 활주로 끝단에 위치한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 둔덕과 충돌하며 폭발했다. 로컬라이저는 항공기 착륙을 유도하는 시설이다. 활주로의 좌우를 기준으로 항공기가 활주로 중앙에 정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통상 로컬라이저는 충돌 시 부서지기 쉬운 구조물로 설계되며, 활주로와 같은 높이에 설치된다. 그러나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는 활주로 끝단 이후 기울어진 지면을 수평으로 맞추기 위해 쌓은 약 2m 높이의 흙 둔덕 위에 설치됐다. 둔덕 위 콘크리트 구조물에 위치한 로컬라이저는 지면에서 약 4m 높이에 있으며, 활주로 끝단에서 약 199m 떨어져 있어 일반적인 설치 방식과 차이를 보였다.
일부 전문가들은 로컬라이저가 단단한 것이 피해를 키웠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인규 항공대학교 비행교육원장은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둔덕이 없었다면 사고 피해가 줄었을 가능성이 크다”며 “둔덕을 설치한 목적이 무엇인지, 설사 필요에 의해 설치했다 해도 항공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재질이나 구조로 설계됐는지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김건환 민간조종사협회 법률위원장은 “항공 사고에는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데, 로컬라이저도 사고의 기여 요인 중 하나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 전문가들도 같은 우려를 제기했다. 항공 안전 전문가 데이비드 리어마운트는 영국 스카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조종사가 랜딩기어를 내리지 못한 문제는 탑승객 사망의 직접적 원인이 아니다”라며 “승객들은 활주로 끝의 견고한 구조물과 충돌해 사망했다. 그런 구조물은 그 위치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로컬라이저가 충돌 시 기체 손상을 최소화하도록 설계된다”며 무안공항의 구조물이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항공 안전을 총괄하는 주무부처인 국토부는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가 다른 공항들에도 설치된 형태라고 설명했다. 주종완 국토부 항공정책실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무안공항에는 활주로 종단 안전 구역 외곽의 활주로 끝단에서 약 199m 떨어진 곳에 방위각 시설이 설치돼 있다”며 “여수공항과 청주공항 등 다른 공항에도 유사한 형태의 구조물이 있다”고 말했다.
무안공항은 지난해 로컬라이저 장비를 교체하면서 기초 구조물을 보강했다. 공항 측은 내구연한(15년)이 만료된 장비를 교체하며 규정에 따라 설치했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해당 구조물이 실제로 국내외 안전 기준을 준수했는지에 대해 점검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방위각 시설은 임의로 설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설치 규정에 따라 설치된 것”이라며 “해당 시설이 사고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지 면밀히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국토부는 사고 발생 직후 회수된 비행자료기록장치(FDR)와 조종실 음성기록장치(CVR) 등 블랙박스 두 개를 이날 오전 김포공항 시험분석센터로 옮겨 분석 가능성을 확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토부는 또한 이번 사고 조사에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가 참여하며, 기체 제작사인 보잉과 미국·프랑스 합작 엔진 제조사 CFMI와도 협력 중이라고 전했다. NTSB는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해 전문가들로 구성된 조사팀을 한국에 파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