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 총파업으로 둔촌주공 등 건설 현장이 멈춰 서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자금난이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정부는 ‘업무개시명령’ 칼을 빼 들었다. 파업으로 물류 흐름이 끊기면서 둔촌주공 재건축 현장을 포함한 수백개의 건설 현장이 ‘셧다운’되고 입주가 지연될수록 잔금 회수에 문제가 생겨 PF 사업에 타격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레고랜드 PF ABCP 부도 사태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둔촌주공 공사 현장이 멈춰서면서 금융 시장에 또다시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은 24개 금융사로 구성된 대주단에 사업비 7000억원의 대출 만기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하고, 만기를 하루 앞두고 간신히 차환 발행에 성공했는데 이번 파업으로 사업에 또 먹구름이 끼었다.
◇ 12% 고금리로 차환한 둔촌주공…입주 늦춰지면 ‘끝장’
정부는 29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에 사상 첫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업무개시명령은 시멘트업 운수종사자에 우선 적용한다.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2004년 업무개시명령 제도가 도입된 후 사상 처음으로 명령을 적용했다.
시멘트 업종부터 업무 복귀를 명령한 이유는 화물연대 파업으로 건설 현장이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특히 초기 골조작업을 진행 중인 사업장은 골조 레미콘 타설이 어려워져 사실상 공사 현장이 ‘올스톱’ 됐다. 대표적으로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현장은 화물연대 총파업 다음 날인 25일부터 공사가 중단됐다.
정부는 시멘트 출고량이 평시 대비 약 90~95% 감소하는 등 시멘트 운송 차질, 레미콘 생산중단에 따라 전국 대부분 건설 현장에서 공사중단이 예상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공기 지연, 지체상금 부담 등 건설업 피해 누적 시 건설 원가·금융비용 증가로 산업 전반의 피해가 우려되며, 이는 건설산업으로 인한 국가 경제 전반의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개연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특히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으로 꼽히는 총 1만2000가구 규모의 둔촌주공 건설 현장이 타격을 입으면 레고랜드 이후 또 한 번 금융 쇼크가 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시행사는 보통 만기가 3개월 정도로 비교적 짧은 ABCP와 전기단기사채(ABSTB)를 통해 사업비를 조달한다. PF ABCP의 경우 레고랜드 채무미이행과 둔촌주공 사태로 인해 상환 및 차환 우려가 확대된 바 있다.
둔촌주공 사업장은 12% 고금리로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차환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PF ABCP 차환은 쉽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게다가 파업까지 겹치면서 공기 지연으로 입주 일자가 늦어지고, 잔금을 치르는 날도 밀리면서 업계 전반에 걸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잔금을 치러야 수익을 배분하는데, 입주가 늦어질수록 PF 시장 불안은 커질 것”이라며 “부동산 시장 상황은 악화하고 있어 하나만 삐끗해도 ‘폭탄 돌리기’ 상황이 될 될 수 있다”이라고 말했다.
◇ 시멘트 업계 손실 수백억 원…추경호 “국민경제 볼모로 잡아”
화물연대 파업으로 건설 현장이 멈춰 서자 건설과 시멘트·레미콘 등 자재 업계도 화물연대를 상대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시멘트협회에 따르면 지난 28일 경찰 지원으로 삼척과 영월·단양공장과 수색역 유통기지 등에서 출하된 시멘트 물량은 2만2000톤(t)으로 추산된다. 이는 성수가 일평균 출하량 20만t의 약 10분의 1 수준이다. 하루 매출 손실은 178억원이고, 지난 24일 파업 개시 이후 누적 손실은 642억원에 달한다.
한국시멘트협회와 대한건설협회, 대한전문건설협회, 한국레미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 한국레미콘공업협회 등 5개 단체는 성명서를 내고 “엄중한 경제 위기 상황 속에 화물연대가 지난 6월에 이어 또다시 집단 운송거부에 돌입함에 따라 국내 모든 건설 현장이 셧다운 위기에 처했다”며 “화물연대 운송거부는 비노조원들과 주택공급을 볼모로 국가 경제를 위기에 처하게 만드는 명분 없는 이기주의적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8일 육상화물운송 분야 위기 경보 단계를 ‘경계’에서 최고 단계인 ‘심각’ 단계로 격상한 바 있다. 정부가 발동한 업무개시명령 대상은 시멘트 분야 화물운수사 201곳, 관련 운송종사자 2500여명이다.
명령을 송달받은 운송사업자 및 운수종사자는 명령서 발부 다음 날 24시까지 집단 운송거부를 철회하고 운송업무에 복귀해야 한다. 정당한 사유 없이 복귀 의무를 불이행할 경우, 운행정지·자격정지 등 행정처분 및 3년 이하 징역·3000만원 이하 벌금 등 형사처벌이 이뤄질 예정이다.
6일째 이어진 화물연대 총파업으로 산업계 전반에 피해가 퍼지자 엄정 대응 입장을 분명히 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때 화물연대는 자신들의 명분 없는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민생과 국민경제를 볼모로 잡아 물류를 중단시키고 산업기반을 흔들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