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대 기획재정부 2차관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공공기관 기능조정 및 조직·인력 효율화 계획 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언성 공공정책국장, 최 2차관, 김윤상 재정관리관. /뉴스1

공공기관 방만 경영 개혁 작업을 추진 중인 윤석열 정부가 2009년 이후 14년 만에 인력 구조조정에 나섰다.

기획재정부는 26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어 현재 공공기관 정원 44만9000명 중 1만7230명을 감축하고, 4788명은 재배치해 전체적으로 1만2442명을 줄이는 조직·인력 효율화 방안을 의결했다. 정부는 이번 구조조정을 통해 연간 7600억원 가량 인건비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14년 만에 인력 구조조정에 나선 것은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으로 이어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임기 5년 동안 공공기관의 정원은 33만4000명에서 44만9000명으로 11만5000명 증가했다. 최저임금 과속 인상으로 고용 대란이 일어나자, 공공기관들이 만든 일자리로 취업자수 공백을 메우려 한 것도 공공기관 정원이 급증한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적극적으로 호응했지만, 경영 효율성은 악화됐다. 2016년 말 499조원이던 공공기관 부채 규모는 2021년 말 583조원으로 100조원 가까이 증가했다. 공공기관에 대한 재정 지원 규모도 급증했다. 지난해 공공기관의 정부 순지원액은 100조5000억원으로 100조원을 돌파했다. 올해 순지원예상액은 109조원이다. 2017년 69조5000억원 수준이던 정부 지원금이 5년만에 40조원 가까인 증가한 것이다.

국민들의 공공기관 방만경영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지난 7월 발표한 ‘공공기관의 경영에 대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전문가 64.9%와 국민 63.8%는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특히 일반 국민의 71.8%와 전문가의 77.3%는 “강도 높은 공공기관 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개혁의 우선 과제로 일반 국민은 ‘과다한 인력 및 복리후생 등 점검·조정’(52.1%)을, 공공기관 종사자와 전문가는 ‘핵심 업무 위주로 공공기관의 기능 조정’(각각 48.8%, 57.1.%)을 가장 많이 꼽았다.

윤석열 정부의 공공기관에 대한 평가도 조세연의 인식 조사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9월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새 정부에서는 공공기관의 비효율과 방만경영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후 정부는 ▲예산 효율화 ▲복리후생 개선 ▲자산 효율화 등 단계적으로 공공기관 방만 경영에 칼날을 댔다. 그리고 이날 인력 감축안까지 내놨다.

그래픽=손민균

공공기관 인력 구조조정 계획에 대해 전문가들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정부 출범 후 짧은 시간에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의 구조 조정안을 도출했다고 평가한다”면서 “다만 여기서 그칠 게 아니라 내년부터는 기관별 기능 점검을 통해 심층적인 기능 조정 작업을 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고용 보장이 안정적인 공공기관에서 채용한 인원을 어떻게 줄일지가 관건이다. 기존 인원의 퇴직을 강요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정년 및 자발적 퇴직 등을 통해 자연스러운 인원 감축을 추진하겠다는 방향을 세운 상태다. 이와 관련, 최상대 기재부 제2차관은 “2~3년에 걸쳐서 단계적으로 퇴직이나 이직 등 자연감을 감안해서 (정원을) 감축할 것”이라면서 “또 정원 감축 계획 진도가 차질이 없는지 내년도부터 분기별로 이행 실적을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등 관리할 예정”이라고 했다.

양대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후문 앞에서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 규탄 결의대회를 갖고 있다. /뉴스1

일각에선 공공기관의 신규채용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인력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공공기관들이 예년만큼 신규 채용에 나서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적극적으로 실시한 인천국제공항공사는 2018년과 2019년 각각 131명, 149명을 신규 채용했지만, 정규직 전환 이후엔 신규 채용 규모가 2020년 75명, 2021년 70명으로 줄었다. 이에 대해 최 차관은 “공공기관의 신규 채용 감소를 최소화하도록 (인력 구조조정을) 했다”며 “신규 채용 축소를 최소화할 예정”이라면서도 “청년 일자리 여건 조성에 있어서 정부와 공공기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민간의 역할이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했다. 고용의 주체는 공공이 아닌 민간이 돼야 한다는 정부의 철학이 읽히는 대목이다.

노동계와의 협의도 숙제다. 노동계에선 이번 인력 감축안을 포함한 윤석열 정부의 공공기관 혁신안에 대해 불만을 보이고 있다. 공공기관의 공공성은 제쳐놓고, 효율성만 따진다는 것이다. 양대노총은 이날 공공기관 인력 조정안 발표를 앞두고 정부서울청사 후문에서 ‘기재부 공운위 규탄’ 결의대회를 열어 “정부가 공공기관 인력을 감축하고 자산을 매각하고 공공서비스를 축소하는 것은 국민의 생명과 복지를 책임져야 하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