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석 기획재정부 1차관이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차관회의 겸 경제금융상황점검TF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정부가 외환시장 안정화를 위해 국민연금과의 외환 스와프 한도를 확대하고 은행의 선물환포지션 한도를 대폭 상향하는 ‘외환 수급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원·달러 환율이 15년 만에 1450원을 넘어서며 원화가치가 떨어지자 외화 조달 여건을 개선하고 외환시장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은 김범석 기획재정부 제1차관 주재로 긴급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를 열어 외환 수급 개선 방안을 논의·확정했다고 20일 밝혔다.

정부는 국민연금과의 외환 스와프 한도를 기존 500억달러에서 650억달러로 150억달러 확대하기로 했다. 기존 스와프 계약의 만기도 내년 말까지 연장할 계획이다. 국민연금과의 외환 스와프 확대는 외화 유출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도 국내 외환시장의 안정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외환 스와프란 외환당국이 보유한 달러를 국민연금에 제공하고, 국민연금이 이에 상응하는 원화를 외환당국에 맡긴 뒤, 만기 시점에 계약 당시 환율에 따라 다시 교환하는 방식이다.

국민연금은 해외 투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현물환 시장에서 달러를 매입한다. 이 과정에서 달러 수요가 증가하면서 환율 상승 압력을 가중시킬 수 있다. 그러나 외환당국이 국민연금에 필요한 달러를 직접 공급하면, 국민연금은 시장에서 달러를 매입하지 않아도 되어 달러 매입 수요가 줄어든다. 이는 환율 상승세를 완화하고, 외환시장 안정 효과를 가져온다. 국민연금은 고환율 상황에서 과도한 원화 사용을 피할 수 있어 기금의 수익성을 유지하는 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기업의 외화 조달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시설자금 용도의 외화 대출 규제를 완화한다. 이를 통해 환율 리스크를 관리하고 기업의 투자 활동을 지원할 계획이다. 정부 관계자는 “차주의 환리스크 부담 여력을 고려해, 환리스크 부담이 낮은 수출기업으로 제한해 추진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국내 기업의 해외 자금 조달을 돕기 위해 룩셈부르크 증권거래소(LuxSE)에 상장하는 채권의 발행 절차를 간소화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기업들이 해외에서 자금을 보다 효율적으로 조달할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국내외 은행의 선물환포지션 한도도 상향 조정된다. 국내 은행은 자기자본 대비 50%에서 75%로, 외국계 은행 지점은 250%에서 375%로 확대된다. 선물환포지션 한도는 은행이 보유할 수 있는 외화 포지션의 상한선을 뜻한다. 정부는 이번 조치로 외환시장 유동성을 늘리고 위기 시 대응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외화 유동성 스트레스테스트에 대한 강화된 규제의 시행도 유예된다. 금감원은 2011년 6월부터 위기 상황을 가정해 각 금융기관의 외화자금 과부족액을 평가하는 스트레스테스트를 운영해 왔다.

올해 6월부터 정부는 기존 방식보다 정밀도를 높인 강화된 스트레스테스트를 도입해 생존 기간 평가 등을 추가했지만, 강화된 기준에 따라 미통과 금융기관에 적용되는 감독 조치 시행 시점을 올해 말에서 내년 6월로 연기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번 유예 조치로 금융기관들이 새로운 기준에 대비할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고, 외환시장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방안의 시행 효과, 국가신인도 및 외환시장 여건 등을 면밀히 살피며 단계적으로 제도 확대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