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칩스법’이 여러 진통 끝에 국회 통과를 목전에 뒀다. 이번 합의안이 정부 원안에서 달라진 점은 세액공제 혜택을 받는 지원 대상 산업군이 ‘반도체·이차전지·백신·디스플레이·수소·미래형 이동수단’으로 법에 아예 못 박혔다는 점이다. 이전까지 해당 항목은 ‘대통령령’으로 위임돼 있어, 정부의 고유 권한이었다.

정부 안팎에서는 시행령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을 굳이 법령으로 격상시킨 것과 관련해 ‘잡음’이 일고 있다. 국가전략기술 추가 지정에 대한 권한이 정부에서 국회로 넘어가면서, 정부의 손발이 꽁꽁 묶인 것 아니냐는 논란이다.

정부 재량껏 국가전략기술을 추가 지정하는 일이 이전에 비해 부담스러워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정부 내부에서도 나온다. K칩스법 제정을 주도했던 양향자 무소속 의원 측은 해당 항목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기획재정부와 관련 입장을 정리할 방침이다.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 류성걸 소위원장 자리에 반도체 등 투자 활성화를 위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 필요성 책자가 놓여 있다. /뉴스1

20일 관계부처 및 국회에 따르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지난 16일 조세심사소위원회를 열고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오는 22일 기재위 전체 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될 것으로 보인다. 두 달 만에 큰 산을 넘은 셈이다.

정부 원안과 달라진 점 중 주목할 부분이 있다. 당초 세액 공제 지원 항목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돼 있어 정부의 고유 권한이었는데, ‘반도체·이차전지·백신·디스플레이·수소·미래형 이동수단’ 등 6개 산업으로 법에 명시된 것이다. 다만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분야와 관련된 기술’이란 단서가 회의 과정 막판 추가됐다.

이를 두고 정부 내부에서도 한때 혼란이 일었다. 일각에선 특정 지원 산업군을 법령으로 격상시킨 것이 긍정적이라는 입장을 보인다. 한 기재부 관계자는 “그간 정부의 지원 분야가 희미한 측면이 있었는데, 이를 명확히 해 업계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본다”며 “더욱이 ‘그 밖의’라는 단서를 달아두었으니, 국가전략기술 산업을 추가 지정하는 정부 재량과 관련해선 이전과 달라지는 점이 없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측면에선 표면적으로는 정부 재량이 동일할 것으로 보이지만, 막상 추가 지정 상황이 되면 이전보다 부담스러워질 것이라는 의견도 제시된다. 또 다른 기재부 관계자는 “내부 관련 부서들에서도, 국가전략기술 추가 지정을 하려면 무조건 국회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문의가 많은 상황”이라며 “단서 조항이 있긴 하지만, 모두 다 국가전략기술이 될 수는 없을 테니 면밀하게 따져보고 추가 지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점에서 부담스러워질 것이 우려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이 지난 15일 발의한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 내용 중 일부. 수소 등 탄소중립산업, 미래형 이동수단을 국가전략기술에 포함하는 등 사업 품목을 확대하는 한편, 국가전략기술 분야를 법률로 상향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는 조세소위를 통과한 버전에서도 반영됐다. /국민참여입법센터

K칩스법 제정을 주도한 양향자 의원 역시 이를 두고 같은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조세소위 통과 직후 “법안의 내용 중 ‘국가전략기술 지정’을 시행령에서 법령으로 바꾼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며 “법안에서 일컫는 ‘전략’이 국가 안보와 미래에 관한 전략이 아닌 각 당의 정치적, 선거적 전략으로 오용될 수 있기 때문이며, 법안의 원래 목적인 과감성과 신속성도 저해할 것”이라는 글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양 의원은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각 산업계 로비 등 정치권의 입맛에 따라 국가전략기술 지정이 남용될 우려가 있는 등 법령 격상 문제는 단편적으로만 바라볼 사안이 아니다”라며 “기재부와 관련 입장을 정리해서 문제를 제기할 생각이다. 다만 어렵게 법안이 처리된 만큼 신중하게 들여다보고 의견을 조율할 것”이라고 했다.

K칩스법이 해당 단계로 오기까지 각종 진통을 겪은 만큼, 기재부 세제실이 전향적으로 입장을 선회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기재부 세제실 관계자는 “정부가 제안했던 공제율이 일단 원하는 대로 통과가 됐다”며 “전반적으로는 원래 정부안 제출 취지를 대부분 살린 것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K칩스법은 반도체 시설 투자에 대한 기본 공제율을 대기업은 8%에서 15%로, 중소기업은 16%에서 25%로 높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세액공제가 적용되는 국가전략기술 품목은 기존 반도체, 이차전지, 백신, 디스플레이에 수소 등 탄소중립 산업, 미래형 이동수단 등 두 가지가 추가됐다. 기재부는 품목 추가 지정과 관련해 후속 조치에 나설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