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석 달 만에 상승 폭을 키운 가운데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 인상이 물가를 끌어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전력이 올해 전기요금을 4월, 7월, 10월 인상할 때마다 소비자물가지수와 전기·가스·수도 지수는 전월보다 상승했다. 10월 전기요금이 인상되면서 전기·가스·수도 물가는 전년동월대비 23.1% 급등했다. 이는 지난달(14.6%)보다 10%p(포인트) 가까이 상승한 수치다.
한전 적자는 올 한해 3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따라 전기요금 추가 인상 가능성이 불거지면서 공공요금 인상 발 물가 불안이 지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적자 폭 확대로 전기요금 인상 카드를 내밀 수밖에 없지만, 요금을 올릴 경우 물가 상승 압력을 보여주는 근원 물가(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도 함께 뛰어올라 물가 안정과는 멀어지면서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소비자물가 끌어올린 ‘전기요금’ 인상…요금 오를 때마다 지수 상승
6일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10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9.21(2020년 100 기준)로 전년 동기보다 5.7% 상승했다.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지난 7월 6.3%를 기록한 후 2개월 연속 하락했으나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소비자물가 상승세는 공공요금 인상이 이끌었다. 지난달 전기·가스·수도 요금은 전년 동월 대비 23.1% 상승했다. 소비자물가는 전기요금이 오를 때마다 상승세를 기록했다. 한전은 올해 4월 킬로와트시(㎾h)당 6.9원, 7월에 5원 전기요금을 인상했다. 기금운용계획안 편성 이후인 10월에는 모든 사용자를 대상으로 ㎾h당 7.4원을 올리고 대용량 사업자 요금은 추가 인상했다.
한전이 전기요금을 올린 4월과 7월, 10월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전월보다 오름폭을 확대했다. 특히 10월에 가장 큰 폭인 7.4원 인상 이후 공공요금이 물가상승을 이끈 요인으로 꼽혔다. 전체 물가에서 전기·가스·수도가 차지하는 기여도가 9월 0.48%포인트에서 10월 0.77%포인트로 두 배 가량 올랐기 때문이다.
전기·가스·수도 지수도 전기요금 인상이 있던 4월(6.8%) 전월보다 3.9%포인트 상승했고, 7월(15.7%)에는 전월보다 6.1%포인트, 10월(23.1%)에는 전월보다 8.5%포인트 오름세를 기록했다. 특히 10월 오름폭이 확대되면서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10년 1월 이후 가장 큰 폭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본격적인 전기요금 정상화가 시작되는 내년 1월에는 전기·가스·수도 물가 상승폭이 10%포인트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 한전채 발행해도 적자 감당 불가…내년 요금 ‘추가 인상’ 불가피
전기요금이 오를 때마다 물가도 함께 상승하는 가운데 내년에도 요금 인상이 이어지면 물가 상방 압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한전이 요금 인상을 고려하는 이유는 연료비 급등으로 사상 최악의 실적을 기록하기 때문이다. 증권가는 올해 한전 연간 적자 규모가 30조원을 넘어서고, 40조원에 달할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한전은 올해 들어서만 20조원이 넘는 공사채(한전채)를 발행하는 등 빚으로 버텨오고 있다. 한전이 발전사에서 전기를 사 오는 기준 가격이 되는 전력도매가격(SMP)이 연일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적자 폭도 확대됐다. 특히 겨울철 난방 수요가 늘면 적자 폭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력 요금 인상 폭은 한전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책정돼 적자 폭이 확대됐다. 채권 발행이 증가하면서 채권시장의 경색으로 경제 전반에 큰 타격을 입힌 상황이다.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채권시장에서 한전채 발행 폭증으로 일반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지고, 전반적인 시중 금리가 오르는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정부도 내년부터 전기·가스요금을 단계적으로 인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지난 10월 물가 영향을 고려해 전기요금을 소폭 인상하면서, 내년부터는 그동안 누적된 인상 요인을 단계적으로 반영하겠다는 입장이다. 역대 최대 수준인 미수금을 가스요금 정산단가에 반영해 점진적인 회수에도 나설 계획이다.
한전의 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지만, 전기요금을 올릴 경우 물가가 출렁일 수 있어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전 적자가 커지고 채권시장이 불안해지며 더 이상 한전채를 발행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공공요금을 인상하면 근원 물가도 함께 올라가고 소비자물가지수도 덩달아 상승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전기요금 인상이 물가상승률의 상승 압박으로 상당기간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