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공대는 현재 사용 중인 명칭이 아닙니다. 공식 명칭인 ‘한국에너지공대’를 사용해주세요.”

총체적 관리 부실로 도마에 오른 한국에너지공대가 ‘한전공대’로 불리는 것에 대해 한국전력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탄생한 에너지공대는 한전과 발전 공기업이 연간 예산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는 학교다. 중간에 이름이 바뀌었으나 처음에는 학교 명칭도 한전공대였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이 대학을 한전공대로 부르는 이유다.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지만, 현 정부 들어 한전은 에너지공대와 거리 두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개교 전부터 ‘정치적 설립’이란 비판이 잇따랐는데 최근 이 학교에서 각종 비위까지 터진 탓이다. 여기에 ‘수십조 빚더미에 앉은 한전이 운영비를 대는 게 맞느냐’는 지적도 한전이 에너지공대와 엮이는 걸 꺼리는 배경으로 꼽힌다.

산업통상자원부는 7월 27일 1억3000만원 상당의 법인카드·업무추진비 부적정 사용 등이 포함된 한국에너지공대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사진은 이날 전남 나주 한국에너지공대 행정동에서 직원이 일하는 모습. / 연합뉴스

◇ 文 대선 공약으로 탄생

4일 정부와 학계, 에너지 업계 등에 따르면 한전은 에너지공대를 한전공대로 표현하는 기자·학자·기업인 등에게 연락해 정식 명칭(에너지공대)을 써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한전 관계자는 “학교 이름 어디에도 ‘한국전력’이 들어있지 않다”며 “공식 명칭이 존재하는 만큼 한전공대란 표현은 쓰지 않는 게 맞는다고 본다”고 했다.

진짜 이름인 에너지공대보다 한전공대로 불리는 일이 많은 건 원래 이 학교가 한전공대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문 전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호남 지역 특성화 대학’을 약속했고, 2017년 정권 출범과 함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해당 내용을 반영했다. 문 정부는 2018년 12월 ‘한전공대설립지원위원회’를 출범시켰고, 2019년 7월 ‘한전공대 설립 기본계획’을 의결했다.

2020년 4월에는 교육부의 ‘학교법인 한국전력공과대학교 설립 허가 및 학교법인 설립’ 등기가 이뤄졌다. 이름이 바뀐 건 학교법인 한전공대가 같은 해 10월 한전 나주 본사에서 이사회를 열어 학교 명칭을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로 결정하면서다. 이후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법’이 2021년 3월 국회를 통과했고, 에너지공대는 문 정부 끝 무렵인 작년 3월 문을 열었다.

하지만 개교 이후로도 사람들 입에서는 ‘한전공대’가 더 자주 오르내렸다. 문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시작으로 한전공대란 명칭이 수년간 사용돼온 탓이다. 그땐 한전도 한전공대란 표현에 딱히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한국전력은 지난해 약 32조원의 적자를 냈다. 올해도 10조원 수준의 적자가 예상된다. 한 시민이 서울 중구 한국전력 서울본부 앞을 지나가고 있다. / 뉴스1

◇ 빚더미 한전 출연금으로 운영

한전이 에너지공대와 거리 두기에 나선 건 윤석열 정부 출범과 맞물린다. 저출생 고착화로 정원 미달 대학이 속출하는데도 전 대통령 공약 사수를 위해 제대로 된 타당성 검토 없이 지방에 신규 대학 설립을 강행했다는 지적이 정권 교체와 함께 더욱 거세졌다. 학교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한전공대’란 표현과 함께 자꾸 등장하자 한전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졌다.

여기에 요금 동결로 한전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는 점, 그런 한전이 매년 1000억원 안팎을 에너지공대에 출연한다는 점, 에너지공대의 연봉과 사내 복지 수준이 다른 과학기술원보다 높은 점 등도 한데 엮이면서 여론이 더 악화했다. 익명을 요구한 에너지 분야 전문가는 “한전으로선 하루빨리 적자 늪에서 벗어나고자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데 엉뚱한 곳에 큰돈 쓴다는 비판을 듣기 싫을 것”이라고 했다.

한전은 지난해에만 약 32조원의 대규모 적자를 냈다. 올해도 10조원 수준의 적자가 예상된다. 재무 위기 상황에서도 한전과 발전 계열사들은 2020~2022년 에너지공대에 1724억원을 출연했다. 약정된 출연금도 2024년 1321억원, 2025년 743억원 등 12년 동안 1조원에 달한다. 논란이 커지자 한전은 지난 6월 말 임시 이사회를 열어 올해 에너지공대 출연금을 당초 계획인 1016억원보다 30% 적은 708억원으로 결정했다.

정승일 전 한국전력 사장이 재임 시절이던 올해 5월 12일 전남 나주 본사에서 열린 '비상경영 및 경영혁신 실천 다짐대회'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 한국전력

◇ 비위까지 드러나…선 긋기 바쁜 한전

최근에는 에너지공대가 업무추진비와 법인카드 등을 부적절하게 사용한 사실이 산업통상자원부 감사를 통해 드러나기도 했다. 한전으로선 한전공대 표현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산업부가 지난달 27일 발표한 감사 결과에 따르면 에너지공대의 법인카드 부정 사용액 규모는 1억2600만원으로 집계됐다. 이사회와 산업부에 보고하지 않고 내부 결재만으로 급여를 13.8% 인상한 사실과 연구비로 무선 헤드폰, 신발 건조기, 공기청정기 등을 구입한 사실도 드러났다.

산업부는 한전 그룹사와 정부, 지자체 출연금으로 운영되는 에너지공대에서 관리 부실과 규정 위반, 기강 해이가 대거 발생한 데 대해 엄중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이사회에 윤의준 총장 해임을 건의했다. 또 비위 관련자 6명에 대한 징계도 요구했다. 부당하게 수령한 시간 외 근무 수당과 연구 목적에 맞지 않게 사용된 연구비 등 5900만원은 환수 조치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