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한국전력(015760)·한국가스공사(036460) 등 상장 공기업 7곳은 ‘배당 적정성’ 등 주주가치 제고 노력을 경영 실적으로 평가받는다. 정부·정치권의 입김에 휘둘려 실적 관리에 소홀히 하지 말고, 일반 민간 기업 상장사들처럼 이익 증대에 더 힘쓰라는 취지다.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공기업·준정부기관 등의 매년 경영 실적을 종합 판단해 점수를 매기는 것인데, 해당 결과에 따라 기관장의 거취나 임직원 성과급이 좌우돼 중요하게 여겨진다.

상장 공기업의 ‘공익 우선주의’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이 연초부터 강조해 온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기업 주가 저평가)의 한 요인으로 지적돼 왔다. 공기업 운영 방향을 회사의 영업이익 확대와 고배당 등 주주가치 제고에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유도해 증권시장에서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16일 김윤상 2차관 주재로 ‘2024년 공공기관 경영평가단 워크숍’을 열었다고 밝혔다. 이날 경영평가단이 꾸려짐으로써 공공기관들의 올해 경영평가 절차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국전력 서울본부 현판과 오피스텔 건물 내 전기 계량기의 모습. /뉴스1

◇ “‘배당 적정했나’·‘소액주주 보호했나’도 평가”

올해 새로 도입되는 세부 평가 기준 중 하나는 ‘상장 공기업의 주주 가치 제고’ 관련 항목이다. 정부가 조만간 공개할 ‘2024년도 공공기관 경영평가 편람’에 따르면 ▲배당 수준의 적정성 ▲소액주주 보호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모범규준 준수 등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성과가 평가 항목에 추가됐다.

대상은 상장 공기업 7곳이다. 현재 코스피에 상장된 한전, 가스공사, 지역난방공사(071320), 한전KPS(051600), 한전기술(052690), 강원랜드(035250), GKL(114090)(그랜드코리아레저)을 일컫는다.

윤석열 정부 들어 공공기관 평가 중요도에 무게가 실린 ‘재무적 성과 관리’ 파트 중 ‘재무성과’(4점) 안에 해당 항목을 포함한다. 즉 상장 공기업의 경우 기존 재무성과 4점을 평가하는 5가지 항목에 주주 가치 제고 노력 항목이 새로 더해져, 총 6가지 항목을 토대로 재무성과 성적이 매겨지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상장된 기업의 주인은 주주인데 그간 공기업이라는 이유로 주가에는 아무런 관심 없는 측면이 있었다”며 “‘정부 경영 평가를 잘 받아서 성과급만 잘 받으면 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실제 이익을 증대하는 데 힘쓰도록 구조나 인센티브를 바꾸고자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되면 공공기관도 주식 시장에서 적정 가치로 평가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김윤상 기획재정부 차관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무역보험공사에서 열린 '2024년 공공기관 경영평가단 워크숍'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기재부 제공

◇ “이익<공익” 상장 공기업, 韓 증시 고질적 문제

상장 공기업의 공익 우선주의와 이익 소홀 문제는 그간 한국 주식시장의 고질적 문제 중 하나로도 지적돼 왔다. 주가는 궁극적으로 실적을 추종한다. 그런데 한국 공기업 상장사들은 사회 공공 영역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특성상 마진이 줄더라도 가격 인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이익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여겨지니 주가도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다.

한전이 대표적이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여파로 에너지 가격이 불안정한 상황이 잇따랐지만, 한전은 국내 물가 자극 등 우려를 고려해 전기요금을 시장 논리에 맞게 인상하지 못했다. 이는 한전이 적극적으로 실적 개선을 꾀할 수 없다는 사실과 연결된다. 강원랜드의 경우 매출 총량제에 묶여 매출 증대를 위한 노력 자체를 할 수 없었다.

상장 공기업의 ‘외국인 엑시트(이탈)’ 현상도 지속되고 있다. 한전의 외국인 지분율은 2017년 30%를 넘었지만, 지금은 14%대로 반토막 났다. 불과 4년 전인 2019년 말(24.67%)과 비교해서도 약 10%포인트(p) 급감한 수준이다. 같은 기간 한국가스공사 11.36→6.12%, 강원랜드 29.71→14.58%, 지역난방공사 1.57→0.35%, 한전KPS 14.84→10.49% 등도 사정은 비슷했다.

이는 당장 ‘무배당’ 결정 등 주주 이익에 반하는 결과로도 이어진다. 한전은 2021·2022년 2년 연속 적자를 이유로 배당을 실시하지 않았다. 가스공사 역시 지난해 당기순이익에도 불구하고 ‘미수금’을 이유로 배당하지 않아 소액주주들의 집단 소송으로 비화할 뻔했다. 두 기관은 곧 작년도 실적 공시를 앞두고 있으나, 올해에도 무배당 기조가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지난 14일 서울 중구 명동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가 띄워져 있다. /뉴스1

이번 공공기관 평가 변화는 대통령이 연초부터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강조하고 나서는 것과도 일부 맥락을 같이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민생토론회에 이어 지난 7일 진행된 KBS ‘특별 대담 대통령실을 가다’를 통해서도 “주식시장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외국 자본가들도 투자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줄여나가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한편, 이날 열린 공공기관 경영평가단 워크숍에선 김동헌 고려대 교수, 김춘순 순천향대 교수, 손원익 홍익대 교수 등 민간 평가단장 3명이 임명됐다. 전문가 100명으로 구성된 평가단은 앞으로 약 4개월간 87개 공기업·준정부기관에 대해 서면 평가, 현장 실사를 진행한다. 최종 결과는 6월 20일까지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확정될 예정이다. 김윤상 차관은 위촉된 평가 단장과 평가 위원에게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 눈높이가 높아졌다”면서 “공정한 경영 평가를 위해 높은 전문성과 윤리의식을 갖고 평가 활동에 임해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